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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안정제가 저를 재워준대요

식이장애 기록(5)

by 애랑



병원은 상상처럼 으리으리하진 않았다. 큰 빌딩, 넓은 도로를 지나 작고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동네 의원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여기를 가보고 별로면 광양에서 다니라고 했다. 광양에 식이장애 전문 정신병원이 어디 있냐고 짜증을 냈다. 엄마에게 침착하게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한번 터진 감정은 엄마랑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치밀어 올랐다.


의사 선생님은 흰가운을 입지 않았다. 병원보단 잘 갖춰진 학원이나 사무실 같은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를 내보내고 둘이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 물어본 것은 지금 키, 몸무게와 그동안의 몸무게 변화였다.

나는 내 식이장애가 2년 정도 지속된 거리고 생각했고, 그 전의 변화나 상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의 첫 다이어트와 몸무게 변화,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갔을 때의 시점, 가장 말랐을 때와 이유 상황 등을 물어보셨다. 나는 57~66kg 정도의 몸무게 범위에서 9킬로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심한 사람들은 변화 폭이 몇십 킬로를 넘나 든다고 했다. 나는 실제로 폭식증의 증상도 심한 (치료는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도는 아닌 상태로 병원에 잘 방문한 거라고 했다. 그도 그럴게 ‘한국형 섭식장애를 말하다’ 책에서 폭토가 심한 사람들에 대해서 묘사한 것을 보면 하루에도 몇 십 번을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고, 피를 토하고, 도구를 사용해 토하고 한다고 했다. 앞부분은 많이 공감하다면서 읽다가 나보다 상태가 심한 사람들의 상황에 놀라기도 했었다.


의사 선생님은 종이에 뇌 그림을 그려 설명을 시작하셨다. 배고픔의 신호를 무시하고 억지로 식사를 통제하면 언젠간 그게 터지는데 그게 폭식이고, 이 억제와 폭식의 패턴이 반복되면 뇌에 성, 우울, 불안, 강박, 수면, 충동 등을 조절하는 뇌의 뒷부분이 고장 난다고 했다. 그래서 식이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무월경, 우울증, 불면증, 도벽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그래서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같이 할거라고 했다. 나에게 처방될, 우울증 약이라고 흔히 부르는 이 약은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거라고 했다. 부작용으로는 식욕이 없어지거나 불면증이 올 수 있는 점. 그래서 예전에는 이걸 다이어트약으로 오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더 안 좋은 다이어트 약들이 널려서 오히려 이용이 줄었다고) 식이장애 전문이 아닌 일반 정신병원에서 식이장애 치료를 권하지 않는 이유도 이 약 때문이 크다고 했다. 약을 먹고 줄어든 식욕으로 환자는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일반 정신과에서는 이 타이밍에 제대로 된 치료가 병행되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약을 먹게 될 경우 이겨내야 될 것도 이 약을 먹고 식욕이 없는 상태에서 매주 100g에서 200g을 10주간 찌우는 거라고 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과체중이기 때문에 식이장애를 치료하면 무조건 정상 몸무게가 되겠지 했다. 솔직히 식이장애를 고치고 나면 건강해지니까 라면서 더 예뻐질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해서 여기서 살을 찌울 거라는 사실을 못 받아들였다. 내기 당황하는 와중에 엄마는 정신병 약=강한 약 이렇게 생각하는지 부작용이나 위에 미칠 영향을 물어봤다.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다시 해주다가 새로운 걸 말해주셨다. 10명 중 한 명 꼴로 불면증이 아니라 잠을 잘 자는 사람 있는데 그게 나일 거라고. 잠을 자면 하루 최소 5번에서 몇 십 번을 깨는 상태로 2년 이상을 살았다. 식이장애 불면증 환자의 경우는 과하게 긴장된 상태가 많은데 이 약으로 긴장이 풀리면 잠을 잘 거라고 했다. 수면질을 높이겠다고 카페인은 입에 대지도 않고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기, 적당히 운동하기, 낮잠 안 자기 등 안해본 게 없었는데, 신경안정제가 날 재워줄 거라니.


식이장애 치료에 필요한 것중에 내담자의 의지, 끈기나 노력은 없었다.


혼자 극복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고른 답이 정답이 아니어서였다.


원인이, 이유가,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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