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ulia and U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emeetskun Apr 25. 2020

Julia & Us 22. 양파 키쉬

Quiche aux oignons . 키쉬 시리즈 제1탄

남편과 나는 대학교 3학년 날씨 좋은 여름날 이태원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도 남편은 새로운 음식을 반겼고, 늘 가보고 싶은 식당 리스트가 있었다. 키쉬를 처음 먹어본 것도 그날이었다. 파이같이 생겼는데 디저트 맛은 아니고, 식사라고 하기엔 뭔가 가벼웠다. 다시 말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음식. 그 애매한 음식이 비싸기까지 한 아이러니에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문득문득 그 알듯 모를듯한 부드러운 식감이 생각났다. 십여 년 후, 부부가 된 우리는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서 키쉬 레시피를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다. 기호에 따라 해산물, 채소, 베이컨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만들 수 있는 유연한 음식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처음 시도해본 레시피는 양파 키쉬다.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들어 살짝 구워둔 후에 필링을 만드는 순서다. 아주 간단한 레시피라고 소개되어있었지만 요리 초보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재료]

페이스트리: 밀가루 1컵, 버터 3/4 스틱, 카놀라유 2Tb, 얼음물 4.5Tb, 소금 1/2 tsp, 설탕 1/8 tsp

필링: 잘게 썬 양파 7컵, 버터 3Tb, 오일 1Tb, 밀가루 1.5Tb, 달걀 2개, 우유 (or 휘핑크림) 2/3컵, 소금 1 tsp, 후추 1/8 tsp, 스위스 치즈 1/2 컵, 버터 약간 (생략)


잘 만들어진 프렌치 페이스트리는 부드럽고, 바삭하며, 버터 풍미가 짙어야 한다... 고 줄리아 차일드는 말한다. 페이스트리 반죽은 푸드프로세서를 써도 되지만, 나는 조상님이 물려주신 손을 써보기로 한다. 반죽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속함'이다. 버터가 차가운 상태로 유지되고,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을 최소화한 상태로 반죽을 하려면 레시피를 후다닥 소화한 후 냉동실로 토스하는 스피드를 장착해야 한다.


1. 보울에 밀가루, 소금, 설탕, 버터, 카놀라유를 넣고 섞는다. 이 때 버터를 손가락으로 비벼서 오트밀 크기로 작게 분해한다.



2. 반죽에 얼음물을 넣고 반죽이 뭉쳐질 때까지 빠르게 섞는다. 반죽이 잘 뭉쳐지지 않는다면 물을 몇 방울 더 떨어뜨린다.



3. 반죽을 공 모양으로 만든다. 이때 반죽은 말랑하되 진득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매사추세츠주 내에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일반 밀가루가 동이 나버려 그나마 남아있던 통밀가루를 샀더니 반죽 색깔이 아주 건강하다.



4. 밀가루를 살살 뿌린 도마에 반죽을 놓고 손 뒤축으로 밀어준다. 손바닥 대신 손 뒤축을 쓰는 이유는, 손바닥은 비교적 온도가 높아 반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5. 반죽을 다시 공 모양으로 뭉친 후, 유산지로 싸서 1-2시간 냉장/냉동 보관한다.



반죽은 냉장고에서는 2-3일, 냉동실에서는 몇 주 동안 보관 가능하다. 우리는 당일 저녁 메뉴였기 때문에 딱 1시간만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좀 이따 만나 반죽!



6. 냉동실에서 꺼낸 반죽을 얇게 밀어줄 차례다. 역시나 이때도 스피드가 중요하다. 반죽이 너무 많이 해동되어 물렁해지면 컨트롤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밀대로 반죽 가운데부터 살살 밀다가 조금씩 돌려주면서 큰 원을 만든다.



7. 3mm 정도의 두께로 밀었으면 키쉬 필링을 받쳐줄 페이스트리 접시가 거의 다 준비되었다.



8. 파이 접시에 반죽을 올린다. 튀어나오는 가장자리 부분은 가위로 깔끔하게 잘라준다.


9. 파이 접시의 벽면을 꾹꾹 눌러 반죽이 접시 위로 3mm 정도 올라오게 한다.



10. 페이스트리 반죽 바닥에 포크로 구멍을 뽕뽕 뚫는다.

11. 200C (400F)로 예열해둔 오븐에 넣고 10분 정도 굽는다. 반죽이 파이 그릇 크기로 줄어들면서 색깔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오븐에서 꺼내어 상온에 식혀둔다.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두어야 반죽이 습기를 머금지 않는다고 한다.



12. 페이스트리가 구워지는 동안 키쉬 필링을 만들 차례다. 잘게 썬 양파를 오일, 버터와 함께 약불에 볶는다. 양파가 완전히 부드러워지고 노란 빛깔을 띨 때까지.

13. 밀가루를 넣고 2-3분간 더 볶은 후 상온에 식힌다.



14. 보울에 달걀, 우유, 소금, 후추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



15. 스위스 치즈 갈아둔 것 중 절반 가량과 볶아둔 양파를 넣고 섞는다. 이때 기호에 따라 간을 맞춰둔다.

 


16. 식혀둔 페이스트리에 필링을 붓는다.

17. 나머지 치즈를 필링 위에 올린다.

18. 190C(375F)로 예열해둔 오븐에 30분 굽는다. 필링이 살짝 부풀어 오르면서 노릇노릇해지기 시작하면 완성.



오, 겉으로 봐서는 특별히 흠잡을 데 없는 키쉬가 완성되었다. '나 요리에 소질 있나 봐...' 하면서 마지막으로 요리책을 들여다보니 "키쉬는 너무 쉬워서 실패하기가 더 어려운 메뉴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치.


키쉬는 따뜻하게 먹을 경우 샐러드, 뜨거운 프렌치 브레드, 차가운 화이트 와인과 특히 잘 어울리는 디쉬라고 한다. 저녁 코스 메뉴의 첫 번째 디쉬로도 적절하며, 작은 사이즈로 여러 개를 만들어 서빙하기도 한다.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데, 모양이 쉽게 망가지지 않아 피크닉 도시락으로도 그저 그만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흰 양파와 노란 달걀의 조합이 조금 심심했다. 브로콜리나 버섯, 파프리카처럼 알록달록하고 식감도 다양한 재료들을 더하면 식사시간이 한층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 다행히 키쉬는 만드는 과정에서 지쳐 나가떨어지진 않았으니 조만간 다시 한번, 다른 필링으로 도전해볼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Julia & Us 23. 베르시 소스 비프스테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