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지혜로움
속이 본격적으로 울렁거리고 온몸에 기운이 쪽 빠지기 시작한 건 항암 약 투여일로부터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부작용이 나타나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건 만은 5일이 지나서야 구토 증상이 올라왔고, 입 안이 헐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약이 이렇게 반응이 느린가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항암 약을 투여받을 때 부작용 억제약도 함께 투여받았기 때문에 사흘 간은 부작용 억제제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삼일 동안 먹은 구토 방지제도 도움이 되었다. 입안이 헐 것을 대비해 의사는 입안 세정제도 처방해 주었다.
항암 약 투여 5일 차부터는 속이 안 좋고 입 안이 헐어서 음식을 삼키기가 힘들었는데, 어머니는 이런 증상을 대비해 아침마다 누룽지를 끓여 주셨다. 누룽지는 목 넘김이 좋아서 입안이 헐어도 천천히 먹을 수 있었다. 헐어버린 입 안과 위장에 마치 코팅을 씌워주는 느낌이 들어서 항암 치료 중인 환자에겐 최적의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성분 때문에 이렇게 누룽지를 먹으면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 드는 걸까? 포털에서 누룽지의 효능에 대해 찾아보니 보약이 따로 없었다. 누룽지 안에 있는 탄소 성분이 생명의 근원이 되고, 면역력을 높이고, 해독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생명을 지키기 위해 면역력이 필요하고 해독작용이 필요한데 이 누룽지가 나에게 필요한 모든 효능을 함유하고 있었다. 알칼리성인 누룽지는 탄소 입자가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서 세포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몸속 온갖 독소를 분해하고 씻어낸다. 나는 지금 몸속에 독소가 가득한데, 누룽지가 그 독소를 분해하고 씻어낸다고 하니 그럼 앞으로 항암 중에는 계속 누룽지를 먹어 주면 될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누룽지엔 아미노산과 당질, 섬유질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소화불량이나 위장기능까지 개선시키고, 숙취해소와 간 기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숙취해소로 누룽지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의아해한 적이 있는데 나름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뇌혈관질환, 다이어트, 장염, 식중독 성인병에도 좋은 음식이니 이렇게 완벽한 한 끼 식사가 또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항암 중인 환자가 한 끼 식사로 먹기엔 염증 해독 효과도 있었고, 소화도 잘 됐고, 아미노산과 식이섬유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양 면에서도 탄수화물인 흰쌀 밥에 뒤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음식에 질리지 않도록 현미나 보리가 섞인 누룽지를 사서 끓여주셨다. 그 냄새가 구수하고 달달해서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끓여주신 누룽지를 거절한 적이 없다. 항암 일주일 정도 지나니 입 맛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기가 싫어졌는데, 어머니는 내가 입 맛이 있든 없든 끼니때가 되면 주방에서 요리를 하셨다.
입 맛이 없다가도 어머니의 음식 냄새를 맡으면 사라졌던 식욕이 다시 돌아오곤 했다. 입 안이 헐어서 맵고 간이 센 음식은 먹질 못하니 거의 간을 약하게 한 반찬 위주로 누룽지와 함께 차려주셨다. 누룽지 옆에는 늘 어머니가 직접 담근 동치미가 같이 놓여 있었는데, 소화가 조금이라도 안 되거나 배 속에 가스가 찰 때 동치미를 마셔주면 바로 시원하게 내려갔다.
나는 동치미를 신비의 효소수라고 이름 짓고 싶을 만큼 동치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연탄가스를 마셔서 머리가 깨지도록 아팠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엄마가 떠다 준 동치미 한 사발을 마셨더니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치미에 도대체 어떤 성분이 있길래 국물 한 사발 마셨다고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몸이 해독이 되었는지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난 김에 포털 사이트에서 동치미의 효능에 대해 찾아보았다.
동치미는 발효되는 과정에서 프로바이오틱스가 생기는데 이는 장내 미생물의 좋은 먹이가 되어 장 내 환경을 개선시킨다. 건강한 마이크로 바이옴이 음식물의 소화 흡수를 돕기 때문에 동치미를 마시면 속이 편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동치미에 들어있는 유황 아미노산 성분은 활성산소의 공격을 받아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켜 주는 효능이 있는데, 연탄가스도 유황성분이 중화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암 약으로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켜 주는 일도 동치미가 한몫을 단단히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에 들어있는 베타인 성분이 간을 보호해 주고, 사과와 배에서 나오는 펙틴 성분에 중금속 배출과 방사능 해독 능력이 있다. 마늘은 미국 타임지에서 선정한 10대 항암 식품 중 단연코 1위 항암 식품이다.
무, 마늘, 생강, 사과, 배 같은 천연의 좋은 재료들을 발효시켜 만들어지는 효소수가 몸에 안 좋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완벽한 항암 식품이 또 있을까?’
‘유레카’
나는 항암 치료를 받는 기간 내내 누룽지와 동치미로 내 몸의 독소를 해독시키기로 했다. 항암 부작용으로 입안, 내장이 전부 헐어도 누룽지와 동치미는 자극 없이 매일 먹을 수 있는 질리지 않는 음식들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이런 효능들을 깨닫고 누룽지와 동치미를 늘 밥상 위에 올렸던 것일까? 새삼 옛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