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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17. 2019

쓰루노유 다이어리 - 3

벌써부터 이곳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쓰루노유에 도착한 다음날은 하루 종일 진눈깨비와 비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쏟아졌다. 아침의 기온은 영상 1도 정도로, 4월 중순 치고는 꽤 쌀쌀한 편이었지만 상쾌하게 느껴질 만큼 기분 좋은 산 속에서의 아침이었다.      


만일 내가 쓰루노유에 정당한(?) 숙박비용을 지불했더라면,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에 무엇을 먹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a.house바로 옆에 딸린, 지상에서 2미터 정도 축대를 쌓아 올린 기다란 목조 건물에 있었는데, 이 건물은 보통 쓰루노유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생활하는 숙소동이다. 혼자 쓰기에 아주 아담한 크기의 방 하나를 내준 것은 물론, 원할 땐 언제든지 온천에 들어갈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된 감지덕지한 상황에서 음식까지 요구하는 건 뻔뻔하지 않은가. 그래서 a.hosue에 입주하는 작가들은 식사는 스스로 자급자족 한다. 온천 뒷산으로 엽총을 들고 들어가서 다람쥐나 꿩, 사슴을 잡아다가 바비큐를 해...먹을 수는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토상이(이토상은 시내에서 이곳으로 출퇴근 한다) 시내의 대형 마트에 데려다 주면 먹을거리를 한꺼번에 쇼핑해 와서 일주일을 살고, 다시 쇼핑하고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a.house에는 조리기구가 충분히 갖춰져 있기 때문에 식재료만 있다면 식사를 준비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이러한 모든 사정 또한 용감한 선발대였던 승현작가에게 익히 듣고 떠나온 터라, 나는 이미 캐리어의 절반을 먹거리로 가득 채워가지고 와, 적어도 일주일은 버틸만했기 때문에 이토상과는 돌아오는 토요일에 함께 시내에 나가기로 했다. 캐리어에서 온갖 레토르트 식품들과 햇반들을 꺼내서 진열해 놓으며 며칠이나 먹을 수 있을지 계산 하는 동안,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생각난 건 우연이 아니겠지.*     


*마션 - '마크 와트니'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화성에 표류하게 되어 남은 식량을 아끼고, 감자를 키우며 생존하는 모험담을 그린 영화다.



하루 종일 비가 왔기도 했고, 작업을 시작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해가 질 때 까지 내내 a.house에 머물렀다. 카페 내에는 아키타를 소재로 내가 직접 작업을 한 이미지들이 들어간 손거울과 스티커, 엽서를 진열했고,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져온 종이와 캔버스 천, 물감, 붓과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작업대 위에 펼쳐놓았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카페가 운영을 하지 않고, 이토상도 휴무이기 때문에 오늘과 내일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조금씩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작업을 해 본 경험은 이번이 세 번째다. 2년 전 겨울에는 미국 뉴저지에서, 봄에는 도쿄에서 두 달 정도 머무르며 작업을 했다.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번거로운 일일 수 있는데, 작업을 위한 온갖 도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낯선 곳으로 떠나서, 평소에도 머리를 싸매고 하던 일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솔직히 꽤나 고된 일이다. 물론 거기에는 금전적인 고민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유는, 여행이라는 행위가 익숙한 일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선택지들을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우리는 마치 세상을 처음 본 어린아이마냥 무엇 하나 무침코 지나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시선을 주고,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이렇게 <신선하게 보는>방법은 창작에 있어서 무척 유용하다. 비단 창작뿐이랴. 일상이 주는 수십 가지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여행은 내일에 대한 기대를 확신시켜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내일이 기다려지면서도, 벌써부터 이곳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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