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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Nov 07. 2023

딸 생일 즈음해서

백일백장글쓰기프로젝트_13기_쉰여덟 번째 글


어제는 딸 생일이었다. 딸이 나에게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 되짚어 보고자 한다.



남편과 2004년 1월 31일 토요일에 결혼식을 하고 바로 서울 신혼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동파 때문에 수도관이 터진 것이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고 보일러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신성한 첫날밤을 근처 모텔에서 보내야 했다. 연애기간에도 한번 가보지 않은 모텔을 말이다.   


  

어쨌든 결혼식 때문에 피곤해서 그날은 씻고 뻗어진 것 같다. 아닌가? 마법의 날도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더 힘든 결혼식날이었다. 2월 1일은 주일이라 우리가 다니고 있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그날 오후 신혼여행지인 필리핀 보라카이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평생 한 번 밖에 가지 못할 유럽이나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이 쪽을 갈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둘이 함께 3박 5일 정도 여행 가는 건 처음이라 마냥 좋았다. 음식도 입맛에 맞아 잘 먹었고, 호텔에서 둘이 그냥 쉬는 시간도 좋았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남편은 쉴 새도 없이 사역에 돌입했다. 충주 중원경 교회에서 전도와 제자화 사역을 시작했다. 2월 12일. 남편과 나의 사랑의 결실이 그 해 11월 6일, 예쁜 딸로 태어났다. 태명을 ‘(하나님의) 은혜를 비추며 살아라’는 뜻으로 소은이라 지었다. 태명은 실명이 되어 지금은 우리 딸을 부를 때마다 그 뜻을 기억하게 한다.     



태중에 딸을 임신하고 있었을 때 늘 좋은 것만 보고 먹으려고 애썼다.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 영화가 나왔을 때에도 잔인한 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보는 시기를 미뤘다.


‘나중에 딸이 태어나고 나면 봐야지.’


아빠 목소리가 좋다고 해서 남편에게도 그림책을 읽어주도록 했다. 배를 쓰다듬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딸이 태중에서 잘 자라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임신 기간을 보냈다. 11월 4일이 출산예정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배가 아파 와서 산부인과를 갔더니, 아직 멀었으니 더 아프면 오라는 것이다. 11월 5일 샤워도 하고, 돼지고기도 맛있게 먹었다. 일찍 잠에 들었다. 그런데 그저께의 아픔과는 다른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서 11월 6일이 되는 자정이 넘어서 남편 차를 타고 산부인과로 갔다. 그저께보다 자궁문이 좀 더 열렸단다. 오늘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했다. 점점 진통이 심해졌다. 그러다가 진통이 극에 달할 즈음이었다. 힘을 줬는데, 오랜 변비를 누는 느낌이더니 10시 31분에 아기 울음이 약간 들렸다. 딸이 태어난 시간이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간호사의 처치가 다 끝난 후 딸을 내 가슴에 가져다주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딸이다. 키는 49센티미터, 몸무게는 2.75킬로그램의 가볍고 올망졸망한 모습에 금방의 고통은 싹 잊었다.     



그렇게 조그맣게 태어난 딸이 스무 살이 되는 생일이 바로 어제였다. 태어날 때보다 훨씬 더 키나 몸무게도 커지고 여러 면에서 성장했다. 때로는 친구처럼 엄마의 마음을 위로할 줄도 아는 딸, 선생님처럼 가르치기도 하는 딸이다. 맡은 일은 책임지고 잘하는 딸이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도 그 누구보다 잘해서 칭찬받는다. 욕심도 있어서 알아서 잘하는 아이다.

지금은 결혼하지 않겠다 호언장담하지만, 언젠가 딸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겠지. 그때 나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말할 수 있도록 내 삶을 딸 앞에서 더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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