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어간다

by 수경

살다 보면 종종 정드는 일이 있다. 세빈이도 그렇다.


초등학교 2학년 세빈이는 또래보다 키와 덩치가 크다. 뒤뚱뒤뚱 걷는 걸음에 동작도 둔하고 바지는 뱃살을 담지 못하고 항상 엉덩이쯤에 걸쳐있다. 뽀얗고 포동한 얼굴에 쌍꺼풀은 굵고 옆에서 본 긴 속눈썹과 뽀송한 솜털을 보면 그래도 영락없는 초등 2학년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방학이 시작되기 꼭 1주일 전부터 나는 세빈이를 맡게 되었다. 1, 2교시 특수반 수업을 끝내고 교실로 통합 수업을 하러 온 세빈이와의 첫 적응기는 전투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교실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벅차서, 처음 우리가 한 일은 번호가 매겨져 있는 동물 스티커를 떼서 맞는 번호에 붙이면 알록달록한 예쁜 색깔 무늬의 동물 문양이 완성되는 스티커 컬러링 북이었다. 내가 번호를 부르면 세빈이가 스티커를 떼서 판에 붙이기를 하는데, 한쪽이 잘 붙지 않아 손가락으로 누르려고 하면 그때부터 공격이 시작되었다.


손가락 모두에 힘을 주고 내 팔뚝을 꼬집는 일이 가장 많았고 어떤 날은 손을 부르르 떨며 교과서를 찢기도 하고 연필을 사정없이 부러뜨리기도 했다. 가위질이 필요해 가위를 꺼내 놓으면 자기 손가락을 가윗날 사이에 끼운 채 자르려는 시늉을 했다. 그럴 때마다 바라보는 눈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관심과 애정을 더 달라는 건지 무조건적인 거부인지 알 수 없었고 그 눈빛이 내게는 무겁고 버거웠다.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문득 걱정이 되는지,

"혼나? 혼나? 누구한테 혼나?"

를 자꾸 묻는다.

"선생님은 혼내는 사람 아니고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바르게 해 보자, 알겠어?"

이렇게 달래다가도 결국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내 성질을 건드린다. 단호하고 무서운 표정과 말투에서 세빈이의 고집이 꼬리를 내린다.


특수반 담당 선생님께 세빈이의 이런 태도를 말씀을 드리니, 내게 사랑을 좀 더 주라고 하신다. 그래서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갈 때는, 사랑 사랑, 이 사랑을 더 주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사이 나는 세빈이의 옆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애구나, 싶은 마음과 함께 점점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특수반에서 오신 선생님이 세빈이와 급식실까지 이동한 후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를 거부하고,

"남자 선생님 좋아! 여자 선생님 싫어!"

이런 말로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못된 짜식, 세빈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우리들의 모서리가 서로 닳기 시작한 듯하다. 늘 '혼자'를 말하면서도 내 눈치를 보며 "같이 해?" 하는 세빈이에게,

"혼자 해보고 못하겠으면 선생님한테 같이 하자고 얘기해, 알았지?"

"응"


요즘은 세빈이가 순둥 한 한 마리 양이되어 통합 교과서와 스티커 붙이기 활동에 얼마나 집중을 잘하는지 모르겠다. 쉬는 시간에도 이 책들을 붙들고 있어서,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놀아야 해. 놀아!"

하면 용수철같이 일어나 교실 뒤로 나가 블록을 가지고 논다.


"세빈아, 너 지금도 선생님 싫어?"

"싫어!"

"쩝. 그래라, 뭐. 선생님은 그래도 니가 좋다~"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 있어서 찰랑찰랑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세빈이가 대답을 다시 돌려주었다.

"선생님 좋아! 여자 선생님도 좋고 남자 선생님도 좋고 선생님 다 좋아!"


세빈이는 사람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신통한 재주를 부릴 줄 안다. 이렇게 정들어 내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하다.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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