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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May 18. 2024

전시 공간 디자인 대학원에선 뭘 배우나요?

설명하기 참 애매한 나의 전공이야기

그래서 뭘 배운다고?


아빠는 언제나 내가 하는 일에 진심으로 관심이 많으시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면 어떤 콘셉트인지, 어떤 공간을 디자인하는 건지 자세히 묻고, 또 제대로 이해하길 원하셨다. 학부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할 땐 다른 설명이 크게 필요 없었다. 아빠도 평생 건축을 업으로 사셔서 그냥 간단하게만 설명해도 바로 이해하셨다. 문제는 내가 전시 공간 디자인으로 대학원을 갔을 때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전시 공간 디자인이란 대학원의 전공에 대해서 아주 많이 알고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다니다 보니 미국에 이런 커리큘럼으로 경험 공간 디자인을 가르치는 대학원이 한두 개 정도밖을 정도로 특이한 학과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그저 박물관이나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전시회 같은 것을 디자인하는 걸로 알고 입학했다. 하지만 그런 전형적인 전시 공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공간이 디자인의 대상이 된다. 또한 최근에는 많은 브랜드들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다양한 경험 공간을 만들면서 리테일 공간과 경험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처음 대학원에서 하던 프로젝트는 그 분야가 너무 다양해서 아빠는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 계속 이것저것 물으시다가 나중에 질문이 점점 사라지셨다. 아마도 내가 주로 고민하던 것이 공간 디자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어서 인 듯하다. 과의 명칭도 '전시 디자인'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에 '경험'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서 전시 경험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그만큼 수업 과정에서 인간의 경험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다뤄서 조금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접근방식이 많다.


다양함의 집합체


 내가 소속되어 있는 대학원의 정식 명칭은 'FIT Graduate Exhibition and Experience Design'이다. 우리 과의 특이한 점은 정말 다양한 전공과 직업적 경력, 국적, 나이의 학생들이 모인다는 점이다. 영어로는 'Multidisciplinary Design'라고 표현하는데, 한국어로는 '다학제적 디자인', '여러 학문 분야의 디자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양한 학문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과 접근방식으로 함께 작업을 하며 그 시너지 효과를 보는 것을 추구한다. 그래픽 디자인이나 건축처럼 한 가지 전문 분야의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쩌면 'Generalist' 즉,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전문가 양성이 목적이다.


학생들의 전공은 너무도 다양한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공은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 같은 공간 디자인 계열이다. 그래픽 디자인, 패션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순수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많이 오지만, 디자인과 관련이 없는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도 사진작가, 연극배우, 마케팅 전문가 등 디자인 쪽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강의의 명칭은 'Introduction to Exhibition Design Studio'이다. 학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며, 하나의 전시회를 완성하는 과정을 경험해 보는 수업이다. 전시회나 경험 공간을 처음 디자인해 보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많이 서투르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걸 힘겨워한다. 나의 역할은 전반적인 전시 디자인 과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기존의 자신이 해왔던 전공에 맞춰 생각하던 사고방식의 전환을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축 전공자인 학생들은 공간에 어떤 경험이 들어갈지 생각하기보단, 일단 도면을 펼치고 공간 레이아웃이나 실제 건축물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구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때 내가 해야 할 역할은 기존의 사고방식이 아닌 전시 디자이너로서의 접근 방식을 소개해주고, 그쪽으로 계속 이끌어 주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경력이 많을수록,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의식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 보지만, 자꾸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곤 한다.


모두 제각각의 길을 간다


졸업 후에 학생들이 나아가는 길은 매우 다양하다. 전시 디자인 전공이니 아무래도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주로 하는 전시 전문 디자인 회사로 가는 학생들이 꽤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름이 유명한 전시 회사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곳에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음으로는 디자인 에이젼시나 마케팅 에이젼시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이 경우인데, 나는 프로젝트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회사로 먼저 들어가서 다양한 일을 먼저 경험해 보았다. 그중에 나에게 가장 맞는 것이 상업 공간 디자인이었고, 그중 브랜드 경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상업 경험 공간으로 빠지는 학생들 중 일부는 패션 쪽으로 간다. 친한 후배는 처음부터 패션 쪽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고, 졸업 후에 Coach의 본사 디자인팀으로 들어가서 각종 팝업 스토어 디자인이나 마케팅 이벤트의 콘셉트 및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길이 있지만, 자신이 학부에 전공했던 분야의 일자리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공이 아주 구체적인 것은 큰 장점이 되지만, 그것이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경력과 선호에 맞는 일자리를 찾으면 정말 그 자리에서 인정받고 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제한된 선택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더 많은 한국학생을 만나길


 매년 다르지만 보통 한두 명의 한국 학생이 우리 과로 공부를 하러 온다. 무섭게 오른 환율 때문인지 최근 몇 년간은 한국 학생들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작년 내가 강의할 때도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와는 신기할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처음 이력서를 보고 같은 대학교 동문임을 알고 반가워했는데, 첫날 인사를 나누다 보니 같은 고향에 무려 나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혹시라도 다른 학생들이 같은 한국인이라고 다르게 대한다고 오해할까 봐 조심스러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막 유학 와서 영어도 서툴고, 미국이란 곳에 적응하는 게 많이 힘겨워보였다. 따로 메일도 보내고, 수업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줌으로 미팅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한 학기 끝난 상황이기에, 남은 학교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또한 나는 그동안 우리 과를 졸업한 한국인 후배들과 작은 모임을 만들어서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다. 다행히도 대부분 원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무엇보다 미국이란 큰 시장에 와서 실력을 인정받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뿌듯하다. 요즘 나의 바람은 더 많은 한국의 실력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곳에 와서 도전하고, 인정받으며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다. 일하다 보면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정말 실력이 뛰어나고 타고난 센스가 좋은데, 그에 비해 한국은 아직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 나도 이제 막 한걸음 내딛은 입장이라 어떤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나의 마음은 그쪽으로 두려 한다. 언제, 어떤 계기로 내가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을 두고 생각하면 어디선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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