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연휴가 끼어있던 지지난 주말에는 밀양 위양지에 다녀왔습니다. 이팝나무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라 해서 때마침 꽃핀 이팝나무 군락의 위용도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는 만큼 장관을 연출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나무가 사라졌는지 꽃이 졌는지 꽃보다 사람이 많아서였는지 꽃은 모습을 조금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위양지로 가는 도로를 달리는데 보랏빛의 오동나무도 꽃을 피우고 있었고 희끗희끗하게 흰빛으로 꽃 피운 나무들이 자주 보여 무슨 나무인지 계속 생각하면서 달리는 차에서 열심히 탐색을 하였습니다. 아까시나무 같았습니다.
연두빛깔 잎사귀 사이에서 아까시나무 꽃이 저렇게 광채없이 희끗하기만 하다면 벌과 나비가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텐데, 원래 저런 빛깔이었던가, 그래서 더 짙은 꽃향기를 내며 벌꿀을 부르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마구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는 아까시나무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까시나무가 있는 숲의 입구에서 함께 간 딸에게,
"지금부터는 향기의 천국이 열릴 거야. 기대해도 좋아!"
마치 눈을 가린 안대를 풀어 꽃들의 낙원을 보여주듯 후각을 활짝 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정말 제 코에는 아까시나무의 꿀향이 진하게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은은한 우유빛깔 꽃을 찾았습니다. 아, 저기, 하고 바라보면 이팝나무였습니다. 아까시나무가 서있는 지점까지 가서야 알았습니다. 아까시나무의 꽃이 이미 거의 다 졌다는 것을요. 다른 아까시나무를 찾았습니다. 향도 사라지고 꽃도 사라지고... ... 또 다른 아까시나무를 찾으러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용없어 보였습니다.
그날 도로가에서 만난 희끗하게 광채를 잃어버린 아까시나무의 꽃은 서정주 시인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처럼 꽃 피운 후였습니다.
한참 서운하였습니다. 아까시나무에 관한 기억으로는,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하고 부르던 동요와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라는 노래가 나오며 연두빛과 노란 빛깔의 들판에서 창 넓은 모자를 쓴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의 긴 머리 아가씨가 등장한 수채화 풍의 아카시아 껌 광고, 그리고 잎을 하나씩 따며 마지막 한 개 남은 잎으로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를 점치던 아카시아 꽃점 등이 있어 낭만이 깃든 순수함과 천진함이 주된 이미지였습니다.
그러던 아까시나무가 제 마음에 확실하게 들어온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까시나무의 수피를 알게 되고 난 뒤부터였습니다. 굵은 나무의 껍질이 세로로 거칠게 툭툭 터져있는데, 그 터진 모양이 흡사 길죽한 다이아몬드 모양 같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질풍노도를 겪은 신산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수피의 주인이 아까시나무라는 것을 알고는 적잖은 충격이 왔습니다. 제게는 아까시나무의 수피가 굴참나무의 수피처럼 뭔가 산전수전 다 겪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체 높은 집안의 귀한 외동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장난기 많고 천진하고 꿈 많은 시골 소녀같은 이미지의 아까시나무였기 때문입니다.
나무 공부를 같이 하던 몇몇 지인에게 아까시나무의 수피를 사진으로 보내며 나무의 이름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아까시나무의 꽃과 잎만 알던 우리는 수피를 보고 아까시나무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아까시나무가 어떻게 이 땅에 우리와 함께 고락을 나누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명칭에 대한 혼돈부터 정리하도록 할게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아카시아'로 부르는 아까시나무는 학명이 Robinia pseudoacacia이며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오른 우리말 공식 이름은 '아까시나무'입니다. 속명 Robinia 뒤에 오는 종명 pseudoacacia에서 'pseudo'는 '거짓, 가짜'라는 뜻의 그리스 접두사입니다. 즉, 이 이름은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짜 아카시아는 무엇일까요?
원래 아프리카와 호주와 유럽에는 아카시아속에 속하는 1000종 이상의 아카시아가 향기롭고 탐스러우며 꿀이 많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아카시아인데, 이 아카시아는 종류도 많을 뿐 아니라 유럽에서 훨씬 유명하고 더 오래되고 잘 알려진 나무입니다. 그런데 식물학자이자 프랑스 왕실의 정원사인 장 로뱅이라는 사람이 17세기에 북미 원산의 아까시나무를 처음으로 유럽에 들여와 심게 되는데, 북미에서 새롭게 들여온 나무에서 피는 꽃이 모양과 향기가 유럽에서 이미 유명한 아카시아와 꼭 닮았습니다. 아프리카와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가 미모사속의 나무인데 비해 북미에서 들여온 아까시나무는 콩과 식물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현대 생물 분류 체계의 창시자인 린네는 학명에서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의 pseudoacacia를 명명하게 된 것입니다. 호주와 아프리카 원산의 아카시아는 열대지방이 원산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자생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온실에서만 자란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까시나무는 왜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아카시아로 불리게 된 걸까요? 아까시나무는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대규모로 우리나라에 도입이 되었습니다. 일제는 자국의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의 귀중한 활엽수림과 원시림을 대대적으로 벌목하여 한반도의 황폐화는 극에 달하게 되는데, 그때 일제는 성장이 빠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아까시나무를 들여와 벌목된 산림을 신속하게 복구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아까시나무를 '니세 아카시아', 즉 가짜 아카시아로 불렀고 이 이름에서 니세가 빠지면서 '아카시아'라는 말만 남아 한국에서 널리 쓰이게 됩니다. 더불어 아카시아로 부른 일본의 영향과 함께 대중가요나 동요, 시 등에서도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로 불러 아카시아꽃으로 이름이 굳어지는 데 한 몫을 하였습니다.
'아까시'는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별칭입니다. 꽃모양과 꿀이 많고 향이 좋은 특성이 진짜 아카시아와 닮았지만 진짜 아카시아가 아니고 가시가 있는 특성 또한 반영되어서 '아까시'라는 속칭으로 불려졌습니다. '진짜 아카시아(Acacia dealbata)'와 구별짓기 위해 속칭 아까시나무가 우리나라 공식이름으로 사용되게 된 독특한 경우입니다.
아까시나무는 20세기 초와 1970년대 우리나라 산림을 복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빠른 생장력과 강한 번식력으로 훼손된 산림을 빠르게 복원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뿌리에서 새순을 활발히 내는 특성이 있어서 산비탈에 심어 산사태와 토양이 유실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뿌리에 질소고정 박테리아가 공생하여 황폐화된 산림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꽃이 풍성하고 꿀 분비량이 많아 꿀벌 생산을 위한 주요한 밀원 식물이었으며, 나무의 목재가 단단하고 내구성이 뛰어나 토목용 기둥이나 농기구, 가구, 울타리, 심지어 장작용 땔감으로도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봄철 향기롭게 우유빛깔로 피는 아까시나무 꽃은 동요나 가요로 널리 불려질 정도로 친근해서 지금도 시적 정서와 향수를 자주 불러일으킵니다.
지금은 우리 국토에 식물들이 다양하게 자랄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뿌리에 새순을 활발히 내는 특성이 있어서 우리의 토착식물들을 밀어내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리고 질소고정 능력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지만, 이미 기존의 빈약한 토양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초지 식물들에게는 비옥한 환경이 독이 되어 도태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더하여 아까시나무 숲은 그늘이 짙고 낙엽층이 얇아 다양한 식생이 자라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생물다양성이 떨어지면서 나비나 벌, 들새 등 곤충과 조류의 다양성이 감소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재 아까시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법적 '생태계교란 생물'은 아니지만 국립공원과 생태복원사업, 도시숲 관리 등에서 '우선관리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늘이 존재하고 영광 뒤에는 상처가 남을 수 있습니다. 1900년대와 70년대 힘든 그 시절 우리의 산림을 복구하고 농가의 소득 향상에도 기여한 아까시나무에게, 아까시나무의 그 거친 수피에, 영광의 리본이라도 달아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