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 김지하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의 눈을
기억한다
전봇대 위에 까치 울고
문득 앞에 와 서던
키 큰 당신
밤바다 같고
별하늘 같고
푸른빛 나는
어둔 인광 같고
도무지 모를 당신 앞에
나 왜 그리도
풋풋했던지
자랑스러웠던지
기억한다
그때
나 몹시도 외롭고 시장했던 것
밥 한 그릇
당신.
이팝나무의 계절이 왔습니다. 이팝나무하면 김지하 시인의 '손님'이라는 시가 항상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밥 한 그릇'이라는 시구 때문일까요?
이팝나무는 이밥나무가 변해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쌀밥을 이밥으로 불렀다고 해요. 4월 말에서 5월 초에 유난히 풍성하고 하얗게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들을 보면 수북한 한 공기 쌀밥이 저절로 떠오르게 됩니다. 꽃잎이 모여있는 모습이 술장식을 닮기도 하지만 조금 길죽한 쌀모양을 꼭 닮아있습니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곤궁했던 조상들에게 쌀밥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한 가지 유래는 24절기의 하나인 입하를 전후해 피면서, 입하나무에 음운축약이 일어나면서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전라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팝나무를 입하목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옛날에 조상들은 한해 농사의 풍흉을 이팝나무로 점쳤다고 해요.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면 한 해 농사도 풍년이 들 거라 생각하였는데, 사실 이것은 옛날에 쌀농사가 비에 의존하여 비가 많이 오면 물을 좋아하는 이팝나무도 꽃을 풍성하게 피운 것을 관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쌀농사에 필수 요소인 물의 풍요로움과 관계한 이치 때문이라 해도 예로부터 이팝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는 당산나무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또 신령이 나무를 통로로 하여 강림하거나 그곳에 있다고 믿어지는 신목으로서 기능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이 의지처이자 버팀목으로 여겨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곳곳에 이팝나무가 가로수나 정원수로 심어져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희귀한 나무라고 합니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여 조선시대 기록(조선후기,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도 나와있으며 거슬러서 삼국시대 이전에도 자생하였을 거라고 추정한다고 하네요. 원래 동아시아가 원산지라 현재도 한국과 중국, 대만과 일본에만 분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인공증식에 성공해서 이팝나무를 전국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멸종위기 식물로 등록해 놓을 만큼 귀한 나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희귀한 수종인 이팝나무를 우리나라에서도 해외반출 승인 대상 생물자원으로 지정해서 관리한다고 합니다.(출처-나무위키)
이팝나무 중에는 유난히 잎을 다 덮을 만큼 탐스럽게 화려한 흰빛으로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햇빛을 많이 받고 땅의 기력이 좋아 특별히 건강하게 자란 나무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이유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팝나무는 특이하게도 수술만 있는 '수꽃 그루'와 암술과 수술이 모두 있는 '양성화 그루'가 따로 있는 '수꽃-양성화 딴그루' 나무라고 합니다. 2016년 학술지 <플로라(Flora)>에 경희대 생물학과 생물계통연구실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수꽃-양성화 딴그루'는 전체 꽃식물 가운데 5%로 극소수 존재한다고 하고, 수꽃 그루는 열매는 맺지 않고 꽃가루 기증자로서의 역할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이 수꽃-양성화 딴그루는 결국 암꽃-수꽃 딴그루로 가는 중간단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수꽃나무와 양성화나무는 겉으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수꽃나무보다 양성화나무가 더 많은 꽃을 피우고 더 풍성한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멀리서 보아 잎을 다 덮어 수북한 한 공기의 흰 쌀밥을 고봉으로 담은 것 같은 모양으로 꽃을 피운 것은 아마도 수꽃과 암꽃이 같이 피는 양성화나무인 것 같습니다. 옛 조상들이 이팝나무를 통해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 것처럼 저도 한 해의 행복한 일들을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