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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ug 18. 2018

오늘의 안부

오 년 간 작가로 살아온 어느 날

안녕하세요, 저는 멸종된 도도새를 통해 획일화된 현대인들을 비유하는 작업을 하는 김선우 작가입니다. 라고 로봇처럼 정말 수십, 수백 번은 더 이야기 한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이제 신물이 나서,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린지 오 년이 지났습니다. 첫 전시는 대학생시절 쌈짓돈 십만 원을 내고 교내 전시장을 빌려 열었던 단체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어설펐고, 친구들 몇몇만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설레고 즐거웠습니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오 년간 정말 고군분투 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온갖 공모에 매달리고, 수백 번 탈락의 쓴맛을 맛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이력이란게 단 한 줄도 없던 그 때, 공모전 마다 으레 요구하는 이력서에 도대체 쓸 말이 없어서 무척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건 정말 친한 사람한테만 이야기 했던 건데, 사실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은 어느새 글씨 크기를 줄이지 않으면 A4 종이 한 장에 다 담지 못할 만큼의 전시와 이런저런 일들을 해냈지만, 어째서 그 휑했던 백지장 같은 이력서가 문득 그리워지게 되는 걸까요. 누군가는 저에게 어깨를 툭. 치며 잘나가서, 그래도 그림이 팔려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기분 좋기보다는 <작가님>이라는 이름이 무겁고, 무겁고, 무겁게 느껴질 뿐입니다. 저는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요.


오늘도 분주한 하루였습니다. 오전에는 이런저런 서류작업을 하다가 오후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수업을 위해 청소년 수련관에 다녀와서, 저녁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밥을 해 먹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요즈음엔 주 삼일은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일을 하고 있어 조금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 와중에 마음만은 하루 종일 이국의 저 먼 어느 땅을 걷고 있습니다. 그 때, 설렘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 존재하지도 않는 도도새라는 새를 찾아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으로 떠났을 때 여정 내내 터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펄펄 뛰었던 심장의 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8년 8월, 간신히 열대야를 벗어난 어느 청량한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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