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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19. 2019

쓰루노유 다이어리 - 5

자발적 고독, 은자의 마음



쓰루노유 온천은 사방이 숲으로, 말 그대로 깊은 숲속에 점처럼 콕 박혀있다. 깊은 숲과 맑은 공기, 자발적인 고독과 문명으로부터의 적절한 단절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작업실에서 보내는 동안 한 시간에 수십 번 들려오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엔진소리는 귀를 멍하게 만들었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펼쳐지는 딱딱한 아스팔트길은 걷기에 그다지 경쾌하지 못했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 하면, 어느 샌가 역한 담배 냄새가 제멋대로 스멀스멀 들어와 방 안에 퍼지곤 했다. 나는 달리 방법도 없이 이 모든 것을 그저 묵묵히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내게는 쓰루노유가 천국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자유롭게 숨 쉴 권리를 앗아가 버린 서울의 미세먼지는 쓰루노유로의 도피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좋은 핑계거리이기도 했다.     





여러 생리학자들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들 중 하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업무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만성적으로 높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소음에 의해서도 다량 생성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혈압을 올려 심장병과 기타 스트레스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사람이 고요한 자연 속에서 머물 때 인체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 인간의 감각이 초원과 숲에서 진화해 왔으며, 아직도 그러한 환경에 맞춰서 조정되게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광대한 자연 안에서 평화와 안정감을 얻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게다가 도시에서 우리는 너무 긴 시간 동안, 잠들기 직전까지 너무 많은 이들과 과다하게 연결되어 있고, 즉각적인 소통을 요구받는다. 혼자서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과 생각을 가질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이들은 은둔에 대하여 예찬한다. <월든>의 저자 <데이비드 소로>는, "우리는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기 시작 한다"고 했고, 미국인 수필가 <월리엄 데레저위츠>는 "진정한 개인적, 사회적, 예술적, 철학적, 과학적, 도덕적 탁월함은 고독 없이는 절대로 생길 수 없다"고 했다.                                                

(  *마이클 핀들, <숲속의 은둔자> 참조)



타의적인 고독은 고통스럽다. 악질적인 범죄자들에게 독방 수감 명령을 내리는 것은 강제적으로 부여되는 고독이 징벌로서 효과적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발적인 고독은 분주하고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던 일상의 시간에서 한 발 자국 뒤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연의 한복판으로 자신을 던져놓고, 자발적인 고독 속에서 잠시나마 은자가 되는 경험은 분명히 우리의 삶에 어떤 화두를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고민할 틈도 없이 급류에 휩쓸리듯 매순간 힘겹게 삶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잠시 쉼표를 찍는 일은 더 웅장하고 긴 악장의 연주를 위한 인터미션intermission이지, 결코 마침표가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숲길을 걸어 하루에 적어도 두세 시간은 아무도 없는 숲 속 한가운데서 머물며 그저 그 풍경들을 바라본다. 4월 중순의 따뜻한 날씨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눈이 녹고 있다고는 하지만 풍경은 여전히 겨울 숲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풍경을 음미하고 있으면 봄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숲 여기저기에는 작은 시내가 생기기 시작했고, 휘파람새를 비롯한 산새들의 기분 좋은 지저귐과 푸드덕 거리는 작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몇 달이고 눈 속에 묻혀 있었을 삼나무의 어린 가지가 알에서 깨듯 눈 위로 사락거리며 튕겨져 나온다. 바야흐로 숲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한 가운데에서 봄의 온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스쳐 지나갈 때, 나는 내 삶이 괜찮다고 느꼈다. 결국 이 숲 까지 발걸음을 하게 한 나의 시간과 나의 삶이 정말로 괜찮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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