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ulia and U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emeetskun Apr 03. 2020

Julia & Us 17.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

Dough Talk . 밀고 접고 밀고 접다 보면 언젠가는

<아내의 요리>

성격이 급한 편이다. 공부와 일은 물론 취미생활까지도 인풋 대비 아웃풋이 빠르게 나오는 것을 효율성이라 부르며 선호해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반대의 경우에는 웬만해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속에 씨앗을 묻어두고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이라거나,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고  배로 부풀어 오를 때까지 내버려 두는 ,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 앞에서  시간씩 줄을 서는  같은  말이다.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들을 보면서 존경심에 감탄할 때도 있고,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남편이 프랑스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도해보자고 제안했을  망설여졌던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프랑스 요리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인상은 1)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2) (쓸데없이) 레시피가 복잡하며, 3) 구하기 힘든 재료들을 많이 쓰는 소위 '비효율적인' 요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입견이었음은 이미 몇몇 레시피가 증명해주었지만, 여전히 영영  것이   없을 것만 같은 복잡다단한 레시피들이 버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 앞서 언급한 모든 이유로 선뜻 만들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림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서도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 레시피는 단계별로 그림 설명이 나와있었다. 무섭게시리.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pàte feuilletée fine'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페이스트리다. 버터와 밀가루가 정확히 같은 비율로 들어가는 이 페이스트리는 반죽만 완성하는 데에도 6~7시간이 걸리니 단단히 각오하고 덤벼야 한다.


https://www.deliciousmagazine.co.uk/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기 때문에 정교한 프렌치 디저트 레시피에 주로 사용되는데, 정말 예뻐서 언젠가 꼭 만들어보고 싶은 아몬드 타르트 (Pithiviers) 반죽으로도 쓰인다. 두 번째는 demi-feuilletée로, 만드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고 시간도 두 배는 적게 걸린다. 줄리아 차일드는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 만들기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번째 레시피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그녀가 처음부터 고매한 장인정신을 요구했을지라도 나는 당연히 demi-feuilletée를 만들었겠지만 어쨌거나 위로가 되었다.



아, 페이스트리 레시피가 부담스러웠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대부분의 레시피들과 달리 요리 도구에 대한 잔소리 제안이 너무 많았다. 반죽을 깔끔하고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대리석 조리대와 길이 최소 35cm의 묵직한 밀대가 필요하다고 나와있다. 그런 건 우리의 주방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불멸의 이순신 장군님의 후예가 아닌가. 전하, 저에게는 이케아 나무 도마와 남편이 깨끗하게 비워놓은 와인병이 있사옵니다.


[재료]

밀가루 3+1/4컵, 카놀라유 1/4컵, 얼음물 1컵, 무염버터 3 스틱, 소금 2 tsp, 유산지, 비닐백 (지퍼락)

 


1. 밀가루 양을 정확하게 잰 후, 그중 1/2컵은 따로 빼둔다. 오일과 소금, 얼음물을 넣고 스패튤라로 반죽을 자르듯이, 그리고 누르듯이 섞는다.



2. 반죽이 한 덩이로 뭉쳐지면 꺼내어 도마에 (대리석 조리대에) 올린다. 이때 도마에 반죽이 눌어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살살 뿌린다.


3. 반죽을 재빠르게 쿠션 모양으로 뭉친다. 반죽 표면이 벌써부터 매끄러울 필요는 없다. 반죽은 말랑하되 축축하거나 진득하지 않아야 한다.



4. 반죽을 유산지에 싸서 냉장고에 40분간 보관한다. 만약 페이스트리 반죽을 급하게 사용해야 하는 경우라면 이 과정은 생략 가능하다.



5. 반죽의 냉장 시간이 끝나면 차가운 무염버터를 밀대로 때려 부드럽게 만든다. 와인병으로 버터를 때리다가는 무슨 사단이 날지 몰라 나무주걱을 사용했다.



6. 버터를 손 뒤축으로 밀어주듯이 눌러 더 부드럽게 만든다. 버터가 완전히 부드러워져서 스프레드처럼 될 때까지 첫 단계에서 따로 남겨두었던 밀가루 1/2 컵을 조금씩 더해주며 손으로 반죽한다.

 


7. 냉장고에서 꺼낸 반죽에 밀가루를 살짝 뿌린 뒤, 가로 40cm, 세로 20cm 정도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이때 반죽의 글루텐 성분을 최소한으로 활성화할 수 있도록 와인병 (밀대)로 밀기보다는 손으로 밀고 누르는 것을 권한다. (4번 단계를 건너뛰었다면 이 단계에서 반죽이 너무 부드럽고 진득할 수 있다)



8. 스패튤라를 사용하여 버터를 반죽 위에 올린다. 반죽 가장자리 0.5cm 정도의 여유를 두고, 가로길이의 1/3는 버터를 올리지 않은 상태로 둔다.



측면에서 보면 버터가 꽤나 두껍게 자리 잡고 있다.



9. 버터를 바르지 않은 부분의 반죽을 접는다.



10. 반죽의 나머지 부분이 방금 접은 반죽 위에 겹쳐지도록 접는다. 비즈니스용 문서를 접듯이 접으면 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여기까지 하면 반죽 3겹에 버터 2겹이 만들어졌다. 여전히 반죽의 표면은 거칠고 못생겼지만 벌써 성형수술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프렌치 퍼프 페이스트리는 완성되어갈수록 예뻐지는 대기만성형이다.



11. 반죽을 밀대로 쭉쭉 밀어 가로 40cm, 세로 20cm의 직사각형을 만든다.



12. 이번에는 반죽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하여 사진과 같이 접는다. 양문형 냉장고 문을 닫는 것처럼 접는다...라고나 할까.



13. 한 번 더 반으로 접는다. 책을 덮듯이 한 번 접으면 된다.



14. 두 손가락의 끝으로 반죽을 두 번 꾹 눌러준다.



15. 반죽을 유산지에 잘 싸서 비닐백 혹은 지퍼락에 넣은 다음 냉장고에 40~60분 보관한다. 냉장하는 동안 반죽은 단단해진다. 10~14번 과정을 2번 더 반복하면 72겹의 페이스트리 반죽이 준비된다.


완성된 반죽은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굽기 전에 꺼내어 2시간 정도 해동 후 밀대로 밀어 사용하면 된다. 베이킹 달인에게 이 정도는 가벼운 레시피일 수도 있겠지만 왕초보인 나에게는 수차례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는 기나긴 과정이었다.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기다린 시간까지 총 3시간 정도 소요되었는데, 아직 빵 모양도 갖추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밀고 밀고 또 밀어 만들어놓은 반죽이 조만간 포실포실한 페이스트리로 다시 태어날 모습을 상상하니 약간 설레기도 했다. 반죽의 변신은 다음 포스팅에 :)



매거진의 이전글 Julia & Us 18. 프렌치 페이스트리 파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