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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을리 Sep 22. 2017

독일에서 행복한가?

아이클라우드를 드디어 랩탑에도 깔았기 때문에 (응...?) 곧 독일 소도시 여행 후기를 남기려고 한다. 그러기 전에 오해 방지를 위해 요새 나의 감정을 기록해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여행은 항상 좋지만, 여기 있는 모든 날들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글로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한 건 마음이 고요하지 않았던 며칠간 호주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네, 어릴때 호주에서는 모든게 좋았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이러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아, 그때도 나는 어느정도 외로웠고 어느정도 심심했고,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왜 깨달음이라고 하냐면 한국에 있던 근 몇년간 단 한번도 기억해본 적이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외국에 있을 때 항상 행복하기만 한 줄 알았지.


2월에 휴직을 한 이후 지금까지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음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어느 곳에 소속되어서 노동을 하는 댓가로 번 돈이 없지. 이게 팩트인데 이 팩트가 인생에 가져다 주는 영향이 엄청나다. 당장 내일 울려야 하는 알람이 없고, 가야 하는 곳이 없고 해야 되는 것, 만나야 되는 사람이 없다. 일어날 시간과 가고싶은 곳,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좋은 것, 만날 수도 있는 사람들로 인생이 채워진다. 그래서 독일로 나오기 전까지 엄청나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마침 봄이 와서 날씨가 좋았고, 날이 좋으면 자전거를 탔고 연락이 오면 친구를 만났고 심심하면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못해도 하루 한 번은 가족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서, 하루종일 자다가 일어나도 해가 쏟아지는 낮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 그 하루가 뿌듯했다. 독일로 오기로 한 건 그런 시간의 연장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일단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나를 시간마다 괴롭히는 죄책감에서부터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일어 공부를 더 저렴하고 손쉽게 할 수 있고, 아마도 호주에서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겠지. 온통 새로운 풍경에 설레고 싶었다. 비자 이름이야 워킹홀리데이 비자지만 워킹은 어쩌다 운과 때가 맞아 정보라도 얻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좋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오고나서 대부분의 시간이 내 결정에 대해 긴가민가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독일어는 가만히 있는다고 배워지는 언어가 아니고, 노력을 하는건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공부를 하는 것보다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게 더 어렵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ㅠㅠ), 온통 새로운 풍경은 없었고,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독일에서 공부를 하거나 할 예정인 사람들이라 호주만큼 다이나믹하진 않았다. 맛있는 밥이 없고 내 자전거가 없다. 나는 학생비자로 온 것도 아니고 당장 구직중인 것도 아니고, 어학을 한다고 당장 지원할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학수업 첫 시간마다 묻는 '독일에 왜 왔어, 독일어를 왜 배워'라는 질문에 '독일어가 듣기 좋아서 배워보려고 왔어' 라는 어중간한 답변을 매번 하고 의아한 눈초리를 매번 받는것도 피곤했다. 모든 인터내셔널 학생들이 '교환학생'으로나 오는 뤼네부르크에 '학사 입학증'을 들고 앉아있자니 이런 피곤함과 외로움이 몰려왔던 것 같다. 난 다음 주면 돌아갈텐데, 굳이 영어로 나보다 여덟살은 어린 애들이랑 친해지고 싶지도 않고, 하루에 세시간정도 무슨말하는지 모르겠는 교수님 말을 듣다가 오면 그냥 누워서 핸드폰 하고싶지 룸메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왠지 힘이 빠지더라.

학생식당 밥은 맛없고 양이많다


난 정말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면서도, 혼자 냅두면 외로워하는 사람이구나. 오늘도 여전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시내를 걷다가 불현듯 호주에 있을 때 생각이 났다.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집에서 같이 수영하고, 밥먹고, 여행다니고, 버스정류장에서 캐리어 큰거 끌고 온 외국인 있으면 왠지 반가워서 말걸고. 그랬던 시간만 있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면 그냥 집에 가서 mp3에 담아온 그사세 보면서 시간을 보낼때가 많았더랬다. 언젠가 멜번 시티가 눈에 너무 익어서 특별하지 않은 날들도 있었겠지. (진짜 생각이 안난다. 시티를 볼 때마다 좋기만 했던 것 같아..ㅋㅋ 이건 그냥 지금 외국 풍경이 눈에 익어서 그런가.) 주변 환경을 통째로 바꾸는건 쉬웠는데, 나를 바꾸는 건 역시 불가능한거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큰 차이점은 회사를 다닐 때 불행했다는 거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거다. 심장에 누가 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행복하고 감사한가?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힘들어서 떠나버리고 싶지도 않고, 원망스러운 사람도 없고, 감사할 것들을 힘겹게 떠올리지도 않는다. 공원을 걷다 보면 파란 하늘과 울창한 나무, 잔디밭이 참 고맙고, 지금 나에게 고민과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사람이 오로지 나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 웃기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그렇다. 나 빼고 모두가 1년 이상 독일어를 배운 아이들 틈에서 못알아듣겠는 수업을 듣다가 정신을 놓아버려도, 여전히 독일어가 '때려치고싶지 않'은게 신기하다. 내가 한 번에 가까워지지 못해도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집에 왔더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학 패키지 그리고 한국인 친구가 독일어로 써서 보내준 엽서가 있었다. 영어로 된 영화 예고편을 보다가 못알아듣는 부분이 있으면 와 영어도 못하는데..! 하고 성질이 나다가도, 한국어로 된 블로그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가끔 저기에 앉아있는 노부부를 본다.


생각많고, 상처 잘 받고, 쉽게 피곤해하고 수줍은 나를 데리고 외국에 사는 것은 저런 모양이다. 근데 어떤게 재밌냐고 하면, 그런 나는 어느날 갑자기 구글 지도를 켜고 바닷가 마을 아무데나를 찍고 기차를 탈 수 있는 애라서,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사먹는 빵에 크게 만족하는 애라서 생각보다 행복해질 거리가 많다고 할까. (음식도 좋아하고 훈남도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뤼네부르크는 슬픈 도시야 ㅜㅜ) 이 포스팅의 목적은 내가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고 하려는게 전혀 아니다. 라면 먹으면 맛있다가 배부르고 죄책감이 왔다가 또 아무렇지않아지기도 하잖아? 하물며 라면 하나에도 감정이 왔다갔다하는데, 다른나라에 사는건 절대 하나의 감정이나 생각으로 정리되지가 않는 일이다. 라는걸 굳이 정리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훗날 바라던 시간을 살면서 다시 손톱 뜯으며 잘 살고 있나 굳이 굳이 고민할 불쌍한 나를 위해.


바다에 갔더니 호수가 있었어


다음 포스팅에서는 자랑만 해야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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