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lousie . 이런 빵은 빵집에서만 살 수 있는 줄 알았지
<아내의 요리>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 반죽을 완성한 뒤 냉동실에 넣어두고 사흘간을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찌어찌 레시피를 따라 반죽을 완성하긴 했으나 도무지 다시 만들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종종 만들어 먹을 것 같은 레시피라면 처음이니까 대충 만들어보고 다음부터 완성도를 높여나가면 되겠다고 편하게 생각했겠지만, 이 반죽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만약 마지막이라면 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딱 한 번 제대로 해보고 끝내고 싶었다. 솔직히 반죽을 만드는 과정에서 약간 지쳐버렸다. 많이 들어 질려버린 노래도, 미처 그리움이 차오르기도 전에 너무 자주 만나 대화가 식상해져 버린 친구 사이도 잠시 기억 속에 묻어두었다가 오랜만에 만나면 다시 반가워지는 것처럼, 나의 페이스트리 반죽도 그렇길 바랐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안 그래도 외출이 어려운데 비까지 내려 하루 종일 꼼짝없이 집 안에 있어야 했던 며칠 전 오후에 불현듯 그 반죽이 떠올랐다. 한 덩이로 뭉쳐져 있던 반죽은 겹겹이 선명한 페이스트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줄리아 차일드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고른 레시피는 'Jalousie (잘루지)'라는 이름을 가진 프렌치 페이스트리 파이. 사진처럼 생긴 베네치안 스타일의 블라인드를 잘루지라고 부르는데, 파이 모양이 이 블라인드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죽을 만드는 게 오래 걸려서 그렇지 반죽만 준비되어 있다면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는 디저트 레시피다.
[재료]
취향에 따른 파이 속 (잼, 과일, 크림, 초콜릿, 다진 고기 등등), 계란물 (달걀 1개 + 물 1 tsp)
1. 반죽을 3mm 두께로 밀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줄리아 차일드가 소개하는 페이스트리 파이는 가로 20cm, 세로 45cm 크기다. 하나를 크게 만들어서 두고두고 조금씩 잘라먹고 싶다면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나는 작게 여러 개를 만들어 다양한 재료로 파이 속을 채워보고 싶어서 가로 8cm, 세로 10cm 정도로 잘랐다. 파이의 아랫부분이다.
2. 잘라놓은 페이스트리 반죽에 포크로 구멍을 뽕뽕 뚫는다.
3. 반죽 가장자리에 약간의 여유를 두고 파이 속을 0.5cm 두께로 올린다. 나는 라즈베리 잼, 딸기잼, 크림치즈, 다크 초콜릿을 이리저리 조합해보았다. 워낙 버터향 가득하고 헤비한 반죽인지라 파이 속은 상큼한 과일 잼으로 채우고 싶었다.
4. 반죽 가장자리를 접어 올린다.
5. 파이 윗 면이 될 반죽을 자른다. 아랫면보다 약간 작게 자른다 (아랫면은 파이 속을 올린 다음 가장자리를 접어주었기 때문에 크기가 줄어든 것을 감안해서)
6. 반죽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준 다음 가장자리에 1cm가량의 여유를 두고 칼집을 낸다. 칼집 사이의 넓이도 1cm 정도면 적당하다.
7. 반죽의 아랫면과 윗면 모두 가장자리에 차가운 물을 바른 후 겹친다.
8. 겹쳐진 반죽 가장자리를 포크 뒷면으로 눌러주면서 반죽의 윗면과 아랫면을 완전히 닫아준다. 이 과정은 장식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포크의 방향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다양하게 자국을 내도 좋다.
9. 오븐에 넣기 전에 30분간 냉장 보관한다. 이 상태로 냉동실에 몇 달 정도 보관해도 된다고 한다.
10. 반죽 윗면에 계란물을 바른다.
11. 200C (400F)로 예열해둔 오븐에 넣고 60분간 구우면 완성!
오븐에 넣어둔지 몇 분만에 2D 반죽이 거짓말처럼 3D로 부풀어올랐다. 파이 윗면에 발라둔 계란물은 반짝반짝한 글레이즈가 되어 파이가 한층 더 먹음직스러워졌고, 밀고 접고 밀고 접은 반죽은 정직하게 한 겹 한 겹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 페이스트리는 오븐에서 꺼낸 직후에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크로와상도 갓 구웠을 때가 식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맛있다. 이번에는 뭣도 모르고 여러 개를 구웠는데, 다음에 또 만들게 된다면 한 번에 먹을 만큼씩만 구워야겠다.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남은 재료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야무지게 소개해준다는 점이다. 남은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꽤 여럿 되는데, 이번에는 종려 잎 또는 하트 모양의 쿠키 'Palmiers (팔미예)'를 만들어보았다. 반죽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가운데를 기준으로 반반 접어 설탕 솔솔 뿌린 다음 1cm 두께로 썰어 오븐에 30분간 구우면 된다.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는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 같은 레시피다. 처음 친해지는 게 (반죽 만들기가) 굉장히 오래 걸려서 그렇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반죽을 제대로 만들어둬야 그다음 메뉴도 줄줄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은 페이스트리는 빵집에서만 사 먹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다며 신기해했다. 사실은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지. 갓 구운 뜨끈한 페이스트리 파이에 차가운 우유 한 잔 곁들여 기가 막힌 간식타임을 가졌다. 기나긴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의 여정의 끝이 해피엔딩이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