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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ulia and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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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emeetskun Mar 05. 2020

Julia & Us 7. 가지 피스투

Pistouille . <Plan B>도 괜찮았던 저녁

<아내의 요리>

원래는 가지 그라탱을 만들고 싶었다.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를 만들고자 한다면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다 (매번 까먹고 허둥지둥하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림보다 글이 많은 요리책인 만큼 레시피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읽고, 조리과정에서 완성된 디쉬까지 머릿속에 완전한 이미지를 그려두어야 한다. 그녀는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 때, 레시피 맨 마지막에 "초코 버터 아이싱을 케이크 위에 바른다"라고 써두고, "아이싱 만드는 방법은 51페이지에 설명해두었으니 그거 보고 따라 하세요" 같은 식이다. 케이크를 다 굽고 나서야 마지막 문장을 읽고 깜짝 놀라 아이싱 만드는 법이 나와있는 페이지를 펼치면 그땐 이미 늦은 것이다. 아이싱을 만들 재료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지 않다면 더더욱.


이번에도 레시피를 제대로 읽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가지와 토마토는 준비해두었으나 스위스 치즈가 없었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해내려면 처음부터 정신을 똑띠 차리고, 끝날 때까지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함을 요리를 하면서도 수차례 깨닫는다. 그렇지만 동시에, 긍정 회로를 빠르게 돌려 'Plan B'를 생각해내는 습관을 만드는 데에도 요리가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고 있다. 쓰고 보니 비겁한 변명이다. 가지는 먹고 싶고, 치즈를 사러 나갔다 올만큼의 파이팅은 없어서 결국 치즈를 쓰지 않는 '피스투 (Pistouille)'라는 레시피를 찾았다. 지중해식 디쉬인 라따뚜이와 여러모로 닮았으나 만드는 과정은 훨씬 간단한 요리다. 신선한 바질과 토마토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캔에 든 토마토소스와 말린 바질 또는 오레가노를 사용해도 좋다.


[재료]

가지 2개, 양파 2/3컵, 피망 2/3컵, 올리브 오일 2Tb, 토마토 2컵, 마늘 2쪽, 바질 12-14 잎, 파슬리 3Tb, 소금 1 tsp, 후추 1 tsp



1. 가지는 껍질을 벗긴 후, 깍둑 썰기하여 보울에 담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여 20-30분 정도 수분을 빼둔다.



2.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파와 피망을 10분 정도 볶는다. 양파와 피망이 투명해지되 갈색으로 변하기 전까지만 볶아주는 것이 포인트. 마늘도 툭 더해주면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3. 토마토 (나는 생토마토와 캔소스를 둘 다 넣었다)를 팬에 넣고 뚜껑을 덮지 않은 채로 5분 끓인다.

 


4. 가지의 물기를 제거해준 다음,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서 익힌다. 가지는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자주 뒤집어줘야 한다. 불 위의 가지를 두고 딴생각은 금물.



5. 가지가 살짝 갈색빛을 띠며 부드럽게 익으면 토마토소스와 섞기 시작한다.



6. 가지에 소스가 잘 배어들도록 섞다가 바질, 오레가노, 파슬리를 넣어 향을 더해 완성한다.



피스투는 생선, 닭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계란을 비롯하여 다양한 야채와 함께 곁들여도 모두 잘 어울리는 디쉬다. 뜨겁게 먹어도, 차갑게 먹어도 맛있어서 넉넉하게 만들어두고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메뉴. 실제로 다음날 남편의 점심 도시락으로 피스투와 체다치즈, 계란 후라이를 얹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이 날에는 저녁을 가볍게 먹고 싶어 호밀빵에 피스투를 올려 먹었는데 오로지 야채만으로 이렇게 깊은 맛이 난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했다. 갑작스럽게 메뉴가 바뀌었음에도 그저 엄지손가락 치켜들면서 잘 먹어준 남편 고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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