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수업 세 번째 이야기
오늘은 연극 선생님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고 오셨다. 아이들은 책상을 모두 뒤로 물리고 공간을 넓게 만들어서 모두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바로 연쇄 살인마에 관한 것이다. 살인마 하나가 나타나 사람들을 헤치고 다니는데, 마을 사람들과 경찰이 힘을 모아 살인마로부터 마을을 지켜야 하는 이야기이다.
한 명의 경찰 배역은 지원자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맡게 된다. 살인마를 뽑기 위해 아이들은 모두 몸을 숙여 서로를 알 수 없도록 한 뒤, 다시 가위바위보를 하여 마지막으로 이긴 아이가 살인마가 된다.
무대 위의 인물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쉴 새 없이 만나 인사를 나눈다. 경찰을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악수와 인사를 거부할 수 없다. 살인마는 악수를 할 때 검지 손가락에 힘을 실어 상대편의 손바닥을 꾸욱 누르는 방법으로만 자신의 정체를 알릴 수 있다. 범인의 표정이 담담하고 태연할수록 경찰은 쉽게 범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범인과 악수를 나눈 아이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일곱까지 수를 센 뒤에야 바닥에 몸을 앉혀야 한다. 바로 앉게 되면 범인이 누구인지 싱겁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범인은 경찰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 때는 검지에 힘을 주는 일을 멈추어도 된다. 바닥에 앉는 아이들의 수가 점점 많아질수록 마을은 위태로워지고 경찰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예민한 관찰력을 발휘해 빨리 범인을 잡으면 마을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벙글벙글 웃고 있던 아이들이 범인의 검지 손가락과 인사를 하는 순간, 눈과 입이 놀라 똥그랗게 바뀐다. 동그랗게 오므라든 입에서는 긴 숨이 가늘게 새 나오고 부풀어진 가슴이 가라앉을 무렵이면 몸은 고요히 바닥에 앉아 있다. 그 사이 범인은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나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검지 손가락을 지그시 누르는 악수를 한다. 경찰은 아직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 상태이고.
놀이와 게임처럼 즐겁고 흥미롭게 연극 활동을 이어가는 아이들은 이 활동 속에 아주 중요한 연극적 요소가 숨어 있는지를 알기나 할까. 나는 범인과 악수를 나눈 여자 아이의 표정을 통해서 그것을 환기할 수 있었다. 범인은 있지만 누구인지 알지 못할 때, 불안은 더욱 커지고 아이들은 놀이에서 점점 현실감 있는 극적 요소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표정이 다채롭게 변해간다. 범인과 경찰과의 대립과 갈등, 범인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의혹과 불안이 고조될수록 연극의 이야기도 클라이맥스로 향해 간다.
연극 선생님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연극이 무엇인지, 꼭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연극은 어떤 곡선을 그리며 전개되는지 묻지 않으신다.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들고 와서 놀이를 하는 가운데 연극적 요소를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아이들이 연극에 관한 공부를 새롭게 접하게 될 때, 살갗이 부르르 떨리는 몸의 기억을 통해 오늘의 즐거운 연극 수업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이들은 오늘 주연과 조연의 배역을 소화한 멋진 배우들이었다.
#초등학교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