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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Mar 21. 2024

18_관계에서 오는 번아웃에 대하여

가장 가까운 이들이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

다시 삼킬 수 없는 말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모두 쓰라리고 아프다. 하지만 가깝지 않은 타인이 주는 상처는 마치 칼끝이 아주 뭉뚝해진 칼과 같다. 이것도 칼인지라 살짝 찔려도 타격을 받고 자주 찔리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가까운 이들이 주는 상처는 끝이 뾰족한 칼날과 같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실수로 휘두른 것이든 그 칼에 맞은 이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상처를 입고, 이것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곪아버려 결국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나에게는 엄마의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 그 뾰족한 칼날이었다.

 

  사건은 아빠가 쓰러지시고 우리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때였다. 나는 미국에서 당장 갈 수도 없고 한국 상황도 전해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참 답답했었다. 그렇게 아빠가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엄마가 통화 중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아빠 사무실 동료분이 전화 와서 요즘 무슨 일이 있으신지 얼굴도 안 좋고 힘들어 보이셨다고 말했다고 했다. 혹시 어떤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렇게 되신 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그때 상황은 나와 부모님이 여전히 관계 회복이 되지 않아 대립하던 상황이었다. 엄마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아빠가 이렇게 되신걸 마치 나 때문인 듯 말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나는 이미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리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내가 한 행동들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날아온 저 말은 아주 날카롭게 심장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눈물을 참지 못하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바로 전화를 다시 건 엄마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라고, 별 안 해야 될 말까지 했다며 울지 말라고 나를 달랬다.


 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내 심장은 저 아래 아주 차가운 심해 속으로 빠져든 듯 나는 한동안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언제나 지나침이
문제야


 나는 사회생활 시작하기 전부터 여유가 생기면 부모님을 도와 드렸었다.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혹시 후회로 남을까 하는 마음과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한 게 죄송해서 큰돈은 아니지만 조금씩 생활비를 보태드렸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부모님의 자산이 모두 집과 땅에 묶여있어서 빠듯하게 생활하시는 게 마음에 걸려 생활비를 보태드리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그냥 '잠시만' 현금 흐름이 더 좋은 내가 지원해 드리면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게 더 즐겁게 사시겠지,라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이건 분명 좋은 의도였지만 아마도 나의 접근방식이 틀렸던 것 같다. 나의 상황을 정확히 얘기하지도 않았고 나의 성격상 힘들다는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내가 여유로워서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거기에 더 나아가 나는 직장인이 된 지 2년쯤 되었을 때 아빠의 오래된 차를 바꿔드렸다. 물론 사회 초년생이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무슨 아파트도 아니고 차를 20년 대출을 받아서 구입했다. 언니와 농담으로 사람은 죽고 찻값만 내겠다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아빠가 더 늦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원하는 차도 타보고 인생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나의 경제적 상황이 바뀌면서 이렇게 매달 나가는 돈이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그래도 혼자 감당하려 더 많은 일을 해보았지만 이제 나의 미래도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민하고 또 고민한 뒤 부모님께 말을 꺼냈다. 내가 예상했던 대답은 '그동안 고마웠고 수고했다.' 아마 이 정도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데까지 9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을 만큼 나에겐 하기 쉬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황해하며 서운함을 먼저 표현하는 부모님의 반응에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관계의 어려움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갈등은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에 많은 질문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항상 독립적으로 인생의 결정을 내려왔고 부모님은 그런 나의 의사를 항상 존중해 왔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정신적 독립을 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사실 그렇지 못했고 그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꽤나 길고 고통스러웠다.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며 나 스스로를 먼저 살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갈등이 생겼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마음이 불편해서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피하면 우리의 관계는 점점 악화될 것이고 그 결과가 행복할리가 없다는 것을.


 내가 맞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면서부터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방법을 몰라서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 대한 책도 찾아보고 정신과 의사분들이 하는 상담 영상도 많이 찾아봤다. 그중 나에게 많이 도움이 되었던 말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부모는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서 자식을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므로 자식을 책임질 의무가 있지만, 자녀는 스스로 선택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를 사랑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를 키워주고 길러준 정이 있고 감사한 마음이 있기에 그걸 인간으로서의 도리로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을 읽으며 내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혼란스러워하는 나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다.'라는 정신과 의사 정우열 님의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부족한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때론 우리 부모님이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이었으면 하는 환상을 가지기도 하고 그분들이 나이 들어가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들보다 조금 더 인생을 살아온 내공이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삶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런 생각을 통해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하는 원망과 실망에서 '그래, 그냥 우리 모두 부족하니 때론 그들도 실수할 수 있는 거야.' 하는 이해를 위한 첫걸음의 계기가 되었다. 작은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우리의 갈등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부족하고 삶에 서툰 인간들이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서로에게 상처도 주고 또 그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배려와 친절은 독이다'라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가족 중 누구도 나에게 그들의 짐을 짊어지고 가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무리하다 그 마음이 오해를 받았고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지나침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가깝지 않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는 이제 나름 잘 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이걸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과는 별개로 위급상황에는 일단 서로를 살려야 했다. 관계 재정립도, 오해를 푸는 과정도, 용서도, 다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모든 감정이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일들을 겪고 그러면서 받았던 상처가 많이 흐려지는 듯했다.


 아마도 누군가를 오래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 없는 나의 성향 때문인 듯했다. 그런 무거운 마음을 오래 가지고 살 수 없어서 인지 나는 누군가 나에게 준 상처나 아픔은 마치 기억이 지워지듯 잘 잊어버린다.


상처는 지워져 갔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감정의 빙하기를 맞이했다. 관계에 냉소주의에 빠진 사람처럼 인간에 대한 기대도, 궁금함도 모두 사라진 듯했다. 물론 친구들이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티 나지 않게 살아갔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회의감이 들곤 했다. 예전처럼 슬픈 영화를 봐도 더 이상 슬프지 않았고 때론 감정이 모두 메마른 사람처럼 사람들과의 관계가 건조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나도 드디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철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내심 안도했다.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고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나로서는 이런 변화가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추구하던 삶은 이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인생의 꿈이나 무엇을 성취하는 것보다 내가 맺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일에서 받은 번아웃은 일을 멈추니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관계에서 받은 번아웃은 대체 어떻게 회복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복잡하고 얽힌 관계에 대한 고민할 에너지가 없다. 또한 굳이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그런 시기인 거야.

그냥 그렇게 놔둬도 괜찮아.


나는 그저

나의 지친 마음을 쉬게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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