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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Dec 20. 2023

암 환자가 흔히 하는 착각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16번의 항암치료와 수술,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치고 나니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수술 전 항암 8번, 수술, 방사선치료, 수술 후 항암 8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유대 경전 속 진리에 의존하며 견뎌낸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항암 부작용으로 저 세상 구경도 다녀오고, 머리털도 다 빠지고, 피부 괴사에, 근육통에, 발톱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감수하며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견디고도 살아 있다니, 그야말로 생명은 끈질기고도 위대한 것이다.


치료가 전부 끝나고 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머리카락은 보송보송 올라오기 시작했고, 너덜 거리던 발톱 밑으로 새 발톱이 밀고 올라왔다. 얇아진 피부 위로 새 살이 돋아 올랐고, 사라진 지문도 서서히 무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수술 전 항암이 끝나니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아기 배넷머리처럼 얇고, 곱슬거렸다. 나는 새롭게 자라나는 곱슬머리를 만질 때마다 딸아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를 닮아 머리카락이 얇고 가는 데다 숱도 많지 않았었는데, 내 민둥머리를 뚫고 올라오는 머리카락들이 꼭 우리 딸, 아기였을 때처럼 얇고 가늘었다.


한 올 한 올 귀하게 올라오던 머리카락은 두 어달이 지나니 이내 잔디 인형 머리만큼 자라 있었다. 아기들 머리카락처럼 보드라워서 만지면 기분이 좋아졌는데, 이 귀한 머리카락에 두 번 다시 염색이나 파마 따위를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에게 약속했다.  파마와 염색으로 일평생 머리카락과 두피를 오염시켰으니 걔들은 얼마나 피곤했을까? 머리카락도 내 세포의 연장선인데 말이다. 혹자는 유방암의 원인으로 강한 염색약과 파마약의 독성을 논하기도 했는데, 20대 초 반 이후 평생 파마와 염색을 즐겨했으니 나는 암이 좋아하는 짓은 열이면 열 전부 다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카락이 올라오고 손톱과 발톱이 새로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눈으로 보니, 내 몸이 매우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복하는 것이 눈에 보이자 지난 1년 6개월 동안 몸이 근질거렸던 것을 더 이상 견디어 내지 못하고, 나는 또 무언가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분주하게 갖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지난 1년 6개월의 시간이 아쉽기도 했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가 '암'이라는 병을 얻어 놓고는 그 '열심히' 병이 또 도진 것이다.


항암이 22년 6월 경에 끝났는데, 코로나가 안정이 되니 그동안 못 했던 모임 활동이 재개되었다. 당시 나는 제주도의 한 축제의 심의 의원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미루었던 축제의 벤치마킹을 간다는 것이었다. '부산'의 축제를 탐방하는 일정이었는데, '기회는 찬스다'싶었다.


항암 치료로 꼼짝을 못 하고 제주-서울, 제주-서울만 다녔는데 드디어 '여행'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9월에 잡힌 일정이니 항암 부작용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불참할 수 도 있었지만, 그러다 보면 영영 사회로의 복귀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덥석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9월의 부산은 약간 더웠지만 여행하기엔 좋은 날씨였다. 부산 이바구길의 168 계단도 거뜬히 걸어 올라가면서 나는 체력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자부했다. 캡슐 열차를 타고 바라보는 해운대 바다는 넓고 푸르른 것이 제주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해진 후 보게 된 광안리의 드론 쇼가 클라이맥스였는데, 시드니의 신년 맞이 불꽃쇼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멋있었다.


문제는 사람들과 같이 다니면서 먹게 되는 음식들이었는데, 항암치료가 끝난 지 이제 삼 개월도 안 된 환자가 밖에서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 설탕양념 반찬들, 국수, 회, 길거리 떡볶이에 납작 만두까지 암세포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종일 먹었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소금 약간 외엔 양념을 하지 않은 음식이나, 최소 조리 방법으로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배 속에 조미료에 설탕, 밀가루에 기름까지 들어가니 위장에서도 신년 맞이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나름 조심한다고 애는 썼지만, 여행 가서 산해진미를 맛보지 못한다는 건, 아니 간 것만 못하기에 이거 저거 가리지 않고 먹었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는데, 관광객이 득실 거리는 국제시장과 광안리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부산의 공기를 마음껏 흡입했다. 현지의 내음을 맡아야 진정한 여행이라는 개똥철학에 심취해서 말이다. 밤에는 일행들과 어울려 2차까지 동석했는데, 술을 마시지 않으니 안주로 나온 마카로니 뻥튀기로 자꾸만 손이 갔다. 그 또한 밀가루라서 집에서는 일절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렇게 1박 2일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이틀 지나니 코가 시큰거리고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한 번씩 걸린 코로나도 피해 가며 지난 1년 반을 버텼는데, 항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3개월 만에 코로나에 걸리고 만 것이다. 치료가 끝났다고 마치 내가 건강한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고, 조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1년 6개월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온몸의 세포가 거의 전멸을 했다가 이제야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데, 나는 내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환자라는 사실조차 잊었다. 고작 몇 달 전만 해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고, 피부의 괴사와 고통으로 걷지도 못하며 사경을 헤맸는데 말이다. 인간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임에 틀림없다. 면역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으니 바이러스에 약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나는 항암치료가 끝나면 바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착각했다. 사실 항암치료 후의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한데 말이다.


암환자는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저하된다. 특히 나 같이 장기간에 걸쳐 치료를 받은 환자는 무너진 면역이 돌아오려면, 수술 후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된다. 의사들도 항암 치료가 끝나면 환자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데, 나는 결사반대다. 항암치료 중에 떨어진 백혈구 수치는 삼 개월이 지나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백혈구가 모자라다는 것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매우 열악하다는 뜻인데, 내 경우엔 치료 종료 후 6개월 검사 때에도 백혈구 수치가 낮았다.


1년 6개월이라는 긴긴 시간 동안 몸에 독성이 가득한 항암약을 투약했다면, 그 독성이 몸에서 전부 빠져나가고 새로운 세포가 건강하게 자라는데에도 최소 1년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도 암환자는 건강한 체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재발과 전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달리 '5년 완치'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다.


암 환자가 항암치료가 끝나자마자 긴장을 풀고 치료 전의 라이프스타일로 복귀했다가, 새로운 머리카락이 전부 자라나기도 전에 다시 독성 약물 치료 과정으로 회귀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코로나에 걸린 것이 어쩌면 나에게 행운일 수도 있었다. 내가 암 환자임을 상기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일조를 했으니 말이다. 항암치료가 끝났다고 치료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갔다가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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