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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역설

소중한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by 강동원

봄이 오면 세상은 노란빛으로 물듭니다. 개나리가 피고, 민들레가 피고, 유채꽃이 피어납니다. 노란색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색이지요. 하지만 2014년 이후, 우리에게 노란색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개나리꽃 옆에 노란 리본이 함께 피어나는 계절, 4월입니다.


오늘 아침, 집 앞 공원을 산책하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맑고 푸른 4월의 하늘은 11년 전 그날의 하늘과 다를 바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자연은 참 신기하게도 인간의 비극과 상관없이 자신의 리듬을 지켜갑니다. 개나리는 여전히 노랗게 피어나고, 벚꽃은 여전히 흩날리고, 봄비는 여전히 대지를 적십니다.


"봄이 왔어요!"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창가에 앉은 아이는 밖으로 날아가는 벚꽃 잎을 손으로 잡으려 합니다. 봄은 언제나 그렇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찾아옵니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봄은 차가운 바다 속으로 스러졌습니다.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차가운 바다에 잠겼을 때, 그날도 하늘은 오늘처럼 맑고 푸르렀을까요?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에 생명이 스러지는 역설. 이것이 우리가 매년 4월이면 마주하는 슬픔입니다.


"저 노란 리본은 뭐예요?"

아이가 물었습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건 우리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야."

"무엇을 잊지 않는다는 거예요?"

"소중한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놀이터로 달려갔습니다. 아이에게 세월호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슬픔을 전하면서도 희망을 함께 전할 수 있을까요?


노란 리본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을 묶어두는 끈입니다. 시간이 흘러 리본이 바래고, 풀리고, 끊어져도 다시 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억의 수호자들입니다. 노란색은 이제 생명의 시작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억의 색, 약속의 색, 연대의 색이 되었습니다.


봄비가 내리는 날,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이 빗방울이 바다로 흘러들어 세월호가 잠든 그곳에 닿을까? 하늘의 눈물이 바다의 눈물과 만나는 순간, 우리의 기억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무서워,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 아, 그런데 기울기 공식이 어떻게 되지? 기억이 나질 않아."


한 학생의 마지막 메시지라고 합니다. 수학 시간에 배운 기울기 공식을 떠올리던 그 순간, 그 아이의 봄은 멈춰버렸습니다. 매년 4월, 우리는 그 멈춰버린 봄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단순한 슬픔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억은 변화의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노란 리본을 매는 행위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약속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공원에는 아이들이 뛰어놉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퍼집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마음껏 웃으며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봄은 언제나 그렇게 찾아옵니다. 슬픔 속에서도, 아픔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세상을 노랗게 물들입니다. 개나리가 피고, 민들레가 피고, 노란 리본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노란빛 속에서 기억의 의무를 다합니다.


"저도 노란 리본 하나 만들어도 돼요?"

아이가 돌아와 물었습니다.

"물론이지. 함께 만들자."


우리는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작고 서툴지만, 그 안에는 큰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기억하겠다는 약속, 변화시키겠다는 약속,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


4월의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릅니다. 그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노란 리본을 매며 봄의 역설을 기억합니다.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에 스러진 생명들을. 그리고 그 기억이 새로운 희망으로 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봄은 언제나 그렇게 희망을 품고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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