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기록(10)_끝
생각을 의도해서 할 수는 없다. 공부하다가 초콜릿이, 스트레스받은 날 떡볶이가, 무더운 퇴근길 시원한 맥주가 떠오르 듯, 찰나의 순간에 음식이 생각난 적이 있을 거다. 몸의 신호를 뇌가 해석해서 우리한테 알려주는 거다.
다만 뇌의 해석이 틀릴 수는 있다. 동상에 걸린 사람이 벌거벗고 죽는 경우가 있다. 뇌가 제기능을 하지 못해 극도의 추위를 더위로 인식한 거다. 신경 체계가 망가진 것이다.
몇 년간,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거나 속상하거나 지쳤거나 화났을 때 망가진 신호 체계는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뼈가 한번 부러진 후에 비가 오면 시큰거리고 운동이 과했던 날 부어오르는 것처럼, 내 신경체계와 호르몬 프로세스는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망가져봤다는 티를 내며 엉망인 신호를 보내온다.
약을 끊고 7개월 만에 폭토를 했을 때, 내가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지만 버티고 있었던 걸 알게 되었을 때, 공포가 엄습했다.
폭식과 우울의 이유를 모르겠고 내 세상이 다시 지옥이 된 줄 알았다. 며칠 뒤, 예상치 못했던 PMS였음을 알게 됐고 겨우 호르몬 따위에 내가 1년 넘게 잡고 있던 패턴이 무너진 게 어이가 없었다. 가벼운 에피소드로 넘기려 했지만 다음 달에는 더 심해졌다. 낮에는 폭식과 구토로 밤이면 몰아치는 우울감과 슬픔으로 며칠을 내리 울며 두려워했다.
생리 전, 기운이 없고 몸이 부으니까 입던 옷이 안 잠기고 내가 뚱뚱하고 못생겨 보이는 데다가 여기에 지랄난 호르몬과 상처 있는 신경 체계가 합쳐지는 건 쉬이 넘길 수 없는 이벤트였다.
결국은 나를 계속 돌봐줘야 했다.
생리 주기가 맞지 않은데 병원도 안 가고 있었고, 9시간씩 자던 삶에서 벗어나 잠보단 취미를 선택했고, 괜찮다는 핑계로 식단일지도 안 쓰고 있었다.
몸의 소리를 또 듣지 않고 있었다.
“식이장애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아니다.
“식이장애는 완치가 가능하다”
이것도 아니다.
식이장애는 모두에게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식이장애에서 멀어질 수 있다.
식이장애는 누구에게든 서서히 침투하여 발병할 수 있는 일이나 식이장애를 겪어본 자들에게 발병의 장벽이 낮은 것뿐이다.
그래서 무너진다고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상처가 잠깐 덧났다며 괜찮다고 달래주기로 했다. 아프면 칼같이 병원에 가고, 뽀송하게 빨래 한 이불에서 자고, 좋아하는 책도 읽고, 힘들면 놀기로 한 일정은 취소하고, 가벼운 산책도 나가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추천해 준 영화도 보고, 제일 좋아하는 김밥도 종종 먹을 거다. 나를 계속 들여다보고 나만의 것들로 채운 소소하고 따뜻한 날들을 보내면서 그렇게 버텨낼 거다. 계속 그렇게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식이장애와 함께, 그러나 먼 거리를 유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