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기세다
발표 지옥
대부분의 수업 중 많은 부분이 프레젠테이션 발표로 이루어진다. 물론 Lecture(강의) 위주의 수업도 있지만, 디자인 작업을 하는 수업은 자신의 프로젝트의 전개 과정을 발표하는 것이 필수 사항이다. 특히 처음 5주 정도 연속 클래스 발표가 이어지는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에겐 조금 곤혹스러운 시간이다.
그러나 나의 수업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학원 과정 내내 계속 이런 발표를 해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나 또한 재학시절 영어권이 아니었기에 발표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던 기억이 난다. 혹시라도 머리가 하얘질까 계속 외우고 또 외우는 방법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매년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꽤 많지만, 올해는 비영어권 학생들도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 다들 영어에 문제가 없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유창하게 모국어인 영어를 쓰는 뉴요커들이었다. 이렇게 편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들 중 눈에 띄는 한 명의 학생이 있었다. 대만에서 대학원 유학을 온 Hua Wen이란 친구였는데, 이제 뉴욕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친구가 나에게 "I am an INFJ too!"라고 이메일을 보낸 학생들 중 한 명이다. 첫 몇 주 동안 발표를 하는데, 내용은 좋은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왠지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해 보여서 따로 불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항상 의식하게 되고, 여전히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얘기했다. 그래도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일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익숙해져야 하는 스트레스이니, 일단 자신감을 조금 더 가지라고 말해주며 나의 지난 시간을 떠올려봤다.
아, 이 죽일 놈의 영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서 미국에서 일하고 살아간다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 죽일 놈의 영어"라는 그 표현이 얼마나 가슴 깊은 곳,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말인지 말이다. 영어와 나와의 17년의 시간은 책을 따로 써야 할 정도로 길지만, 간단히 표현하면 우리의 애증 관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물론 우리는 적응의 동물이기에, 처음만큼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미국에 온 지 오래되었기에 아직도 내가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놀란다.
"그 정도 살면 완전 미국인 아니야?"
"막 꿈도 영어로 꾸고 그냥 술술 나오지 않아?"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미국에 산 시간에 정비례해서 영어실력이 느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있던 실력까지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의 영어실력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어디서 돈 떼이거나 누구랑 싸움 붙으면 지지 않을 정도로는 해"
어쩌면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의 목표는 달성했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처음 와서 몇 달 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가 제대로 안 나왔고, 그때 버스를 탔는데 기사와 말다툼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말다툼이 아니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내가 돈을 안 낸 몰상식한 동양인으로 오해를 받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절대 다시는 영어를 못해서 이런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그렇게 나름 노력해서 이제 어느 정도 일하는데 지장이 없고, 큰 문제없이 영어로 3시간씩 수업을 하는 수준의 영어는 구사하게 되었다. 이미 성인이 돼서 미국에 왔기에 한국인의 억양은 남아있지만 이제는 얼굴이 조금 두꺼워져 상대가 말을 알아듣는 정도의 억양은 나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가끔 어떤 발음은 죽어도 제대로 되지 않아 나를 좌절시킨다)
곧 나아질 거야
다행히도 후아웬은 매주 스파르타식으로 이어지는 발표에 훈련이 되었는지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미국 학생들에 비하면 목소리도 너무 작고, 발표자가 긴장하니 보는 사람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것 치고는 영어는 꽤 유창하게 하는 편임에도 자신감이 너무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은 기세야!"
정말 이 말이 맞다. 미국인들과 학교를 다녀보고, 직장도 다녀보고, 또 그들을 가르쳐보는 입장이 되니 이제 정확히 알겠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가장 큰 차이점을 말이다. 그들에겐 '겸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장착되어 있지 않다. 또한 대체 뭘 먹고 자라서 그렇게 매사 자신감이 넘치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작업한 내용물의 완성도가 70% 정도만 돼도, 이들의 발표 자세를 보면 마치 100% 이상을 달성한 그런 사람의 자신감을 보인다.
반면 한국인들은 100% 이상의 작업물을 완성해 놓고도, 발표할 때 보면 '겸손'과 '자기 확신 부족'으로 마치 70% 정도 되는 작업물을 발표하는 자세를 보인다. 물론 그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발표하는 작업물 스스로 그 완성도를 말해줄 거니, 나는 굳이 다 표현하지 않아도 돼'라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다. 이 경험은 내가 겪은 많은 한국인들의 모습이자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처음엔 실력도 없이 입만 살아있는 그 미국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기 바빴다. 하지만 여기서 오래 살면서 나도 그런 자세를 배우려 노력한다. 이것이 그들이 인정해 주는 방식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노력을 굳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낮추는 것의 단점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국인들처럼 70% 정도의 작업물을 뻔뻔하게 100%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100%를 완성해 갔다면, 그 정도의 자신감은 가지려고 한다.
"기세야 기세!
당당하게 하는 거야!"
학기 내내 후아웬이 발표할 때가 되면, 이렇게 마음으로 응원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내가 이렇게 자신을 바라보고 응원하는 눈빛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너무 큰 힘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아직 초보 교수로서, 덜컹덜컹 불안하게 한 걸음씩 걸어가는 나 자신에게 외쳐주고 싶었다.
"이미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천천히 나아가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