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산수유, 숲에 사는 생강나무

by 수경

4월 15일. 벌써 4월도 중순이니 노랗던 산수유는 이미 다 지고 열매를 짓는 시간으로 변해갑니다. 봄은 역시 노랑입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모두 봄햇살을 집약한 노랑으로 빛나던 꽃입니다. 꽃 중에는 서로 구별이 어려운 쌍둥이 같은 꽃들이 있는데,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산수유, 하면 저는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김종길 님의 시, '성탄제'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이 참에 시를 한번 다시 감상해보기로 할까요.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마지막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산수유 붉은 열매는 열을 내리는 약제로 아버지가 눈속을 헤치고 따오신 귀한 열매이고 눈 속을 누비던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이 열로 상기한 내 볼과 대비되어 현재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지금은 그리움으로 인해 서러움이 복받치는 서른입니다.


이 시를 읽을 무렵부터 산수유 열매는 지극한 효심의 표본같이 한겨울의 딸기처럼 신령스러운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나무 공부를 조금 하면서 산수유는 주로 민가에서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봄이 되어 휘어지지 않은 반듯한 나무에서 자라는 도심의 눈부신 노랑은 거의 대다수가 산수유입니다.


산수유가 민가에서 자라게 된 것은 그 쓸모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동의보감>에도 약효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에도 농가의 소득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 당시는 자연에서 채집하여 약재로 활용하는 정도였다면 1960년대 이후에는 한국 정부가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소득 작물을 장려하면서 산수유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보다 앞서 일제강점기에는 한약재 수요 증가와 함께 일부 지역에서 본격적인 재배가 이루어졌는데, 봄이면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전라남도 구례와 경상북도 의성은 이때부터 재배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번잡한 곳을 벗어나 제법 숲에 왔다 싶은데, 반듯한 나무에 노랑이 새봄의 빛을 뿜어내고 있다면 그것은 생강나무일 확률이 높습니다. 생강나무는 숲에서 자생하여 자라고 있으며 산수유는 숲에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사람이 심어 가꾼 경우입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비슷한 시기에 잎이 나기 전에 노랑꽃을 피우고 꽃모양도 아주 닮았습니다. 산수유는 둥글게 모여 핀 꽃이 꽃자루 위에 사뿐이 앉아 있다면 생강나무는 꽃자루 없이 꽃이 가지에 붙어서 피어납니다. 꽃으로 구별이 어렵다면 줄기를 보면 확실하게 구별이 됩니다. 산수유는 줄기 껍질이 덕지덕지 떨어질 듯 붙어 매우 거친 데 비해 생강나무는 줄기 표면이 매끈합니다. 그리고 잎이 나고 난 후에 잎의 모양을 보아도 구별이 가능합니다. 산수유가 긴 타원형에 나무잎맥이 선명하다면 생강나무는 한자 뫼산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뫼 산자 모양의 생강나무 잎사귀는 어린아이의 엉덩이 살을 만지는 것처럼 촉감이 보들보들 보드랍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연펄프라는 별명도 얻고 있습니다.


약재와 건강식으로 유용해 민가에서 널리 재배한 산수유에 비해 생강나무는 우리 생활에는 보탬이 되지 않지만 자연에서 자생하면서 우리의 숲을 지키고 있습니다. 겨울에 잎이 다 진 생강나무는 그 줄기를 꺽으면 알싸한 생강 향이 납니다. 겨울의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에 그 알싸한 향은 오래도록 기억을 자극하여 추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도심에는 산수유, 숲속에는 생강나무가 새봄의 노랑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아 가지고 왔습니다.


산수유
꽃자루가 없고 매끈한 줄기의 생강나무
산수유 잎사귀
생강나무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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