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 오후 (웨일북)
책 표지만 보고는 단순한 인문과학 교양서인줄 알았는데,
그 이상의 것들을 안고 있는 책.
데이터과학자 다비도위츠는 자신의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이렇게 예언한다.
“차세대 킨제이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차세대 푸코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차세대 마르크스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차세대 소크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그의 말은 옳다. 앞으로는 어떤 분야든 새로운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차세대 예수와 무함마드, 괴벨스까지도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심지어 무분별한 빅데이터 사용을 반대하는 시민운동가 캐시 오닐조차 데이터과학자다. 우리의 사고는 이미 데이터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주장에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것은 옳고 그름, 좋고 나쁨과는 무관하다. 나쁘다 해도 피할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어떤’ 데이터과학자가 되느냐 하는 것뿐이다.
2020-03-21 15:22:11
자유는 20세기 중요한 가치였고, 그 가치를 좇은 이들의 노력으로 세상은 이전보다 좋은 곳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뇌과학은 자유라는 것도 우리가 받은 자극의 결과일 뿐이라고 폭로한다. 데이터가 모이면 모일수록 데이터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알게 된다. 우리는 자유롭게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선택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조작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정보와 자유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가 있다면 모든 것이 다 밝혀지고 데이터화되어도 상관없다. 데이터를 초월해 우리는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기에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선거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선택은 조작될 것이다.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느끼기에 문제 제기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가 조작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내세울 수 있을까.
2020-03-21 15:15:25
,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개인적 차별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차별이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데이터가 내린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빅데이터의 피해를 보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다. 강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럴 경우에는 곧 데이터가 수정되거나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그럴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들이 받은 피해는 드러나지도 않는다. 데이터과학자 출신 사회 운동가 캐시 오닐Cathy O’Neil은 빅데이터를 “대량살상 수학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라 부른다. 데이터의 탁월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신뢰가 가져오는 폭력성은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하고 변화를 가로막을 명분이 된다.
2020-03-21 15:04:02
미국 일부 기업에서는 입사 지원자의 신용등급을 점수에 반영해서 신입사원을 뽑는다. 기존 직원의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신용등급이 높은 직원이 낮은 직원에 비해 평균적으로 업무 성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분석은 아마 맞을 것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은 개인 사정이든 집안 사정이든 빚이 있을 확률이 높다. 빚이 있는 사람은 빚을 갚기 위해 회사 일 외에 다른 업무를 추가로 해서 회사 일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 때문에 불성실할 수도 있다. 가정 내에 불화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그들이 일을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용등급이 점수에 포함되는 것이 정당한가? 그것은 차별이 아닌가?
합리성을 무기로 이런 심각한 빅데이터 차별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인공지능이 이력서를 검토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기존에 입사한 직원들의 이력서를 바탕으로 지원자 중 기존 합격자와 유사한 이를 추려낸다. 기존에 합격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토대로 신입사원을 뽑는 것은 평균적으로 정확하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비슷한 스펙을 가진 경우 인공지능은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했다. 입사한 직원들의 승진 속도까지 대입하면 인공지능의 남성 선호도는 더 올라갔다. 승진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그 기업에서 일을 잘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승진이 빠른 사람의 데이터를 참고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다(물론 승진 여부와 능력을 묶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그런데 왜 그중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많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편견으로 여성이 진급에 불이익을 당했을 수도 있고,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겪은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과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일을 잘했을 수도 있다. 빅데이터가 그렇다니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입사부터 성별을 차별하는 것은 정당한가?
2020-03-21 15:01:16
우리는 이제 길을 갈 때 더 이상 길을 보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을 본다. 내비게이션만 보고 절벽으로 차를 몰아 사고가 난 운전자도 있다. 사고가 난 절벽은 누가 봐도 절벽이었지만, 구조된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길래 당연히 길인 줄 알았다”라고 진술했다. 도로 시스템과 교통량을 실시간으로 내려받는 내비게이션은 어떤 운전자보다 길을 잘 안다. 내비게이션을 따르는 건 당연하다. 한 명쯤은 절벽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전체 사고량은 줄어든다. 하지만 과거처럼 운전하다 새로운 곳을 발견하거나, 기분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하는 소소한 삶의 이벤트는 사라졌다.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우리는 결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차라리 광고가 섞여 있어 어떤 것이 진짜인지 가려야 했던 구글 이전의 검색 사이트가 우리에게는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실수를 종종 하는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일은 할수록 는다. 운동을 해야 근육이 늘어난다.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세세한 부분에서 결정을 내려봤던 경험이 결정적 순간에도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인간은 이제 그 기회를 완전히 빼앗겼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인 사회로 가고 있고, 그것은 옳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2020-03-21 14:48:24
. 효율적인 빅데이터는 소수자를 배제하고 다수의 이익에 부합한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과연 효율을 무시한 채 약자를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의 방식을 습득한 기계는 인간의 편견까지 그대로 물려받는다. 이전에 존재하던 소수자 배척은 빅데이터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배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공정함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가 얼마나 피해를 받는지도 빅데이터로 수치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런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빅데이터가 과정이 아니라 효율성만을 찾아간다면 그 길은 필연적으로 차별로 흐르게 된다.
2020-03-21 14:47:18
.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나는 올빼미 버스 도입 이후 1년에 1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절감했다. 하지만 올빼미 버스가 지나가지 않는 지역 주민은 10만 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정작 가난한 사람일수록 일상생활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서울시의 올빼미 버스는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매우 훌륭한 정책이지만, 상대적으로 교통 소외 지역 주민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 도시 정책을 수립할 때 효율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약자를 고려하는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 보완책이 필요하다.
2020-03-21 14:45:22
우리는 평생을 이성애(특히 남성 중심) 성교에 노출된 채 산다. 양지의 성교육이든 음지의 야동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대부분 이성애 성교가 등장한다. 꼭 성교가 아니더라도 사회는 일상적으로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고, 우리는 관습대로 자신의 성역할을 흉내 내며 산다. 자신의 욕구조차 배운 대로 반복한다. 남성은 여성을 트로피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대부분 이성 관계에서 섹스는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해진다. 남자들은 의례적으로 파트너에게 좋았냐고 묻지만 그건 자기 만족을 위해서지, 파트너를 위해서가 아니다(그러니 여성도 좋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반면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은 처음에는 성교 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들의 성교에는 제약이 없다. 그들은 대화와 경험을 통해 자신과 파트너가 원하는 방식을 찾아간다. 처음엔 서툴더라도 결국 자신들만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가 강요한 성 정체성이 없었기에 오히려 자신의 오르가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020-03-21 10:37:49
대부분 성소수자가 학창 시절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그들이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것은 그들이 혼란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아무도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혼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 고민의 시간이 아이들을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020-03-21 10:35:41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성소수자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타고나기를 성소수자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혐오하는 사람들 말대로 성장 환경 때문에 성소수자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모두 인위적인 존재다. 아파트 지어놓고 침대 위에서 자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밤에 전등을 켜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당신이 오럴섹스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2020-03-21 10:26:49
대부분 사람은 평생 한 가지 성으로밖에 살아보지 않아서 성차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만 해도 성차별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 책에서 본 객관적인 수치뿐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의 증언은 수치화되어 있지 않지더라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여성과 남성의 삶을 다 겪어본 이의 이야기 아닌가. 일본에서는 FtM의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최대 8배 정도 높은 편인데, 이는 남녀 차별이 심한 일본 특유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2020-03-21 10:22:44
FtM은 대부분 “남성이 된 뒤의 삶이 여러모로 편하다”라고 말한다(트랜스젠더라는 게 주변에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 직장에서나 사회생활에서 여성일 때 겪었던 많은 불편이 남성이 된 뒤로는 사라졌고 급여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반면 MtF는 트랜지션 후에도 차별에 시달린다. 미국 자료에 따르면, MtF의 60% 이상이 강력 범죄(주로 성범죄)에 노출된다. 사람들은 MtF를 일반 여성보다 더 ‘쉬운’ 상대로 여기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착각한다.
2020-03-21 10:22:37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남녀만이 전부라고 여겼던 이에게 다른 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충격을 준다. 성이 바뀌는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면,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성의 기준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다른 성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모든 걸 바꾼다. 동성애자는 치료 가능한 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트랜스젠더는 풀 수 없는 문제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다른 모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2020-03-21 10:20:01
착각하지 말아야 할 건, 성기 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단지 시스젠더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닐 뿐이다. 한 트랜스젠더는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로서의 삶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만, 사회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회는 구성원에게 오직 여성이거나 남성이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흔히 이슬람 문화권은 성소수자와 여성의 인권이 형편없다고 생각한다(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몇몇 이슬람 국가는 다른 성소수자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특별히 트랜스젠더만은 허용한다. 가령 이란에서는 동성애자에게는 최대 사형을 내리지만, 트랜스젠더에게는 수술비와 정신과 치료비를 지원해준다. 우리가 보기에 이들의 정책은 일관성이 없다. 동성애를 처벌하면 트랜스젠더도 처벌하고, 처벌하지 않으면 모두 처벌하지 않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일관성이다. 우리에게 그들은 모두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란은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 게이와 레즈비언은 기존의 성관념을 흔들고 종교의 권위를 위태롭게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최후에는 어쨌든 한 성에 정착하기 때문에 기존 성관념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남자가 되면 남자 역할을 하면 되고, 여자가 되면 여자 역할을 따르면 된다. 이 모순이 이해가 되는가?
2020-03-21 10:18:59
물론 “사회의 기강 확립을 위해 이 정도 검증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에는 성별을 변경하는 데 의사의 진단이나 법원의 허가가 전혀 필요 없는 국가도 존재한다. 덴마크, 몰타, 스웨덴, 아일랜드, 노르웨이, 포르투갈은 일정 나이가 되면 의사의 진단 없이 스스로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시각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자. 성별을 바꾸는 게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국가가 강압을 해야 한단 말인가. 성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해줬다고 해서 이 국가들에서 사건 사고가 생겼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하다 보면 본질적인 의문이 생긴다. 성별 정정이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과연 사회가 애초에 성별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나눌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생활에는 피해가 없도록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2020-03-21 10:15:44
1초(s): 시간 단위. 처음에는 ‘평균 태양일(24시간)의 1/86,400’이었으나, 지구의 자전이 일정하지 않고 아인슈타인이 시간이 변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정의가 바뀌었다. 현재 정의는 ‘절대영도 상태인 세슘-133 원자의 바닥 상태에 있는 두 개의 초미세 에너지준위의 구조 사이를 전자가 이동할 때 흡수 방출하는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초가 중요한 것은 초를 기준으로 다른 단위들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1미터(m): 길이 단위. 처음에는 지구 자오선의 1/40,000,000로 정했다. 하지만 지구는 완벽한 구형도 아니고 크기도 계속 변한다. 그래서 현재는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1미터를 정의한다. 즉, 빛은 진공에서 1초에 299,792,458m(약 30만km)를 이동한다.
1킬로그램(kg): 무게 단위. 그램(g)이 기본 단위가 되어야 하지만, 그럴 경우 숫자가 너무 커지므로 킬로그램을 기본으로 잡았다. 처음에는 ‘1기압에서 10cm3 부피의 용기에 담긴 4℃ 물의 질량’으로 정의됐지만, 이렇게 정의할 경우 오차를 일으키는 변수가 너무 많아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원기’로 변경됐다. 백금과 이리듐으로 원기를 만든 것은 이 두 금속이 화학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안정적이어도 물질은 변하게 마련. 핵폭탄이 터져도 멀쩡한 방공호에 3중으로 유리관을 씌워 보관했지만, 원기는 미세하게 변했다. 독일의 한 표준과학자는 원시적인 방식인 원기를 사용하는 킬로그램을 “하얀 재킷에 묻은 작은 얼룩”이라 비꼬았다. 결국 2018년 개최된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킬로그램의 정의를 바꿨다. 2019년 5월 20일(세계 측정의 날)부터 1kg의 정의는 ‘플랑크 상수가 6.62607015×10-34 J s가 되게 하는 질량’으로 변경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사용하는 것에는 아무 변화도 없다는 것이다.
2020-03-20 10:4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