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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r 23. 2020

지극히 개인적인 인용문(4)

죽음의 에티켓 - 롤란트 슐츠 (스노우폭스북스)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 아주 친절하고 상세한 묘사를 통해 임사 체험이 가능하게 해 주는 책.

나는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무척 궁금하다.

삶의 이면으로 향하는 이야기는 그 궁금증을 조금은 해갈해주고, 

동시에 친근한 것으로 바라보게 한다. 















벌써 이 사망자들의 목록을 읽는 시간 동안 삼사십 명이 더 죽었습니다. 1분마다 100여 명이 죽습니다. 시간당 거의 6,500명이 죽습니다. 하루에 15만 명이 죽습니다.
각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저 사망자들입니다.
누구나 홀로 죽는다는 것,
그의 죽음은 유일무이한 사건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의 역설입니다.
죽음이란 건 완전히 일상적인 과정이고, 그래서 세상에 그보다 더 보편적인 현상도 없습니다. 탄생처럼 죽음의 순간에도 우연히 선택된 사람들과 함께 갑니다.

2019-10-23 15:51:42




육체가 황폐해집니다. 힘이 다 빠져나가죠. 탄력 없는 엉덩이에는 기저귀를 차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무 가치 없는 물건처럼 보일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죽어가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죽음은 자신을 벌거숭이로 만들고 개인적인 깊은 치부까지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아무런 결정권 없이 완전히 다른 힘에 맡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을까 두렵고 상처를 줄까 봐 무섭고 소중한 이들을 힘들게 할까 봐 두렵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다면 가족들과 그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매우 좋은 일입니다. 대화를 통해 당신이 어떤 걸 꺼리는지 그들도 알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이 임박하면 혼자 있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벽 쪽으로 돌아눕고, 가족들은 거기서 그의 마지막 바람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견디기 힘들어하는 그 마음이 겉으로 내비치는 것이지요. 특히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표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요양사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차단해 줄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다른 이들이 당신을 보는 것을 허락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자식들, 친구들, 가까운 가족들이겠지요.
많은 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라야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용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죽음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곁에 있는 이들도 언젠가 한 번은 죽을테니까요.

2019-10-23 14:14:21







당신은 이제 입으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말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당신의 목소리는 호흡처럼 들립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마지막으로 마쳐야 한다면 바로 지금 해야 됩니다. 앞으로 더 쇠약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기회가 없습니다.
‘용서할게, 미안했어, 사랑해, 고마워, 잘 있어’라는 말을요.
그건 당신이 꼭 해야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있는 그런 병동에서는 달콤한 화해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수년 동안 갈라놓았던 틈을, 마치 죽음이라는 최정상에서 화합이라도 할 것처럼 하는 화해. 좋은 또는 아름다운 죽음으로 절정을 맞는 찬란한 종결.
그런 생각은 오로지 건강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상상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죽음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산 사람도 그걸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에는 고통도 속하고, 통증도 속합니다.
물론 말로 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건 어렵죠.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본 사람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고통 가운데서 인간의 존엄성을 체험하는 것만큼은 위로가 됩니다.


2019-10-23 14:13:14







그들에 대한 존중심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환자에게 헛된 희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적어도 너무 큰 희망을 주지 않도록 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국 당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게 분명하니까요.
예전과 같은 삶,
아무 고통 없는 시간,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일하던 것들,
여행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그런 것들로부터 너무 먼 길로 들어섰습니다.


2019-10-23 13:57:34








이들 의사들은 아직 당신에게 할 치료법들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얀 무리와 당신이 더 이상 당신에 자신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면, 오직 당신의 병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고집스럽게 주장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러지 못하니까 당신이 솔직하게 논의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당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의사들은 계속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릴지 모릅니다. 의사들은 싸운다는 말을 자주 쓰니까요. 그 순간에는 마치 군인들 같습니다. 단 한 명도 잃지 않겠다며 계속 투쟁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드니까요.
이 투쟁 정신에 문제를 제기하는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투쟁 정신은 사실, 목숨을 구하려는 모든 전투가 결국에는 질 수밖에 없는 전투라는 점을 왜곡시킨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체의학 전문가들은 그런 전투적인 동료들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당신의 환자가 앞으로 열두 달 안에 죽는다면, 그게 당신에게 놀라운 일일까요?”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한다면 이제 그들은 그 환자에게 대체의학을 적용해 돌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2019-10-23 13:53:32







하지만 이제 당신은 자립적이지 않게 됐습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이 일생 동안 무엇이었던 간에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일생 동안 맡았던 역할을 내려놓게 합니다. 어떤 것들은 확 빼앗기도 하죠.
잔인하고 가차 없이.
당신은 어머니였고, 아버지였습니다. 당신은 활력이자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당신은 가난했고 부자였고, 교사였거나 학생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여자였고 창조자였습니다.
부양인이었던 당신을 이제 누군가 먹여 살려야 합니다.
배우자로서 상대를 돌보며 살았는데 이제 요양인이 필요합니다. 보호자로 살았지만 이젠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죽음은 인간을 벌거벗깁니다.
내가 누구인지 다 드러날 때까지 말입니다.


2019-10-23 13:43:40







인간의 역사는 8,000세대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죽어간 인간들의 수를 2천억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곰페르츠(Theodor Gomperz, 오스트리아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편집인 주)의 죽음의 법칙에 기반을 둔 통계학으로 위로를 삼기도 합니다. 즉 서른 살이 되면서부터 인간은 8년에 한 번씩 바로 다음 연도에 죽을 확률이 두 배로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40세에 죽는 것은 불행이고, 60세에 죽는 것은 운명이겠지만, 70세를 넘기기만 하면 통계학적으로 볼 때 (매우 오래 산 것이므로) 더 이상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어떤 이들은 범인이라도 찾아내려는 것처럼 하기도 합니다. 담배, 술, 고기, 직장의 유해물질, ‘만일 이랬더라면, 혹시 저랬을 수도 있을 텐데’라는 식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죽음을 생물학적 의무라고 여김으로써 죽음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자리를 내준 것처럼 당신도 이제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면서요.
어떤 이들은 신을 믿으며 위로를 구합니다. 어떤 종교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다만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길 희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죽음을 밀어내기도 하죠. ‘이 나쁜 죽음이라는 놈아’라고 하면서요.
어떤 길을 택하든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은 완전히 해결이 안 됩니다. 죽어간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까요. 죽어 간다는 것은 배울 수가 없거든요.


2019-10-23 13:36:34







삶에서 당신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만족하고 있습니까?
가능하면 오래 살고 싶은가요?
아니면, 삶의 질이 사는 기간보다 더 중요한가요?
지금까지 당신은 병이나 고통을 어떻게 대했나요?
지금까지 사별한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대했죠?
그때 무엇이 도움이 되었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될까 봐 두려운가요?
왜죠?
이런 질문들이 당신이 살면서 지켜온 가치들을 드러내 줍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적어 보십시오. 그 대답들을 당신의 환자처분서에 붙여 두세요. 그게 나중에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의사들은 당신이 미처 생각해 두지 못한 상황이 왔을 때 당신이 적어 놓은 말들이 품은 가치들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겁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무엇인가 의심이 드는 것이 있다면 당신이 신뢰하는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많은 사람이 이 서류와 주검전권위임장을 결합해서 준비합니다.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들을 대리인으로 임명합니다. 스스로 더 이상 결정할 수 없을 때 대리자로서 결정을 내리하기 위함이죠. 이런 서류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운명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기를 믿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죽음은 비상시에는 인권도 포기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오래된 것입니다. 애초부터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닥치는 운명입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신뢰하는 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불가피한 운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느 편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죽음을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행 조치를 취하느냐는 자유입니다. 이건 당신의 죽음이니까요.


2019-10-23 13:23:35







죽음의 첫 증상이 나타난 사람들은 이 쇠락을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면 도무지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이가 보인다고. 몸이 변화하고, 그 안에 살던 인간도 몸과 함께 변한다’고요.
슬픔이 생활에 침투합니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바다에 갔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산에 갔던 거예요.
일터에서 차를 운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잔 것도 마지막이었습니다.
마지막 눈.
식당에서 받은 마지막 영수증.
당신 머리 위로 뜬 마지막 달.
당신의 재능을 마지막으로 발휘한 것이에요.
어쩌면 그 많은 것을 더 이상 체험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걸 깨닫고는 완전히 허물어져버릴지도 모릅니다. 크리스마스, 손자의 생일, 앞으로 생산될 미래의 와인들, 당신 딸이 어떻게 걸음마를 시작할지, 아들이 어떻게 말을 배울지, 딸의 입학식, 아들의 첫사랑, 당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아무도 모르는 당신만의 소원. 다음번 월드컵, 누가 오스카상과 노벨상을 받는지 그리고 여름의 태양을요.
어떤 형태로든 슬픔은 찾아오겠지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겁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하든 죽음이 그림자를 드리우겠지요. 그리고 그 때문에 삶의 아름다움은 더 강렬해집니다.


이제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마세요.
그냥 생각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뭔가요?
나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소원이 이뤄져야 할까요?
어떤 준비를 해야 하죠?
그래요.
하지만 이것만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죽음 직전의 시간과 죽음 뒤의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요.
이미 누군가는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합니다. 인생의 중턱에서 말입니다. 또 누군가는 늦게 혹은 위기나 병을 면전에 두고 준비를 하기도 하죠.
어쨌든 죽음을 준비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죽음이 임박한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돌봐 줘야 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의사나 장의사나 운구자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 그들은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준비에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환자처분서, 사후 방식, 유언장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이지만 내가 죽은 후의 관점에서 써야 합니다. 환자처분서라는 게 가장 까다롭습니다. 이 서류는 더 이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자신의 의지를 미리 말해 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까다로운 점은 환자처분서는 당신이 분명하게 명시한 상황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법무부, 의사협회, 복지단체에서 서식을 마련해 두고 있거든요. 그걸 쓰면 됩니다. 예를 들면 병의 마지막 단계에서 의사가 해야 할 일 혹은 하지 않아야 할 일,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이뤄져야 하는지 등입니다.
당신은 의사들이 어떻게 해 주길 바라나요?
아니면 무엇을 절대 하지 않기를 바라나요?


2019-10-23 13: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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