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 학습코칭 선생님이 오시는 날은 제가 머무는 공간을 한 시간 가량 내주어야 합니다. 1시간 정도는 밖에서 뭘 해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섰습니다. 역시 바깥은 무궁한 이야기를 길을 수 있는 샘 같은 곳인가 봅니다. 저학년, 중학년이 섞여 커다란 나무를 향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빗자루도 가지고 오고 기다란 나뭇가지도 가지고 오고, 이제는 돌멩이를 들고 던지기를 시도합니다.
"이놈들~~ 겁 좀 먹어봐야겠는 걸!"
하듯이 큰 나무가 농구공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흔히 보는 사다리로는 턱도 없고 태풍 급의 바람이 불거나 이사짐을 옳기는 사다리차가 와야 큰 나무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혀 농구공을 받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아이들 노는 다른 한편에는 오솔길 그늘 속에서 개미를 찾아 노는 아이가 있습니다. 들어가 볼까 생각했던 그 오솔길을 오늘은 저도 들어가 봅니다. 단풍나무가 씨앗을 키우고 있고 커다란 반송나무는 자신의 잎들이 아래의 잎들을 가려 빛이 차단된 가지들은 누래져 있습니다. 몸을 돌멩이처럼 웅크려 앉아 하늘을 보면 가려진 하늘 아래 나뭇잎 천지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른의 몸집인 제가 쪼그마한 오솔길을 빠져나가려 할 때 하늘 위에서 나비 같고 꽃 같은 흰 무늬들이 저를 붙잡습니다. 하늘을 가린 푸른 잎보다 더 위에 있어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혹시 산딸나무?
확인을 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와 2층에서 3층, 다시 4층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산딸나무가 맞았습니다. 잘 가지 않는 동선에,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 가려져 있어 거기 그 자리에 산딸나무가 자라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산딸나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산딸나무는 자기 생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눈부시도록 빛나는 흰 빛의 꽃잎 네 장이 나비처럼 펄럭이면서 그 중앙을 호위하고 있으면 이것은 산딸나무가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엔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숨겨져 있습니다. 네 장의 눈부신 꽃잎은 사실 꽃잎이 아니라 꽃을 돋보이게 하도록 특별한 임무를 맡은 나뭇잎(포엽)이라는 사실을요.
산딸나무의 진짜 꽃은 중앙에 모여있는 작은 녹색 부분입니다. 십자형으로 된 커다란 흰색 포엽에 비하면 조금 볼품없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점을 산딸나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어서 나무는 스스로를 돕기로 결정합니다. 그것이 포의 생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앙의 녹색 꽃은 벌과 나비들의 왕래를 통해 수정을 하면서 가을에 산딸기 모양의 열매를 짓습니다.
이 열매는 가을에서 겨울 초입까지 붉게 익은 후에도 나무에 오래 남아, 철새를 포함한 많은 새들에게 중요한 먹이가 됩니다. 특히 철새의 장거리 이동 전 에너지 공급원으로의 역할을 하면서 새들은 씨앗이 멀리까지 퍼지도록 돕는 것으로 은혜에 보답합니다. 가을의 붉은 열매는 다람쥐와 청솔모 등 작은 동물들에게 인기가 높고 땅에 떨어진 열매는 부패하여 자연으로 되돌아가면서 곤충과 균류, 미생물들의 먹이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토양의 영양 순환에도 기여한다고 합니다.
산딸나무처럼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여 꽃이 더 풍성해보이도록 하여 곤충의 방문을 이끌어내는 식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산수국과 백당나무도 여기에 속합니다. 산수국과 백당나무는 안쪽에 진짜 꽃인 유성화가 피어있고 곤충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바깥쪽에 좀더 화려한 모양의 무성화가 피어있습니다. 바깥에 있는 화려한 무성화는 곤충들을 유인하여 중앙에 있는 진짜 꽃인 유성화에서 꽃가루받이와 수정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화려한 포는 꽃의 수정에 혁혁한 공로가 있습니다.
전 세계 화단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꽃인 수국은 산수국에서 유성화는 없애고 무성화만 남도록 개량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불두화는 백당나무를 개량한 꽃입니다. 백당나무에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무성화만 남겨 놓은 것이 불두화입니다. 초라한 유성화보다 헛꽃인 화려한 무성화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곤충에게도 사람에게도 인지상정(?)이었던가 봅니다. 사람들은 헛꽃이 더 많이 피었거나 심지어 모든 꽃이 헛꽃으로만 피어있는 돌연변이 종들을 가려 이들 나무에서 삽목이나 접목을 행해 수국과 불두화를 증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 눈에 아름다운 수국과 불두화는 인간이 관리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는 식물이고 누군가는 생식기능이 전혀 없는 수국과 백당화를 연애 한 번 못해 보는 꽃이라 애처로워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 저는 학교 안의 작은 오솔길에 유혹되었습니다. 햇빛이 직선으로 내리는 길 대신 그윽한 숲이 한참 이어질 거라는 거짓 꾀임에 알고도 속아넘어가 주었습니다. 몸이 조그만 아이들은 그 꾀임에 진심으로 넘어가서 숲을 오래도록 탐험하고 나옵니다. 그 꼬득임에 빠지지 않았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꽃 피고 꽃 지는 산딸나무를 생각하니 안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산딸나무의 헛꽃인 포에 유혹당한 벌과 나비처럼 저도 오늘 가짜 오솔길에 된통 당했습니다. 그 덕에 산딸나무를 만나고 기분은 아직까지도 그윽하고 몽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