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기록(6)
뇌의 기저와 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상담사와의 시간이었다.
상담사선생님은 말투가 신기했다. 선생님은 내 말에 계속 느긋한 저음으로 ‘그랬군뇨~’ ‘아.. 속상하셨겠군뇨..’로 듣고 있다는 표현을 했다. 친구랑 장난으로 서로를 비꼴 때만 써 본 ‘예 그러셨군요~’의 말투를 실제로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선생님도 말투에 직업적 온오프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상담선생님이랑은 의사 선생님이랑 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내 생각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셨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의문을 가져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첫 다이어트 이야기를 할 때 왜 살을 왜 빼고 싶었냐는 질문. 당연히 다 빼고 싶어 하고 모두가 그걸 알기 때문에 서로 물어볼 이유가 없는데 질문을 받았다.
살을 빼면 더 예뻐지니까요.
왜 예뻐지고 싶어요?
.. 더 사랑받고 싶어서요.
지금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 아니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런 걸 왜 물어보지 싶으면서 내가 그것들을 원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가족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는 게 가장 의아했다. 독립해서 산지 7년이나 지났고 현재 내 인생에 가족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까 내가 친구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놀았다고 해도 내 27년의 인생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치료라는 말은 식이장애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식이장애와 가족관계에 대한 연관성을 이야기했는데 상담한 지 2시간이 다 지나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아빠 이야기를 할 때는 자랑스러워하고 신나서 이야기하고는 엄마 이야기 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랑 아빠를 같은 정도로 사랑하고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 분에게 느끼는 내 감정의 차이를 직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엄마한테 많이 맞춰주려고 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것, 엄마 먹고 싶은 것이 뭔지 물어보고 그렇게 데이트를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보통 엄마가 그렇게 해주죠”라고 하셨다. 엄마도 나한테 하고 싶은 걸 물어보지만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거라며 허겁지겁 엄마를 변호했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하냐고 물아봤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게 효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대화가 집에 가서도 생각이 났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한테 온전히 다 맞춰줬는데 엄마의 자살 암시 카톡을 받았던 게 그 시작인 것 같았다. 물론 어릴 때도 말을 잘 듣는 아이였지만, 그 기점으로 나는 엄마한테 짜증이나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상담선생님한테 작년 겨울에 엄마한테 식이장애 이야기를 하다가 상처받은 이야기를 했다.
“아 어머님이 약간 눈치가 없으시네요”
누가 내 가족을 이렇게 명확하게 비난한 것은 처음이었다. 친구들이랑 이야기해도 보통은 내 감정에 공감해 주는 것으로 위로를 삼지 상황을 분석하거나 서로의 부모님을 비난하진 않으니까. 근데 이게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후련했다. 친구였으면 눈치도 없고 배려심도 없다고 한 번쯤은 욕했을 텐데 그걸 엄마라는 이유로 한 번도 탓할 생각을 못했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