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기록(7)
첫 방문 때 받았던 질문지를 작성했다. 벡불안척도, 에이맨브레인체크리스트, 모즐리강박척도, 문장완성검사, 성인애착질문지 등 질문지였고 하나의 테스트는 몇십 혹은 백 개가 넘는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 작성하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두 번째 상담 때 제출했는데 검사지를 확인하던 의사 선생님도 큰 특이사항은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맞다. 음식에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했거나, 부모님의 지원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딸 둘인 네 가족의 둘째로 태어나 내 애교가 아빠한테 잘 통하는 것도 알았고 당당한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 덕에 큰 목소리로 웃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 때도 예쁨 받는 후배였고 회사에 입사하고서도 너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거 같아.라는 말을 듣는 밝고 티 없는 사람이었다.
행복하기만 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행복하기만 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질문지의 답안을 작성하면서도 이 무겁고 심오한 질문들에 비해 내 삶의 굴곡은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스로가 뚱뚱하면 친구들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것 같냐는 질문에,
난 그렇다고 체크를 했다.
잡고 있던 펜은 내려놨다. 아니다. 내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는 거지 나의 날씬함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나의 무의식은 사랑받기 위해 날씬해져야 한다고, 더 예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못나지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살이 찐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건 나였다.
날 사랑하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