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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Sep 12. 2021

말복, 그리고 할머니

지난 말복에 쓴 글


말복, 그리고 할머니


오늘은 말복이다. 우리나라 절기상으로 여름의 끝자락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복날 몸보신을 하려고 대개 삼계탕, 보신탕 등의 음식을 챙겨먹는다.

‘올해 복날 난 무슨 음식을 챙겨 먹었더라?’

생각해보니, 초복 때는 가족들과 치킨을 시켜먹었다. 중복날 당일에는 챙겨 먹지는 못했지만, 다음 날 레토르트 식품으로 나온 삼계탕을 간단히 먹었다. 이제 말복이 되었다. 고민에 빠진다.

‘오늘은 뭘 챙겨 먹나?’

그런데 나는 '말복' 이라고 하면 또 다른 추억이 있다. 어릴 때 키우던 우리 집 강아지이다. 다들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무슨 말복에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나?’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강아지 이름이 바로 ‘말복’이었기 때문이다. 추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 숙부께서 진도 강아지 한 마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오셨다. 이름은 ‘말복’이란다. 흔치 않은 이름 탓에 여쭤보았다.

“삼촌, 왜 이름이 ‘말복’이예요?”

“아~ 이 강아지의 형제들이 있는데, ‘복’ 자 돌림이란다. ‘초복, 중복, 광복, 말복’ 이렇게 말이다.”

웃음을 참느라 하마터면 다음 질문을 하지 못할 뻔했다.

“근데, 허구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초복, 중복, 광복, 말복'이예요?”

작은 아버지는 태어난 시점이 초복 즈음이고 네 마리가 태어나서 그렇게 지었다고 말씀하셨다.

“희진아, 말복이 귀엽지? 근데 이 녀석, 이리 봐도 족보 있는 강아지란다.”

“네? 족보요?”

“응, 족보. 우리나라 정식 진돗개에게만 부여하는 족보 말이다. 나름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강아 지란 소리지.”

숙부께서 못 믿는 나에게 족보를 손수 보여주셨다. 그 때 나는 처음 알았다. 정통 진돗개에게 주는 족보가 있다는 사실을.     

강아지를 너무도 좋아하는 나는 뽀얀 털을 가진 말복이가 예쁠 수밖에 없었다. 어미젖을 떼지 못해서 작은 젖병을 사다 분유를 타줬다. 내 품에 안겨 젖병을 쪽쪽 빨아대던 그 녀석을 잊을 수가 없다. 발발 거리며 걷던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 지…… 작은 몸짓으로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녹였다. 진돗개는 1년 정도면 성견 크기로 성장한다. 우리로 따지면 청소년기에 해당된다. 말복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젖병을  물던 입으로 이제 밥도 잘 먹게 되었다. 뼈다귀도 잘 발라먹었다. 다른 진돗개보다 잘 생긴 말복이는 탄탄한 몸매를 가진 성견으로 성장했다. 주변에 사는 암컷을 임신시키기도 했다.

‘녀석, 저도 수컷이라고.’

그 때는 나도, 부모님도 말복이를 정통 족보가 있는 암컷과 짝을 지어줘야 된다는 생각을 못했다. 하긴, 그런 생각을 갖기 전에 이미 말복이는 이곳저곳에 종족을 번식시켰지만.     

내가 중학교에 가고, 또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말복이도 나이 들어갔다. 방학이 되어 진주에서 합천 집에 오래 머무르게 된 어느 날이었다. 말복이가 있어야 할 개집에 말복이는 없고 개밥그릇만 덩그러니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어? 말복이가 아침부터 어디 나갔나?’

아침에 밖에 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할머니께 여쭤봤다.

“할머니, 말복이 어디 갔어요? 안보이네요?”

“팔았다.”

“네? 팔아요? 왜요?”

“아이구, 희진아! 말복이가 사람을 문다이가. 자꾸 그라는데 우짜끼고?”

“그렇다고 11년 키운 개를 하루아침에 파는 게 어디 있어요?”

화가 났다. 그러고 나는 정말 몹쓸 짓을 했다. 거실 현관 중문 옆에 도자기들을 모아 놓은 장이 있었다. 그 장에 동그란 모양의 고려청자 방식으로 만든 도자기를 들어 바닥에 던졌다.

‘와장창, 쨍그랑!’

이후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거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며, 안방에서 TV 시청을 하시던 아빠며 동생 등 모든 식구가 나와 말씀하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울먹이며 말했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말복이 팔아버렸대요.”     

어째 11년간 키운 개를 그렇게 예뻐한 손녀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팔아버릴 수 있으셨는지. 말복이가 사람을 물었다는 것도 거짓말 같았다. 아니, 설령 그게 사실이어도 가만히 있는 말복이가 그냥 사람을 물리는 만무했다. 말복이는 그 어떤 개보다 똑똑한 진돗개였기 때문이다. 말복이와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말복이. 더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이름모를 개장수한테 판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진돗개는 개장수를 기똥차게 알아본다고 하던데......

말복이와 헤어진 지 벌써 25년이 지났음에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말복이와 함께 했던 11년간의 세월도. 개장수에게 팔린 다음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뻔하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싫다. 말복 때만 되면 그 날 일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나보다.

‘숙부는 왜 이름을 말복이라 지어갖고서는......’     

2018년 여름, 치매로 고생하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도 바로 그 사건이다. 못했다. 그 때는 왜 그랬는지 할머니가 너무 밉고 싫었다. 그런데 병환으로 고생하시던 할머니를 뵈었는데 그렇게 죄송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3년,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까지 5년 동안 밥 해주신 할머니신데,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영상통화 했던 때가 생각난다. 병원에서 너무나 마른 모습으로 누워계신 할머니, 고모가 영상 통화를 해서 할머니를 비춰주었다. 그게 살아계신 할머니를 뵌 마지막 모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말복이 왔다. 말복이 되면 떠오르는 우리 집 강아지. 하얀 진돗개 말복이. 말복이도 말복이지만, ‘말복’이를 생각할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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