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30분 발 기차

by 수경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입석이다. 한 시간가량을 서서 가야 할 것을 걱정하니 딸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개찰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이 반짝거림과 동시에 승강장으로 나가면, 순서가 빨라 통로의 간이의자를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8호차 앞에는 키 큰 남자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나는 두 번째다. 뒤를 돌아보니 내 뒤로도 여러 명이 줄을 서 있다. 우리 줄은 하차하는 승객들의 통로를 터주기 위해 곡선을 그리듯 한쪽으로 비켜섰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명씩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세 번째 발판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울린다. 간이 계단은 기차의 몸체에 낀 채 제 역할을 하느라, 무게가 실릴 때마다 요동치며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성가시다가도 경쾌하다. 캐주얼 차림의 아가씨 한 명이 세 번째 발판을 밟지 않고 붕 뛰었다. 규칙적인 덜컹거림 속에 불규칙이 끼어드는 순간, 역사가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찰나가 연출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워졌다.


승객들이 모두 내렸지만 우리는 곧바로 기차에 오르지 못했다. '지금은 청소 중'이라는 리본을 걸고 청소는 분주하게 진행되었다. '설마 저 많은 좌석 중에 앞에 선 키 큰 남자의 의자 하나쯤은 있겠지!' 설마 하고 생각한 예감이 똑 맞아떨어졌다. 앞선 남자는 기차에 타자마자 입구의 간이의자를 펼친다. 아뿔싸, 한 발 늦었다.



나는 거친 물살처럼 옆 칸인 7호차 통로를 뚫고 나아갔다. 하지만 그곳의 간이의자에 앉은 이들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투쟁을 거치지 않은 완성된 평온. 문 입구 양쪽의 간이의자 두 개는 이미 어느 커플의 차지였다.



다른 칸으로 옮기기를 단념하고 7호차 객실로 들어오니 의외로 빈자리가 수두룩하다. 곧 기차는 출발한다. 출발이 임박한데도 빈자리가 이렇게 많을 수 있다니! 적어도 다음 역에 정차할 때까지는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아무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눈을 감았다. 누군가 나를 깨운다. 눈앞에 우람한 체격의 승무원을 마주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이 일어난다. 그리고 모기만 한 소리로 이실직고한다.

"입석이에요."

승무원은 무표정하게 차표를 확인하더니 이내 무심히 가버린다. 나는 조금 더 안심하고 앉아 있어도 되었다.



입석 한 시간이 뭐 그리 대수라고. 지하철에서 한 시간을 서 있거나 그보다 오래 걷는 일도 비일비재한데, 서서 가는 한 시간을 왜 그렇게 걱정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사이에 자리 하나를 박탈당한 듯한 소외감이 걱정을 키운 것이 분명하다.



동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동탄에서 오른 사람들은 빈 좌석을 거의 다 채울 기세다. 나는 주인에게 자리를 내주며 메뚜기처럼 뛰어 다른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이제 다음 정차역인 대전까지는 안심해도 되었다.



대전. 대전은 내게 교통의 중심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나, 중학교 시절 절친과 계룡산을 찾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수필이 있었고, 나의 첫사랑 선생님 성함이 '갑수'라는 이유로, 오로지 이름의 유사성 때문에 나는 친구를 꼬드겨 계룡산을 올랐던 적이 있다. 산세가 유려하거나 아주 아름다운 것 같지는 않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격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첫사랑의 이름과 닮은 '갑사'가 있는 계룡산은 여전히 내게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생애 처음 가을 대둔산에서 비박을 했던 기억도 대전을 거쳐 간다. 10kg 가까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며 빛이 없는 밤의 고요를 대면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시험을 보러 두 번 방문하였고, 놀이기구를 타듯 꼬불꼬불 이어지는 긴 줄에 달라붙어 성심당의 휘황찬란한 빵들과도 조우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성심당 별관의 단팥죽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진중하고도 감칠맛 나는 깊은 맛이 나는 아주 좋았다.



그리고 다시 대전. 이곳은 약속을 맞춰둔 시계를 흘려버린 곳이기도 하다. 되찾을 수는 있을는지, 그것은 영영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차가 대전에 정차하면 나는 마음을 다해 이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역사 주변과 하늘과 대기, 나무와 거리의 사람들, 심지어 상가의 간판들까지. 이곳에서는 내 가녀린 시선이 잠시 머물러 쉼표를 찍어야 한다.



하지만 내리는 이들과 오르는 이들 사이에서 자리를 찾느라 분주한 탓에, 한참 후에야 대전역을 지나쳤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일들이 항상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복병이 발을 걸고 넘어뜨리는 일이 훗날 구원의 몸짓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때는 이미 머무를 자리도, 잠시 쉬어갈 틈도 지나쳐 버린 뒤일지도 모른다. 본의 아니게 대전에서 내 시선은 머무를 틈이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제 오전부터 밤까지 12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의 메시지가 울렸다. 밥과 차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온종일을 함께 보냈음에도 여전히 시간이 모자랐고 마음은 아쉬웠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음에도 바위돌 같이 무게감 있는 우리들의 존재가 긴 시간을 압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차 여행의 묘미는 한숨 잠이라는 것을 친구가 일깨워주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비록 간이 의자를 차지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제 의자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펼치는지 나는 알게 되었다. 열차가 출발한 뒤에도 여전히 빈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눈치껏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몸을 기댈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경험이 내게 그것을 선사해 주었다. 이것을 감은 눈 안의 의식과 무의식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지만, 어떤 애틋함 같은 것이 눈꺼풀을 뚫고 나오려고 하였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


* 픽사베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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