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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볼 건 음식이 아닌 “나”

식이장애 기록(9)

by 애랑


병원을 다니기 전, 한 식이장애 카페에서 발견한 식단일지를 따라 썼다. 3개월을 매일 썼는데 차도가 없었다. 큰 변화가 없었고 뭐가 문제인지 찾을 수도 없었다.


먹는 행위가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식’에 포커스를 맞춰서 적었는데 적고 나면 늘 후회일지가 되어 있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먹은 것 때문인지 꼭꼭 씹어먹기는 못했지만 만족감이 좋았다. 다음번에는 빵류도 천천히 먹기를 성공해야겠다.] _‘23년


정신과의원에서 유사한 양식을 줬지만 적는 방법을 알려줬다. 나는 가이드를 따라서 내 몸 컨디션과 발생한 크고 작은 이벤트를 적었다.

그렇게 꾸준히 적은 모니터링 일지와 몇 번의 상담을 통해 선생님은 내가 ‘감정 인식을 못하고, 외부 자극에 예민하고, 지치거나 아픈 몸을 돌보지 못하는’ 것을 파악하셨다.


일지에는 상황, 감정, 생각을 적는 란이 있는데 나는 “상황”만 기재했고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적지 못했다.

내가 단순히 “~했다”라고 상황만 적었던 이벤트 상황에서 선생님과 같이 찾을 스트레스 요소는 아래와 같다.


1. 출장이라 아침에 6시부터 일어남

> 아침에 이미 평소보다 피곤했다는 것

2. 같이 나온 팀장님이 딴소리를 많이 해서 업무 시간이 촉박해짐

> 나는 불안하고 화가 났다는 것

3. 처음 보는 업체 담당자와 같이 점심을 먹음

> 불편했기에 소화가 잘 안 되었다는 것

4.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왕창 샀다는 것

> 안 좋은 컨디션이 폭식 욕구로 나타난 것


그렇게 폭식이 터지는 날의 패턴을 찾았다.



이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상이고 안 피곤 한 출장이 어디에 있냐며 지나쳤지만 내 몸은 쉬라고 이야기하는 거였다.


사람마다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다 다른만큼, 신체가 받은 스트레스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스트레스성 위염, 탈모, 식이장애, 암, 공황, 생리불순, 불면증,,, 혹은 이런 것들이 동시에.


죽을 때까지 모르거나 어떤 형태로든 발병이 되고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것 같다.


날 돌보지 않았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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