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성'생활
이 질문에 이르게 된 환자는 이미, 암 진단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마음의 충격을 흡수한 후, 항암을 준비 중이거나 항암 중인, 파트너가 있는 환자라고 감히 짐작할 수 있겠다. 혹은 암 투병을 하고 있는 환자의 이성 보호자 정도로 예측이 된다.
일단 암 진단을 받으면, 죽음을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성'의 문제는 관심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인 마당에, 무슨 성관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우리가 흔히 성적 욕망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변강쇠'나 '옹녀'가 아니고서야 항암 치료 중인 환자가 '섹스'가 웬 말이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인지라, 암 진단을 받아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항암 치료를 받아도 견딜만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부터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자고, 싸는 것 외에도 '하는 것'까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배우자에게 성적 의무를 다 하지 않아도 되는 돌싱인 데다가 출산 후 급격히 떨어진 성욕 탓에 결혼생활 중 성생활도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사라진 '성적 욕구'에 대한 의구심이 마음 한편 남아있었다.
이 십 대 때에는 왕성했던 성적 욕구가 출산과 동시에 급격히 사라지게 되었고, 성관계를 더 이상 즐기지 않게 되어서 그것이 전 남편과의 속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를 홀로 추측하다가 먹고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여념치 않고 삼 십 대의 대부분을 섹스리스로 살았다. 그리고는 사십 대 초반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의 원인을 이것저것 나열하다가 원활하지 못했던 성관계가 호르몬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뇌피셜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 아닌 삼중음성인 나의 경우는 그것이 원인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망연자실했을 때에도 무심코 혼잣말로 읇조린 말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는 동안 섹스라도 실컷 할걸...!'
'어차피 썩어 없어질 몸뚱인데 뭘 그리 아꼈을꼬..."
죽을 때 되니 못한 것만 아쉽다더니, 아직 젊고 아름다웠던 삼십 대 내내 섹스리스로 살았던 것이 못 내 아쉬웠다.
'성욕'이라고는 1도 없던 항암 치료 중 어느 날, 아침 TV방송에 난소암을 진단받은 환자와 남편이 함께 등장했길래 채널을 고정하고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25년이 넘게 결혼 생활을 해 온 부부는 잠자리 궁합이 좋아서 한 번 관계를 할 때마다 기본 3시간씩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본인이 부부관계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난소암 3기를 진단받았는데, 이에 남편은 아내에게 난소암이 생긴 이유가 본인의 넘치는 성욕 때문인가 싶어서 본인을 책망했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해, 아내가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정성껏 간병을 해 주었는데, 아내의 머리카락이 빠지자 본인의 머리카락도 삭발을 해서 아내와 함께 투병에 동참하기도 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수술이 잘 되어서 아내는 생존했으나 더 이상은 부부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사회자가 남편에게 "부부관계를 좋아했었는데 안 하고 살아도 괜찮으냐"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아내를 잃을 뻔했던 생각을 하면 성욕이 문 밖 담장너머로 도망간다고 했다.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는데, 성관계를 한 번에 3 시간씩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그 걸 부부끼리 평생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아내가 난소암에 걸린 이유가 남편과의 과도한 성관계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떤 의사는 유튜브에서 유방암 환자의 항암 중 성관계에 대해서 "해도 괜찮다"라고 했다. 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입장은 "글쎄..."이다. 1기 미만의 암 환자라서 항암을 서너 번 하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일단 항암이 4회 이상 지속됐는데 만약 환자에게 '성욕'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자타공인 하늘이 내린 '옹녀'임에 틀림이 없다.
항암을 하는 동안 부작용으로 대상포진이나 몸에 수포, 발진이 생기는 경우도 다반수고, 나의 경우엔 면역이 약해지면서 몸속에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가 몸 밖으로 창궐하였다. 마치 잠자고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밖으로 실체를 드러낸 것처럼 말이다.
항암이 지속되면서 나의 면역력은 바닥이 났고, 지독한 항암약의 영향으로 나는 강제 폐경을 맞았다. 안 그래도 부족한 여성 호르몬이 폐경을 맞으면서, 내 몸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처럼 건조해졌다. 멋진 이성을 보면 가슴이라도 설레던 소소한 기쁨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옥시토신이나 세로토닌도 분비가 되지 않는 듯, 말린 보리자루처럼 감정도 메말라갔다.
일단은 항암을 무사히 버텨내는 것. 그리고 암세포의 성장을 차단시키는 것. 그것이 암 환자가 집중하고 치중해야 할 가장 큰 책무이다. 이 힘든 항암치료에서 생존하고 나면 서서히 '성욕'이란 것이 돌아오지 않을까?
나도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3시간의 섹스]를 한 번 정도는 해 봐야겠다는 '버킷리스트'를 한 줄 더 적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