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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Mar 09. 2022

새로운 보금자리

드디어 내 집이 생겼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지 한 달 여가 다 되어 간다. 

햇볕이 쏟아지는 한가로운 오후,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아서 모처럼 여유를 부려 보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다니기를 몇 년 하다 보니, 이제는 좀 안정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집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열심히 일 하면서 즐겁게 살면 되지...라고 생각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즐거움 안에, '집'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연기처럼 사라지는 돈(money)이 아깝다는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수도권의 주택공급과 부동산 시세는 지방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고, 심각했고, 하늘의 별따기처럼 내 집을 가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연일 보도되는 뉴스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수도권의 부동산 시세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고 집 없는 나와 같은 대다수의 서민들은 평생 벌어도 내 집을 장만하기 어렵다는 보도를 보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에... 먹구름조차 몰려와서 나를 '훅'하고 덮어 버리는 것 같아서 한동안은 마음이 답답하였다. 


내가 경기도로 이사를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다시 [주택청약저축]에 가입을 하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입주자 모집 공고]가 난 것을 보고 발 빠르게 신청해 놓았던 아파트가 있었다.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지는 어느 날, 퇴근 후 우편함에 붙어있는 <00 우체국에 등기를 찾으러 오라>는 메모를 보고는 직감하였다. 입주 순서가 된 것인가? 드디어 찾아온 기회! 등기우편을 받아 들고 보니, 언제가 될는지...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드디어 다가온 것이었다. 단 3일의 계약기간, 이 시간을 놓치면 언제 또 내 집을 가지게 될까?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의 그림이 빠르게 그려지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이사를 다녀야 하고, 이 기회를 잡으면 큰 걱정 한 가지는 덜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내게 찾아온 이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계약금을 준비하고, 회사에 반차를 내었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있던 어느 추운 날, 나는 드디어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청약신청을 하러 찾아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면서, 언젠가는 그때가 오겠지 하며 막연히 기다렸는데... 차 안에서 계약서를 들고는 무덤덤하게...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이제 곧 내 집이 생기겠구나!

나는 드라마에서나, 아니면 또 다른 먼~  이웃 둘 중에 아파트에 당첨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럴 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정말 궁금했고,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아무튼 저물어 가는 한해와 신년을 나는 무지무지하게 바쁘게 보냈다. 

준비할 서류가 참 많았다. 계약 전에는 입주할 아파트를 방문해서 점검하고 난 후, 계약을 체결하였다. 저축한 나의 돈과 남의 돈을 박박 긁어모아서 잔금을 치렀고, 이사 날짜를 잡았고, 이사 청소도 하였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도 많았고 또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아서 바쁜 시간을 쪼개야 했다.


이사를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기분인 것은 사실이었다.

넓고, 깨끗하고, 아늑하며... 쾌적한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서서 아파트 한쪽에 자리 잡은 놀이터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또래들이 어울려 운동을 하는 모습과 그네를 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짬짬이 새 보금자리에서 이삿짐을 정리하였다. 

묶어두었던 보따리를 하나하나씩 풀어헤치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내 집 장만'에 목숨을 거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집이 주는 안정감과 아늑함은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성채이고,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오로지 나만의 요새이고, 나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가 되기도 할 것이며, 사랑하는 가족과 머무를 수 있는 온전히 나만의 영역(boundary)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타향살이를 시작했을 때, 작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데 전 세입자가 청소를 하도 하지 않아서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했던 때가 있었다.


장거리 출퇴근에 지쳐서, 좀 더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을 때는 줄어든 길 위의 시간으로 인해서 여유가 생겼고,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되어 즐겁기도 했었다. 


경기도로 처음 이사 와서 급하게 계약한 집은 낡은 아파트였다. 어느 날 위층에서 시작된 누수가 원인이 되어 한쪽 방의 벽을 잠식해버린 곰팡이로 인해서 나는 몇 달 동안 두통에 시달려야 했고, 방 하나를 사용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집주인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거래했던 부동산을  통해서 위층과 해결하는 방법만 몇 마디 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그 집을 싸게 내놓을 테니,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Are you crazy?"라고 외치고 있었다.


전 집주인은, 건물에 흠집이라도 생길까 봐 이사하는 모습을 CCTV로 보고 있다가 건너와서는, 이삿짐센터 일꾼들을 하대하며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집을 깨끗하게 사용해서 고맙다는 말을 내게 하면서도, 딴지를 걸기도 했고 쪼금의 손해도 볼 수 없다는 듯 보증금 반환을 미루어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였다. 

순간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우연히 집주인을 욕하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근거도 없이 그 사람을 폄하했던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건물주인 형제들 간에 우애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욕은 쌍으로 얻어먹어서 배는 참 부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으며, 화를 달래기도 하였다.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베풀고 살면 안 되나? 정말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섭구나, 집 있고 돈 있는 일부 사람들의 횡포를 겪으면서 돈이 곧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인지? 강한 반감과 함께 씁쓸한 생각마저 드는 편치 않은 경험을 하였다. 

(집 없고, 돈 없어서 겪는 설움은 이제 그만, ㅠㅠㅠ...)


그러면서, 이전에 내가 만났던 어떤 집주인이 얼마나 선량한 사람이었는지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고향에 살 때, 몇 번 주택청약종합저축 통장을 만들고 깨면서, 아파트에 당첨되어 입주할 기회가 한 번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슬럼프에 빠져있었고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그 '집'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서울은 더 비싸겠지만, 경기도에 와서 살아보니,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고 있었고, 내가 살았던 광역시보다 적어도 2.5배 이상은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집도 집 나름이겠지만...).


아! 어느 세월에 내 집을 장만하게 될까??? 

한숨만 푹푹 쉬다가, 그래서 다시 [주택청약종합저축] 통장을 만들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꾸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집 없는 서민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그 방법뿐이라고 생각하였고, 고맙게도 행운의 여신은 생각보다 빨리 내게 자비로운(?) 미소를 보내준 것 같았다.

[징검다리]

부모 찬스 없이, 맞벌이가 아닌, 오로지 내 힘으로 장만한 새로운 집에서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해 보았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불편한 시간을 차례차례 잘 건너온 것 같았다. 한동안은 세입자 위에 군림하는 악덕 집주인을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친구가 새집에 입주한 기분이 어떠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좋지!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한 번은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이런 기분인 것 같네."


축하해주는 친구와 오랜만에 수다를 떨다가 보니, 베란다 유리창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내 모습이 보였다.


집안 정리를 어느 정도 해놓고, 집 주위에 뭐가 있는지 살피러 가야겠다.

내가 처음 이곳을 보러 왔을 때가 아마도 3월 즈음이었을 것이다. 주위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주변의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내 마음에 쏘~옥 들어왔다.

 

'음~ 나도 이런 동네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고 난 뒤, 마침내 이 지역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내가 이사 갈 장소를 정할 때는, 나만의 몇 가지 요건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 공원이 있는지, 성당은 가까운지, 그리고 학교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번잡스럽지 않고, 그저 조용하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곳을 선호하였던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진다면, 내가 생활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내 예상은 잘 맞아떨어졌다. 


이번에도 이 요건이 충족되었으니, 난 그저... 마음속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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