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온전한 마음을 갖고 싶다
은은한 노란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다 잠이 들고 싶어 하얗게 빛나고 있는 불을 끄려고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책을 한창 읽고 있는 가운데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너무 환한 빛 밑에서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이대로 자다가는 제대로 잠도 못 이룬 채, 도중에 일어날게 뻔했던 날들의 기억이 나를 하는 수없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불을 끄면서 잠시 하얀색 조명을 응시했다. 대략 한 달 전쯤의 일이 기억이 났다. 저녁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오후쯤이었는데 불빛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수채화를 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엄마가 안돼 보였는지 '왜 어두 컴컴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니?'라며 갑자기 TV를 보고 계시던 아빠를 부르셨다. '여보, 루시 방 불 좀 갈아 줘요. 불이 나갔네.'
아빠는 나이가 차츰 드시면서 예전과 다르게 가족에 관해 귀찮아하시는 게 현저히 적어지셨다. 신기하게 반대로 귀찮아하지 않고 부지런을 떠셔야 했었던 엄마는 요새 부쩍 귀찮다는 말이 많아 지시는 듯하다. 어렸을 적부터 언제나 바빴던 우리 부모님, 특히 우리 엄마가 그랬다. 머 지금도 말로는 귀찮다 하시지만 여전히 부단히 사람들 만나서 장사하시고 즐기시며 여러 모 임도 빠지지 않고 열심이시다. 예전에는 자신의 삶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셨던 모습은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서운함과 큰 상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서운함은 되려 한편으론 약간의 안도감과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스스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자식으로서는 나에게 적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자식의 도리로서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듯한 느낌이다. 뭐든 장단점이 있는 걸까?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나의 마음은 그렇다. 내 방 두 개의 불빛을 갈아야 하는데 예전에 미리 한꺼번에 사놓은 LED 두 개를 냉장고 위 천장 위에서 꺼내 오셔서 내가 자는 침대 위를 밟고 위로 오르셨다. 불빛을 에워싸고 있던 덮개는 생각보다 많이 더러웠다. 샤워기 물로 헹구고 끝내려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였는지 엄마가 화장실 안에 있는 수세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걸로 닦으라 하셨다. 나도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아 어떤 용도인지 잘 모르겠는 수세미로 깨끗이 문질렀다. 생각보다 진한 회색의 구정물에 놀라면서 계속해서 씻어냈다. 어느정도 다 씻은 후, 마른 깨끗한 걸레로 물기를 닦아낸 뒤 아빠에게 건넸다. 아빠는 다리 하나는 식탁의자 위로 올려놓은 채로 천장에 덮개를 맞추는데 잠시 동안 애를 먹으셨다. 하지만 이내 잘 끼우셨다. 부모님께 감사하다고는 말했지만 내 속에는 여러 마음이 교차하며 지나갔다. 감사한데 마냥 감사하지만은 않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이번과 같이 물리적으로는 거의 항상 잘 채워 주시는 감사한 부모님인 동시에 정서적으로는 물리적인 것에 비해 백분의 일 정도 받고 자란 느낌이 무언가 묘하고 이상한 기분을 자아낸다. 감사해야 하는데 마냥 감사하기가 만만치 않게 어렵다. 이 마음 자체가 예전엔 자책으로도 이어지기도 했었다. 무언가 알게 모르게 기분이 약간 묘하게 나쁘다. 나를 좋아하지 않은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알게 모르게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묘하게 섞어 기분 나쁘게 하는 그런 느낌이다. 요새 부모님과 적당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부모님은 전혀 모르신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적절하게 나름 잘 지내고 있는 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에 대한 미움이 딱히 크게 있는 것도 아니다. 용서를 못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안에는 더 이상의 분노와 미움은 사라진 지 꽤 오래다. 그런데 이 기분은 도대체 뭘까? 좋게 생각하고 싶어서인지 그냥 애착과 분리에서 분리의 단계로 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될까? 아니면 한참이 지난 후에 알게 되는 것일까?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 이번 나의 경우는 전자이기를 바란다.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부모님에 관한 글을 쓰게 될 줄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 속에도 한편에는 쓰림 다른 이면에는 달콤한 시간들을 보낸 무수함이 함께 공존해 오고 있다. 무수한 달콤한 시간들을 맛본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인생인 건데 이 정도면 참 괜찮은 건데 끊임없는 남과의 비교, 내 안의 초라함과 비참함 지질함 자체를 견디기 힘들고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있어 어려운 숙제 같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약간은 더 편해질 거 같은데 참 안된다. 어떤 글에서 '균형'이라 한다. '잘난 부분의 딱 그만큼의 못난 부분을 갖춘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사람이다' 라 한다. 이 말이 살면서 큰 힘이 될 거 같고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데 일조를 할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유독 비난이 많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비난이 많은 우리나라가 '우리'라는 것에서의 희생에서 조금은 벗어나 '나'라는 사람은 온전히 사랑하고 홀로 설 수 있을 때 타인의 못난 부분을 너그럽게 수용하는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다. 내 머리와 마음이 완전히 정리가 된 채로 비록 잠이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 안의 새로운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수면 위로 꺼내 털어놓았다는 것만으로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는 거 같아 좋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