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 꽃도 시들고 있습니다. 잠깐 눈 감은 사이에 봄은 멀어지고 나뭇잎들이 넘실넘실 바람에 출렁이며 머지 않은 여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봄도 잠시, 인생의 화양연화도 잠시라는 것을 시드는 꽃들이 일깨워줍니다. 꽃이 시든다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던 광채도 거두어 간다는 뜻입니다. 광채가 사라지면서 하나의 세상은 문을 닫고 묵묵한 새로운 세상이 이어집니다.
소설가 오정희 님은 1994년에 <옛 우물>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영산홍은 불륜에 빠진 주인공 여성 화자의 심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소재로 사용됩니다. 열일곱 살 아들과 비교적 성공한 은행 부장인 남편과 평화로운 노년을 계획하면서 유행하는 시와 소설을 읽고 보수와 진보의 일간지 두 개를 동시에 구독하고 지체부자유자들의 물리치료를 돕는 자원봉사의 일을 하는, 중년의 여성인 '나'는 평범하고도 안정적인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거울 속에서 산산이 깨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예기치 않은 날, 우연히 신문의 부고란에서 '그'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녀는 그가 죽고 자신 안의 무엇인가가 죽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여름, 나를 찾아온 그의 전화를 받을 때 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허둥대는 어미의 기색을 본능적으로 느낀 아이는 필사적으로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았다. ... 불에 덴 듯 울어대는 아이를 떼어놓자 젖꼭지가 잘려나간 듯한 아픔과 함께 피가 흘러내렸다. ... 나는 절박한 불안에 우는 아이를 이웃집에 맡기고 그에게 달려나갔다. 그와 함께 강을 건너 깊은 계곡을 타고 오래된 절을 찾아갔다. 여름 한낮, 천년의 세월로 퇴락한 절마당에는 영산홍꽃이 만개해 있었다. 영산홍 붉은 빛은 지옥까지 가 닿는다고, 꽃빛에 눈부셔하며 그가 말했다. 지옥까지 가겠노라고, 빛과 소리와 어둠의 끝까지 가보겠노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옛날 증조할머니가 금빛 잉어가 살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던 옛우물과 연꽃이 예쁘게 피는 연당집이 있는 야산 너머의 '작은 집' 이야기 등 단선적인 서사 대신 세 겹으로 포개진 이야기들이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시간과 기억, 무의식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회상과 현재의 이야기들은 '그'의 죽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천년의 고찰 퇴락한 절마당에 피어난 영산홍을 보고, 영산홍 붉은 빛은 지옥까지 가 닿는다고 꽃빛에 눈부셔하던 사람입니다.
영산홍은 아파트 화단은 물론이고 사람들 많이 모이는 유원지 등 어느 빈틈이든 장식하기에 가장 좋은 원예종 나무의 하나로 조경수의 1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 정원수 중에서 가장 많이 심는 나무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영산홍은 일본에서 자생하는 철쭉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17~19세기에 일본은 철쭉에서 붉거나 분홍,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로 품종을 개량했는데, 이 품종들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경수로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화려하고 깔끔하게 정돈되고 잘 관리된 느낌으로 봄의 뜰을 장식하는 영산홍이지만 어쩐지 영산홍의 인공적인 아름다움 때문인지 깊은 감동과 감흥은 제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설가 오정희 님의 '옛 우물'에 등장하는 영산홍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감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옥까지 가 닿는 영산홍 붉은 빛이라니요...
영산홍이 사람의 손에 의해 개량된 품종이기는 하지만 사계절 순환에 따른 자신만의 생태적 특성에 따라 피고 지기를 연속합니다. 내한성이 강해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남아 갈색의 빛을 띠다가 3월 중순쯤에는 자잘한 묵은 잎 사이에 있는 꽃눈에 물이 올라 생기가 돕니다. 원래 일본의 철쭉과 산철쭉을 개량하여 붉은색, 분홍색, 홍자색, 흰색 등 다양한 색깔과 홑꽃과 겹꽃 등 다양한 형태로 품종이 개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산홍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교배종이 나오고 업자들이 부르는 유통명까지 섞이면서 영산홍은 계통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식물들이 사람의 인공적인 손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