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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Oct 01. 2023

항암, 부작용에 맞서는 비법

울렁증과 정신건강에 최고인 이 것.

혼자 호텔에 멍하게 있으면 뭐 하나 싶어 오늘 내가 맞은 화학 약물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은 항암 치료를 받느라 어차피 다른 일도 할 수 없을 테니 내가 받을 화학 치료에 대해 파악하고 내 몸에 곧 닥칠 부작용에 대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준 환자의 지침 책자와 인터넷 내용을 비교하면서 오늘 내게 투약된 항암 약물들에 대해 천천히 살펴보았다. 오전에 맞은 대용량의 빨간색 물약 같은 항암제가 여전히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 약이 바로 공포의 빨간 약이라 불리는 아드리아마이신 (Adrimycin)이라는 항암 약이었다. 이름마저도 독기를 품은 독소루비신이(Doxorubicin)라는 성분을 내포하고 있는 약물이다. 안트라사이클린(Anthracyclin)계에 속하는 이 약의 기전은 화학 반응(Free radical)을 생성시켜 세포와 DNA에 손상을 입히고, 토포이쏘머라이즈2(Topoisomerase2)가 DNA를 임의로 절단하게 하여 암세포를 죽게 만드는 것이다. 


무언가 어려운 화학용어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엔 이 화학 약물이 몸속에 들어가면 우리 몸속의 DNA를 손상시켜 암세포와 정상 세포 모두를 공격한다는 소리이다.


‘투약하게 되면 골수 기능 억제로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의 일시적 감소가 올 수 있고, 심장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심전도 이상, 부정맥, 심근염이 일어날 수 있으며 만성적으로 심장의 수축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여기까지만 읽어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 밖에도 탈모, 구내염, 피부발진, 식욕부진, 설사, 구역, 구토, 부종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라는 부분을 읽으니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리고 이 모든 부작용을 겪을 내 몸을 생각하니 너무 불쌍했다. 지금까지 내 몸을 너무 혹사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나만 생각하자. 항암 치료받는 동안은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호사도 좀 누려보고, 평생 쉬어본 적 없는 내 몸뚱이도 마음 놓고 좀 쉬게 해 주자.’ 


나를 위로할 틈새도 없이 울렁거림으로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TV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휴지통을 부여잡고 웩웩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배 멀미 할 때처럼 속이 울렁울렁거렸다.


‘내가 애도 낳아본 여잔데, 이 정도 구토가 대수냐… 입덧도 해 봤잖아. 임신 한 번 더 했다고 생각하자.’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올라올 때면 내 몸에 집중하며 심호흡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와 증상이 비슷했으니 심호흡을 하면 좀 좋아질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울렁증이 한 결 줄어드는 것 같았다. 


호흡에만 집중했을 뿐인데 메슥거림이 줄어들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니 종일 긴장되었던 몸과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낳을 때에도 진통을 겪는 나를 향해 간호사들이 심호흡을 하라고 했었다.


출산 진통으로 고통받던 순간에도 심호흡을 하면 조금이나마 이완이 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항암약을 투여받을 때에도 간호사는 계속 심호흡을 하라고 했었다. 호흡이 이렇게 사람의 몸을 진정시키고 이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호텔의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따뜻한 차도 계속 마셨다. 심호흡으로 항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따뜻한 차로 화학 약물의 디톡스를 돕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과 차를 잔뜩 마시고 화장실에 갔더니 소변이 빨간색 물감을 탄 듯 선홍색이었다. 항암 약이 혈관을 타고 돌아서 신체의 장기들을 거친 후 저녁때가 되니 몸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변기통을 바라보면서 순간 놀랐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니…’ 


라고 주문을 외웠다. 긴장 됐던 하루의 끝자락에서 호텔 창 밖으로 내려다본 세상은 디즈니의 겨울왕국처럼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항암 첫날, 눈 속에 묻힌 세상은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밤 사이 눈이 그치고 아침엔 비행기가 무사히 떠서 제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폭신한 호텔 침대에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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