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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18. 2019

쓰루노유 다이어리 - 4

이게 다 온천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딘가로 떠나 한 곳에 머무는 경우 대략 사흘 정도 지나면 하루를 살아내는 행동의 패턴이 생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치고는 평소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해가 떠 있는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매우 건전한(?) 습관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여행지에서도 대개는 그 시간표가 들어맞곤 한다. 아니, 오히려 더 부지런해진다고 해야 하나. 여기 쓰루노유에서는 그 부지런함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온천 때문이다.      



4월 중순이지만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눈 덮인 산의 결정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쓰루노유에는 두 종류의 온천이 있다. 하나는 진짜 그냥 일반적인 온천. 사방이 막혀있고 천장이 존재하는 그런 정상적인 온천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노천탕인데 그냥 노천탕도 아니고 남녀가 동시에 입욕하는 혼탕이다. 농담이 아니고, 목욕물에 수건을 담그지 않는 일본 온천 예절에 따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입욕해야만 한다. 아, 수건을 머리에 얹어 놓는 건 괜찮다. 다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온천물이 유황 성분이 강해 우유만큼이나 뽀얀 색깔을 띠고 있어, 몸 전체를 물속에 담그면 아래쪽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지인들은 이 대목에서 아쉬움을 표하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북이처럼 목만 물 위로 내민 채 오리걸음으로 욕탕을 돌아다닌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 탈의실의 경우 욕탕까지 이어진 경사로가 있어 입욕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크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남자 탈의실은 욕탕으로부터 열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어 들어가고 나올 때 마다 다들 중요한 부분만을 얼른 가리고 후다닥 뛰어가곤 한다. 물론, 혼탕 고수 아저씨들은 그런 거 없다. 당당하게 입욕하고, 당당하게 퇴장한다.      


나는 그런 파격적인 곳에 하루에 세 번 방문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전 일곱 시, 저녁식사 후인 오후 일곱 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전인 오후 열시. 지인들에게 이 특별한 목욕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은은 “?!?!?!?!?!?!?!?!?!” 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정말? 수영복 같은 것도 안 입고???” 

“응. 여기는 온천이지 워터파크가 아니거든.”






낯선 문화는 보통 처음에는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지인에 빙의한 것 마냥 거기에 쿨 해져 보는 건 당신의 여행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오해할까봐 미리 밝혀두는데, 혼탕이라는 이유 때문에 하루에 세 번 씩이나 가는 건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노천이라는 탁 트인 공간에 머문다는 것 자체로 감동이다. 상상해보라. 오전 일곱 시의 쌀쌀한 산 공기를 뚫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온천물에 뛰어들어 해가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 분주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노을 지는 하늘이 짙은 코발트색으로 변해가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라데이션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는 일, 까만 하늘을 바탕으로 높다란 삼나무 실루엣들 사이로 온천의 하얀 연기가 이지러지는 가운데서 고개를 들어 보면, 조각 같은 달과 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지상을 향해 그렇게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게 다 온천 덕분이다.      








쓰루노유에서 완성한 첫 작품. /   Dodo in Tsurunoyu,  53x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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