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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Sep 26. 2023

시험 부감독 하러 중학교 방문

백백 프로젝트_13기_100_열여섯 번째 글

어린 시절 꿈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갖게 된 꿈이었던 듯하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 점수를 잘 받지 못하다 보니 수시(당시에는 특차전형이라 불렀다)로 대학에 가지는 못다. 더구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때 거의 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사범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점수에 맞춰서 겨우 지방거점 국립대에는 진학할 수 있었다. 원하던 과는 아니었기 때문에 전공은 4년 내내 학점을 잘 받지는 못했다. 그나마 국어국문학과 부전공을 했기 때문에 원하던 공부는 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오늘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중간고사를 치는 날이다. 이번 해에는 명예교사로 지원했다. 정감독인 학교 선생님을 도와 부감독으로 아이들 시험 때 감독하는 일이다. 딸이 중학교 다닐 때에 몇 번 봉사한 이후로 오랜만이다. 학교 선생님 역할을 잠깐이나마 할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을 얻는다. 오늘은 시험이 수학 한 과목 밖에 없기 때문에 10시 20분까지만 대기실에 가면 된다. 늘 명예교사 대기실은 중학교 건물 2층에 위치한 도서실이다. 도서실에 들어가서 몇 분이 지났을까 어떤 어머니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혹시 대학 다니는 큰 딸 있지 않으세요?”

알고 보니 큰 딸보다 두 살 많은, 그러니까 큰 딸 2년 선배의 엄마였다. 1학년 때 학교 어머니 활동할 때 자주 뵈었던 분이었다. 기억력이 좋으셨다. 나도 인사를 건네고 나니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하긴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럴 법도 하다. 둘째가 딸보다 2년 선배이고, 위에 25살인 딸도 더 있단다. 막내가 지금 중학교 3학년이라 한다. 아들과 동갑이다. 신기하다. 그리고 옆에 앉은 어머니의 아들은 첼로를 취미로 한다고 하니 이따가 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다. 얼마 전 예전 교장 선생님이 정년퇴임을 하셨다했고, 오늘 첫 방문이니 처음 뵙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에게 너무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첫째 때에는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둘째는 그냥 학교 잘 다녀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고마울 정도이다. 요즘 워낙 학교에 대한 좋지 않은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그저 아들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게 엄마의 역할이지 싶다. 엄마의 과도한 치맛바람으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 화가 나기도 한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그나마 크게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어서 감사하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다 듣고 시간이 그래도 남아 있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어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예비령이 울리기 3분 전. 어머니들이 하나 둘 일어서길래 나도 3층에 위치한 2학년 6반 교실로 향했다. 시험 부감독을 맡은 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교탁에 서 있기에 나는 학생인 줄 알았다. 너무 젊어 보여서 이다. 그러다가 만지작거리는 노란 봉투를 발견했다. 출제된 시험지가 들어있는 봉투다. 앗, 정감독 선생님이다. 어서 들어가서 인사를 드렸다.

“저는 학생인 줄 알았어요. 어려 보이셔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곧 예비령이 울리고 나에게 OMR카드를 건네주셨다. 아이들에게 배부하라는 것이다. 교실 창문 쪽과 복도 쪽은 6명씩 앉아 있고, 안쪽은 7명씩 앉아 있었다. 복도 쪽에 한 친구는 결석해서 결시생이다. 선생님도 수학과목 시험지 두 장씩을 친구들에게 배부하고 인쇄상태를 확인해 보도록 했다. 다 확인한 친구는 반을 접어 답지를 올려두라고 말씀하셨다. 본령이 울렸다. 나는 뒤쪽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마음속으로 응원하면서.     






시험 시간은 45분이다. 25문제 객관식을 시간 내에 풀고,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답안 표기까지 완료해야 한다. 연필로 슥슥 문제 푸는 소리와 이따금씩 책걸상이 삐걱 거리는 소리만이 교실을 메웠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정적이 흐르자, 에어컨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한기가 느껴지는지 어떤 친구들 담요를 무릎에 올렸다. 혹여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릴까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자리에 앉거나 서서 아이들을 감독했다. 쭉 둘러보는데 다행히 커닝을 시도하는 친구는 없었다. 선생님도 아이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수학 과목이라 아이들이 숨 쉴 틈이 없기도 했다. 1분 1초가 아까웠던 수학 시험 치던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인생을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수학 시험을 쳤는가. 지금 이 시험이 아이들에게는 중요하겠지만, 성인이 된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시험 성적 때문에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이곳은 지방 학교라서 그런 일은 없었다.     


시험 중간쯤 되었을까. 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부르셨다. 답안지에 감독인을 찍을 시간이기 때문에 교탁에서 감독하라는 지시이다. 감독란에 내 이름을 쓰고 서명하게 하셨다. 금방 알아채고 나는 정감독 위치에서 감독을 했다. 기분이 묘하다. 학교 선생님이 된 듯 황홀하다.

‘만약 내가 중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잠시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선생님이 확인을 다 하시고 다시 나는 뒤로 갔다. 명예교사(부감독)로 돌아간 것이다. 10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의미 있었다.     






10분 전, 정감독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답안작성하라고 말씀하셨다. 문제 풀기에 여념이 없던 아이들에게 환기를 시켜주시기 위함이다. 5분 전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2분 정도 남았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종료령이 울렸다. 머리에 손을 얹고 마지막 친구가 답지를 걷어서 선생님께 제출했다. 선생님이 답안지를 검수할 동안 옆에 서 있어야 했다. 드디어, 확인 다 하셨다고 하셨다. 부감독 역할 마무리 신호이기도 했다. 선생님께 목례를 하고, 아이들에게 이제 실컷 놀아라 하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비록 학교 교사는 아니지만, 명예교사로 일일 교사 체험을 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은 시험을 치는 상황이지만, 나는 학창 시절 꾸었던 꿈을 잠시나마 다시 꿀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다. 45분 간이지만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말고사 때도 시간이 허락되면 나와서 봉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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