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나
※ 이 글에는 소설 『스토너』의 주요 전개와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지금은 과거와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직업과 배우자의 선택은 여전히 행복을 이루는 중요한 공통요소일 것이다.
신은 서로 다른 빛깔의 등불을 들고 우리 앞에 선택의 순간들을 놓아둔다. 그리고 모든 순간 곁에 머물 수는 없어서, 인생의 중요한 지점마다 기둥을 박아두고 사람이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길을 크게 벗어나면, 다시 나타나 좀 더 직접적으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설 『스토너』는 교육자이자 학자로 살아온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오랫동안 잊혔다가, 2000년대 초 유럽에서 재출간되며 다시 주목받았고, 우리나라에는 2015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스토너의 삶은 특별하지 않다. 인생은 뜨거운 가슴으로 그를 끌어안아 주지도, 힘을 주어 손을 잡아 주지도 않는다. 늘 미적지근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오히려 우리네 인생과 닮아 있다. 그 닮음이 이 소설에 조용한 울림을 주고, 시대를 거슬러 다시 읽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영문학 선택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열아홉 살에 아버지가 권한 대로 농과대학에 입학한다. 실용적인 농업 기술을 배워 농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학 2학년 때, 아처 슬론 교수의 권유로 그는 전혀 다른 등불을 집어 든다. 학자이자 교육자의 길이다. 농과대학을 포기하고 영문학을 선택한 이 결정은 그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다. 스토너는 비교적 수월하게 한 개의 인생 기둥—전공과 직업—에 도달한다.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과의 결혼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스토너는 같은 학교에서 영문학 전임강사 자리를 얻는다. 결혼을 현실적으로 고려할 나이가 되었을 무렵, 그는 문리대 학장 조시아 클레어몬트의 집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을 만난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불운한 결혼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디스는 호리호리하고 아름다웠다. 파티가 끝나고 대부분의 손님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던 스토너는 다음 날 찾아가도 되겠느냐고 용기를 내 묻는다. 이튿날, 그는 충동적으로 말을 꺼낸다.
“저… 저는 당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한참 후, 표정 없는 얼굴로 이디스는 말한다.
“여섯 살쯤 피아노를 쳤고, 그림을 배웠고, 수줍음이 많아서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미스 손다이크 여학교에 다녔고…….”
그녀는 마치 보이지 않는 책을 뜻도 모른 채 읽어 내려가듯 자신의 이력을 나열한다. 훗날 스토너는 이때만큼 이디스가 자신에 대해 많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스토너는 그녀의 말을 일종의 고백처럼 받아들인다. 형식에 집착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 부모 사이에서 분노든 사랑이든 뜨거운 감정이 오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그는 그 이야기를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로 읽는다. 양가 상견례와 결혼은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결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스토너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마저 내려놓는다.
스토너에게 결혼은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고, 그 안에는 열정과 친밀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디스에게 결혼은 배운 대로 살아가는 형식에 가까웠다. 사랑은 삶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의 일부였다.
이디스는 성적 접촉을 견디는 것으로 받아들이다가, 어느 날 아이를 갖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임신 후 그녀는 스토너의 손길을 거부하고, 출산 이후에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낮에는 보모가, 오후에는 귀가한 스토너가 딸 그레이스를 돌본다. 스토너는 딸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이디스에게 줄 수 없었던 감정을 고스란히 그레이스에게 쏟는다. 아이와 함께 서재에 머무는 시간은 그의 삶에서 가장 평온한 순간이었다. 반면 부부는 점점 정서적으로 단절된 채 살아간다.
찰스 워커 사건
가정에서의 고립에 더해, 학교에서도 스토너를 고립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학과장 홀리스 로맥스의 제자 찰스 워커가 스토너의 대학원 수업에서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교수들이 구두시험까지 마련하지만 워커는 최소한의 성실성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스토너는 낙제를 결정하고, 이 일로 로맥스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이후 스토너는 매 학기 엉망으로 짜인 시간표와 교양 과목 위주의 수업 배정을 받으며 승진의 기회에서도 배제된다. 무엇보다 잘못된 시간표 탓에 사춘기에 접어든 그레이스와 함께하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든다.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사랑
이디스는 그레이스의 교육을 이유로 스토너의 서재 출입을 막고, 말없이 그의 책과 물건들을 옮겨 연구 환경을 무너뜨린다. 가정과 학교 양쪽에서 고립된 스토너는 인내로 삶을 버틴다. 그런 시기에 만난 캐서린 드리스콜은 마치 신의 개입처럼 느껴진다.
찰스 워커 사건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을 때, 대학원생 캐서린이 논문 지도를 부탁하며 찾아온다.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속에서 읽기 시작한 캐서린의 논문은 빼어났다. 스토너는 직접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학문적 열정으로 시작된 만남은 점점 감정의 경계로 다가간다.
“어쩌면 내가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정말이지, 이젠 입 다물고 이쪽으로 좀 오세요.”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다. 1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과 학문을 삶의 중심에 두고 지낸다. 스토너는 마침내 깨닫는다.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쯤으로 여겼던 사랑이 사실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날마다 의지와 지성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학교의 압력이 시작되고, 캐서린은 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다. 스토너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면 그녀는 함께 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둘은 더 이상 지금의 자신일 수 없었다. 이별 이후 스토너는 생애 처음으로 크게 앓고, 급격히 늙어간다. 훗날 캐서린의 헌정이 담긴 저서를 통해 그녀의 삶을 마주하며 그는 다시금 느낀다.
봐, 나는 살아 있어.
그레이스
불화로 가득 찬 가정과 이디스의 불안정한 태도는 딸 그레이스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탈출하듯 선택한 결혼과 임신, 전쟁에서 전사한 남편, 그리고 알코올 의존. 스토너는 딸의 고백을 들으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낀다. 그레이스는 스토너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 되는 부분이다.
병과 죽음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스토너는 담담히 퇴직을 결정한다. 죽음이 가까워진 어느 날, 이디스가 그의 방을 찾아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전 사랑이 시작될 때와 비슷한 고요가 흐른다.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떠올리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좀 더 사랑했더라면.
스토너는 자신의 책을 집어 든다. 그 안에는 그의 작은 일부가 담겨 있으며, 앞으로도 남아 있을 것이었다. 책장을 넘기던 손에 힘이 빠지고, 책은 조용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스토너는 생을 마감한다. 스토너는 신이 마련한 등불을 선택하는 데, 절반은 성공 절반은 빗나갔다.
우리 주변 곳곳에도 스토너가 살고 있다. 어디든 완벽한 인생은 없다. 어떤 순간에는 침묵으로 견뎌야 하고, 어떤 순간에는 다툼을 피해서는 안 된다. 다툼은 상처를 남기지만, 서로에게 다가가게 하는 거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신의 숨결이 느껴질 때는, 온 힘을 다해 그 축복을 받아들여야 한다. 신은 무심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삶을 행복 쪽으로 이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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