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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윤희진 Nov 16. 2023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한파

백일백장 글쓰기_13기_예순일곱 번째 글


비가 온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라 춥다. 늘 입시철이면 날씨가 예년보다 추웠다. 딸이 2023학년도 대입 수능을 치른 지 딱 1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오늘은 고종사촌이 시험을 본다. 고모가 나보다 일찍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몇 개월 뒤에 낳는 바람에 내 딸이 한 살 더 많다. 며칠 전 고모와 통화를 했는데, 본인이 더 떨린단다. 자기가 시험 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년에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시험 치는 당사자도 물론 떨리겠지만, 수험생 부모가 더 떨리는 것도 맞는 듯하다.  


     

예전 입학시험 때에는 자녀를 학교에 들여보내고 교문 밖에서 문쇠창살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봤다. 해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시험 당일 수험생을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해서 시험 시간표와 같이 일정을 잡아 기도한다. 아마 오늘도 수험생 어머니들 중 일부 또는 권사님들이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고종사촌이 시험 치니까 나도 기도가 절로 나온다. 12년 간 갈고닦은 공부의 과정이 오늘 하루로 결정 나지만,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1996년 11월 17일 목요일, 새벽같이 도시락을 싸갖고 시험 치는 장소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제일여자고등학교이다. 다니던 학교도 아니고, 낯설다. 게다가 어두침침한 커튼에 책상도 흠집이 가득하다. ‘뭐 이런 곳이 배정되었을까’ 불만을 토로할 시간도 없이 시험은 제시간에 시작되었다. 1교시 언어영역 시간이다. 나름 자신 있는 국어과목인데, 오늘은 지문도 너무 길고,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험 때 떨릴까 봐 아침 일찍 우황청심원도 먹었다. 잠이 오면 안 되니 커피도 한 잔 마셔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데 긴장은 되지 않았고, 시험 중반이 넘어갈 때쯤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화장실에 가면 안 되는 줄 알고 참고 참다가, 도저히 안되어 손을 들었다. 부감독 선생님 동행 하에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직 풀 문제는 너무 많이 남았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지문 2개 정도는 읽어보지도 못하고 1교시가 끝났다. 망했다.


쉬는 시간은 어찌 그리 짧게 지났는지. 금방 2교시 수리영역 시간이다. 내가 가장 못하는 과목인 수학 시험이다. 1번부터 모르겠다. 늘 그랬듯, 푸는 듯 찍는 듯 40문제를 끄적이다 끝냈다. 수학은 정말 모르겠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수학 시간에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3교시는 외국어영역이다. 영어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너무 잘했다. 발음도 좋고 성적도 탑이라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대학강사로 전근을 가게 되면서, 내 영어실력도 점점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닌 중학교는 사립 여자중학교였는데, 한문 선생님이 영어도 가르치고 그랬다. 영어가 5교시에 있어서 잠은 또 얼마나 오는지. 손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과목이었는데 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손을 놓아버리다 보니 고등학교 1학년 갑자기 어려워진 영어 시간이 재미있을 리 없다. 수능 영어는 더욱 어렵게 느껴졌고, 영어 역시 수학만큼이나 나에게 어려운 과목으로 자리 잡았다. 대입 수능은 당연히 어려웠다. 그나마 맞힐 수 있었던 문제는 제목이나 주제를 묻는 문제, 요지를 묻는 문제 아님 찍어서 맞춘 문제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수학능력시험을 봤을까 싶다.

4교시는 탐구영역이다. 사회와 과학탐구 영역을 보았다. 문과이기 때문에 사회탐구 영역은 한국사, 한국지리, 세계사, 세계지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과목을 보았다. (선택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과학도 물리Ⅰ, 화학Ⅰ, 지구과학Ⅰ, 생명과학(당시에는 생물)Ⅰ, 요렇게 네 과목이 나왔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와서 채점을 하는데, 점수가 절망적이다. 대학은 다 갔구나 싶었다. 반 보다 조금 더 맞혔다. 내 사전에는 재수란 없기 때문에 그냥 전문대학을 가야 되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희소식이 들렸다. 지금까지의 수능 중 가장 어려웠단다. 불수능. 세트 문제의 등장으로 수험생들이 평소보다 턱없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 달 정도 후에 수능 결과가 발표되었다. 서울대도 330점 이상이면 합격선이라고 했다. 희망이 보였다. 내 점수로도 갈 수 있는 대학들이 있었다. 나는 지방 거점 국립대 두 곳과 지방대 두 곳에 넣었다. 면접을 거쳐 최종적으로 고등학교와 가까운 지방 거점 국립대에 들어갔다. 점수를 맞추다 보니 너무도 가고 싶었던 사범대학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인문대학에는 진학이 가능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매년 치를 때마다 나의 수능 스토리도 생각이 날 것이다. 수학능력시험으로 내가 가야 할 대학이 결정되는 게 너무 싫었다. 물론 내신 성적으로 지원하는 수시 제도가 있긴 했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1차 지필시험을 볼 때 쓰러져서 내신 성적으로 지원할 수 없었다. 대학, 학과와는 상관없이 대학만 나오면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언젠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꿈과 목표가 한 날 치는 시험으로 결정되지 말았으면 한다. 요즘 바뀌는 입시제도가 아이들에게 최선이 되길 바랄 뿐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는 작은 음성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오늘도 입시한파가 여전하다. 비까지 와서 더 추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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