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겔다 Mar 11. 2024

5. 술 때문만은 아니다

술 때문인 줄로만 알았었다.      

우리 관계의 문제는 술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술이었지만      

술을 끊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난 사랑받고 싶다.     

날 사랑해 주던 그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후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해졌다.      

나의 모든 것에 무심해져 버렸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일, 나의 건강, 나의 취미, 나의 재미 등 나에 관한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달까               


서운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집에 늦게 들어갔을 때였다.      

몇몇 친구는 남편이 데릴러와서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중 한 부부가 차로 데려다준다고 해서 그들에게 신세 지며 집에 도착했다.      

물론 내가 친구들은 만나는 동안 남편에게서 전화나 문자는 오진 않았고      

나도 그 자리가 끝났다고 연락하진 않았다.      

          

집에 들어섰는데 불이 다 꺼져있었다.      

난 약속을 거의 잡지 않는다.      

내가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오는 날은 일 년에 한두 번이다.      

오랜만에 약속 잡고 한잔하고 오는 와이프인데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연락도 해보며 들어올 때까지 걱정하는 게 보통의 남편 아닌가?       

        

그날 남편은 야무지게 온 집안의 불을 다 꺼놓고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든 말든 관심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 이 사람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느끼게 되었다.    

            

나의 고통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채칼로 당근을 썰다 내 손가락이 채칼에 박혀 피가 났다.     

아! 피난다!라고 하니 아이들이 달려왔다.      

엄마 괜찮아? 엄마 안 아파? 엄마 엄마 엄마.....     

남편은 애들이 수선 떠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보던 티브이 계속 보고 있다.      

혼자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이고 다시 당근을 썰었다.      

맘이 복잡했다.      

          

정말 술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그에게 가진 불만이 모두 술로 인해 생겨난 것들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랑이 식었다.      

그걸 내가 느껴버렸고.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맘이 저려오는 일들이 잦았다.      

그래서 더 이상은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찌릿거리며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을 느끼고 싶지 않아 졌다.                

분명 시작은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술로 인해 잔소리가 늘어나고      

그런 잔소리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이 서로를 원망하고 무심하게 만들어 버렸고     

결국엔 사랑하는 감정조차 말라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이전 04화 4. 술이 원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