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낵 드로잉
많은 이들은 내가 이곳에 와서 작업에 많은 변화가 보인다고 이야기해줍니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나는 그동안 어느 정도 규격화된 작업을 해 오느라 꺼내지 못했던 내 안의 것들을 이곳에서 별로 애쓰지 않고 가감 없이 꺼내어 놓고 있을 뿐입니다. 이곳의 언어를 배우지 않았기에 이미지처럼 춤추는 거리의 표지판과 글자들, 길거리에서 주워온 - 이곳의 냄새와 흔적과 이야기가 배어있는 골판지와 온갖 종류의 종이조각들, 중고 서점에서 헐값에 파는 오래된 헌책들, 이방인의 시선에 담기는 모든 풍경들이 소재가 되어 즉각적인 창작으로 이어집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동안 하나의 작업에 매달렸던 평소와 달리, 여기서의 드로잉은 순식간에 시작해서 예기치 못하게 끝이 납니다. 때문에 드로잉은 실패와 실수에 대한 부담이 없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스낵 컬처라는 말이 있듯 나는 이런 행위를 스낵 드로잉(Snack drawing)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여기에 대한 역사는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학부생 시절, 은사셨던 오원배 교수님께서는 일주일에 드로잉을 무려 200장씩 시키셨고, 한 장이라도 장수를 채우지 못하면 우리는 호되게 혼이나곤 했는데, 200장을 채울 때면 정말 나 자신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즙을 쥐어짜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그렇게 스스로의 즙을 짜는(?) 훈련을 통해 우리에게 창작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문법을 가르쳐 주신 것 같습니다.
7월이 되어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분명히 익숙했던 작업 방식으로 다시 복귀할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일들은 그것이 가능한 특별한 조건이 있는 법입니다. 게다가 나는 이런 방식의 자유로운 작업에 너무 능숙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파리에서 삼 개월이 아니라 일 년쯤 머물게 된다면 이 작업들의 방식에 일련의 루틴이 정해질 게 분명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규격화가 될 것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체계를 만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떠나기 전의 그것과 같이 더 이상 이 풍경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이며, 익숙함에 더 이상 물들기 전에 아쉬움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방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 서툰 감각과, 결국 남겨질 수밖에 없는 확실한 아쉬움과 후회의 쌉싸름한 감각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결국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꾸게 하며,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확실한 약속을 낳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