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Mar 26. 2022

불화하는 몸과 정신

존경하는 대통령님, 지독한 식이장애 바이러스를 방역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젯밤 꿈에서 나는 육 개월 전의 나였다. 육 개월 전의 몸이었다. 현실에서 뜬 눈으로 본 거울 속의 내가 아니라.


너무 순식간에, 눈 깜짝할 새에 불어나 버려서 내 정신은 아직도 현실을 몸을 인정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있다. 현재의 내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를 생각할 때 과거의 내 몸을 생각한다. 멀지 않은 과거의 나. 그러나 멀지 않은 미래는 현재의 몸과 더 가까울 테고, 과거와 더 멀어질 것이다. 요요는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내 몸과 자주 불화한다. 자주 내 몸이,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견딜 수 없게 꼴 뵈기 싫어진다. 내 몸을 받아들이는 내 정신은 실재 나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신은 만족스러웠던 과거를 자주 떠올린다. 과거를 되짚는 건 안 좋은 습관이다. 만족스러웠던 짧은 순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지금의 몸이 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증오한다.


지겹다. 진부하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익숙해서 하는 나조차 재미가 없다. 줄줄 늘어놓는 것은 멈춰야겠다.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들. 너무 많이 곱씹은 문장들. 내 뇌는 이제 조금의 낌새만 있어도 전혀 노력하지 않고 수백 수천 번 생각했던 문장들을 술술 만들어낸다. 살을 빼고 싶지만 요요가 와버린다. 내가 너무 싫어. 마르고 싶어. 내 몸을 대체 어떻게 긍정할 수 있냔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나는 그만 심각해지고 싶다. 절망, 고통, 괴로움, 이제 지루하다.


식이장애가 생각보다 흔하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다. 이제는 안다. 내가 읽었던 식이장애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글은 록산 게이의 ‘헝거’였다. 그즈음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진절머리가 나서 누구라도 해답을 주었으면 하고 폭식과 관련된 책을 찾고 있었다. 그 책을 도서관의 구석진 책장에서 뽑았을 때 책장들이 하나같이 누렇게 바래있었다. 어디서 읽기로는 요즘 책들은 무슨 화학 공정을 하기 때문에 잘 바래지 않는다던데 옛날 책인 걸까? 발행하고 얼마나 지나야 옛날 책이 되는 걸까? ‘헝거’는 2018년에 출판되었다. 그다지 예전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모든 페이지가 누래졌는지 모르겠다.


책을 빌리고 얼마 뒤 고속버스를 타고 왕복할 일이 있었다. 캐리어에 책을 넣어갔다. 가는 길에서는 읽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서 꺼냈다. 나는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버스터미널 4층의 비좁고 시끄러운 카페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허리보다 높은 캐리어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자꾸 도망가서 다리 하나와 팔 하나로 잡아 놓으려 애쓰고 있었다. 책을 조금씩 읽어나가는데 내 눈앞에서 단어와 문장이 서술하는 장면들과 카페의 어수선히 어지러진 탁자와 의자들, 이야기하는 여자들, 홀로 휴대폰을 스크롤 하는 남자의 모습들이 겹쳐졌다. 나는 당근을 먼저 먹어 ‘표시’한 뒤 저녁 약속을 즐기고 돌아와 변기를 붙잡고 표시해둔 주황색이 보일 때까지 모두 게워내는 록산 게이와 불퉁한 얼굴로 주방에서 근무시간을 견디는 직원을 함께 보았다.


그때 당시에는 그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문장들을 따라가기 바빴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록산 게이가 말하는 자신의 몸과 불화하기 시작하는 시발점의 사건은 내가 어릴 때 겪었던 일과 조금 유사했다. 자세한 세부 사항을 따지지는 말자. 나는 생각했다. 시대를 건너, 바다를 건너, 그 강도와 방식은 달라도 어린 여자아이들은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성적으로 학대 당한 경험을 가지고 성장하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가보다.


그렇다고 내가 몸과 불화하기 시작한 시발점도 그 일 때문인 건 아니었다. 나는 더 뻔하다. 다이어트를 진짜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처음으로 시도한 극도의 절식 다이어트, 이어진 폭식과 요요. 이런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휘갈기고 여러 번 보여줬다. 넘어가자.


최근에는 먹고 토하는 것을 두어  했다.  식도에 몹시  좋은  같다는 느낌이 바로 와서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전에 뷔페에서 한계까지 먹었다가 모조리 게운 후로 목이 한동안 하도 따끔거려서 잠시 코로나에 걸렸나 의심했다. 나는 지금까지 PCR 검사를 적어도 스무  넘게 했지만 양성이 나온 적은  번도 없다. 백신을 3차까지 맞았을 때도 거의 멀쩡해서 코로나가 별로 무섭지 않은  같다는 안일한 생각까지 했다. 안일해지면 안된다. 바이러스는 안일해지지 않는다.


식이장애도 어쩌면 바이러스일지 모르겠다. 왜냐면 먹고 토하는, 소위 ‘먹토’에 대한 이야기를 절친한 친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식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했다는 건 아무래도 충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먹토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래도 목에 몹시 해롭다는 이야기를 읽었고 하고 나면 추락하는 기분과 자괴감과 우울감이 몰려오니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먹는 것이 좋다.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한 결과로 다이어트를 결심해야 했다. 식도와 위가 망가져서 잘 먹을 수 없게 된다면 그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 군데서는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는 거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지금까지 네 번, 아니 다섯 번. 어쩌면 여섯 번 정도 징그러운 폭식기가 있었다. 지겨우니까 넘어가자.


카페에서 이른 오후부터 늦은 저녁까지 모기에게 팔다리를 뜯어 먹히며 이야기하다가 친구는 가방에서 그 약을 꺼냈다. 내 앞에서 삼켰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잔인했다. 안쓰럽고 안타깝고 괴로워서 줄줄 울었다. 한탄스럽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지옥 같고…넘어가자.


나는 약봉지로 가는 시선을 멈출 수 없었다. 흐릿하게, 염증약처럼 길쭉한 캡슐이 든 불투명한 봉지를 힐끔거리는 눈알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네가 너무 걱정된다고 울며 친구의 손을 붙잡았다. 제발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애원하는 동안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친구보다 훨씬 무거운 나는 더 쉽게 약을 받아올 수 있을 것 같지 않냐는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무서워서 약을 받으러 가지는 않았다. 무서웠다. 약을 받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들이. 듣기로는 아주 별 것 아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잔뜩 쫄아서 엄두도 못 냈다.


친구는 말했다. 내가 가장 처음 극도의 절식과 하루 절반을 투자한 운동으로, 내 안쪽 어딘가를 파괴하며 만든 앞자리 3의 몸으로 친구를 만났을 때 내가 너무 부럽고 예뻐 보였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쪽 어딘가가 조금씩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식이장애는 역시 바이러스다. 지독하고 질이 나쁘다. 바이러스는 보균자들끼리 서로의 결핍과 갈망과 몸과의 불화를 강화하게 만든다. 보균자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걱정은 마시라. 훨씬 거대하고 강력한 미디어라는 것이 수시로 바이러스를 쑥쑥 키워준다. 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 것은 어렵다. 예방하는 것도 어렵다. 코로나만큼 유명하지는 않아서인지 이 바이러스의 치명도는 자주 과소평가 된다. 내 생각에 실은 사람들이 바이러스가 널리, 깊이 퍼져서 바이러스에 걸린 여자와 여자애들이 몸을 극단적으로 괴롭히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보기 좋아질 수 있다면.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증상을 원한다. 내 안쪽 어딘가에서 지금도 속삭이고 있듯이.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증언은 차고 넘친다. 완치했다는 사람은 본 적 없다. 들어 본 적은 있다. 어떻게 성공 할 수 있었을까? 한때 잠깐 나도 완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적이 있는데, 실패했다. 지금도 희망은 있다. 절망은 지겹다.


오늘도 심심히 인터넷을 구경하다 어떤 청원에 동의해달라는 글을 봤다. 익숙하게 동의를 완료하고 다른 계정으로도 다시 로그인해서 동의 수를 추가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청원을 일상처럼 동의하다 보면 절박함에 감명받는 예민함이 조금씩 떨어진다. 그러다가 왠지 궁금해서 현재 진행 중인 청원을 추천순으로 볼 수 있는 버튼을 눌러봤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문재인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와 ‘무궁화대훈장 셀프수여 반대’, ‘제발 지하철 9호선 폭행녀를 꼭 강력 처벌을 하여 일벌백계하여 주세요.’ 등의 청원들이 올라와 있었다. 더 긴 제목들도 있었지만…넘어가자. 그래,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면 어떨까. 정부가 바뀜에 따라 곧 사라질지 모른다니까 있을 때 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존경하는 대통령님, 국민 여러분, 보건복지부는 코로나와 함께 식이장애 바이러스의 시급함을 살피고 방역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ㅠㅜ. 어떤 기호로 문장을 끝내야 가장 간절해 보일까? 제목 다음으로는 내용이 빽빽해야 간절해 보일 수 있는데, 내용 채우기는 지겨워서 그만뒀다.


새벽 4시 반. 이제야 잠들 수 있는 시간이다. 내일은 일어나며 꿈과 현실의 괴리를 곱씹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내 정신에게 말을 건다. 오늘 거울을 열심히 들여다봤잖아, 이제는 머리 너도 인정해야 해. 몸, 몸, 내 몸이 이렇게 생겨먹은걸, 다시 한번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다시 한번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 알겠지? 머리는 답한다. 지겹지만 인정 못 해. 이건 내가 아니야. 나는 이 따위로 살고 싶지…넘어가자.

작가의 이전글 신성모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