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집안에서 군고구마를 구워 먹기 위해 직화냄비 하나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세일 기간 중에 구입, 바닥에는 구멍이 나 있어서 단시간에 구워진다고 설명서는 말하고 있다. 할인가 단돈 만 냥이 안 되는 가격. 성능이 긴가민가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다.
잘 구워지지 않는다. 열이 닿지 않는 곳은 생것 느낌으로 딱딱하고 열이 가해진 부분만 익는다. 바닥의 구멍 때문에 냄비 속에서 대류열을 만들지 못하고 열이 산만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쓸 일이 잘 없기도 하고 또 좀 아끼느라 깊숙이 넣어둔 7중 프라이팬을 꺼내었다. 10여 년 전에 거금 몇십만 원을 들여 구입한 귀한 녀석이다. 뚜껑에도 김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없어 꼭 닫은 채 열을 가하면 오븐으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구입 당시 들은 설명이 생각난다.
이 고급진 냄비에 고구마를 굽기로 한다. 단시간에 골고루 고구마가 잘 익는다. 바닥이 살짝 눌러 붓기도 해서 간혹 수세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새것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냄비는 고구마 굽는 일을 믿음직하게 잘 해내고 있다. 겨우 고구마나 굽는 하찮은 일에 훌륭한 주방 용구 하나가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7중 냄비 너는 지금 잘 쓰이고 있느냐? 잘 준비되어 갖추어 있으므로 너는 잘 쓰이고 있다. 너의 역량은 어디에 가지 않고 단단하게 단련되어 쓰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재료를 푹 익힐 수 있는 전골요리도, 물을 붓지 않은 채 삶아내는 수육도 그리고 타지 않는 치킨구이도 너의 역량으로서는 충분하니 오늘, 고구마를 구운 너의 몸은 참으로 잘 쓰인 게 맞는구나.
잘 준비되어 있어 어디에도 멋지게 쓰일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