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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Mar 18. 2022

제주 첫날, 숙소에 갇혔다

제주 한 달 살기 숙소 선택 & 우당탕탕 첫 만남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결심할 때 가장 중요한 1순위를 뽑는다면 무엇일까? 여행 계획, 탁송 혹은 렌터카 여부, 예산 등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연코 '숙소'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에 따라서 제주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으로 숙소를 옮길 수도 있지만 그렇다한들 최소 일주일 정도는 머물 테니까. 나의 경우에는 한 달을 오롯이 같은 공간에서 보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귀찮아서였다. 제주도 갈 짐을 꾸려 캐리어에 꾸역꾸역 넣은 것도, 두 손 모두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는 것도, 숙소로 도착해서 그 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모두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 한 곳의 숙소, 제일 마음에 들 곳을 매의 눈으로 찾아보았다.


내가 포기할 수 없던 숙소 조건 4가지


1. 100만 원 이하의 가성비 숙소

- 혼자서 사는 숙소를 찾다 보니 가격 면이 중요했다. 둘이서 살면 반으로 나눌 수 있지만, 혼자 살면 이 모든 걸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턴 생활 몇 개월을 하고 모아둔 소중한 돈으로 가는 여행이기 때문에 썩 예산이 많지도 않았다. 예산이 줄어드니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니 먼저 예산을 정해두고 난 다음 그 선택지 안에서 최선을 찾아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2. 약간의 감성

- 감성적인 인테리어를 원하긴 하지만, 감성이 한 스푼 더해지는 것만으로도 가격대가 확 높아진다. 인테리어 디자인 비용인 걸까. 마냥 가정집 같으면 '제주스러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그 '제주스러움'이란 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있다. 아무튼 있다.) 벽에 꽃무늬가 있으면 안 된다. 화이트톤의 가구, 무늬가 없는 호텔 같은 이불, 깔끔한 아이보리색의 벽지, 분위기를 줄 수 있는 벽지. 이 네 개면 충분하다. 통일된 색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성이 넘친다.


3. 원활한 교통편

- 동쪽에 거주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만한 파란색 201번 버스. 201번 버스는 서귀포시부터 시작해서 제주시까지 동쪽을 전부 오가는 버스이다. 배차간격도 심지어 20분 안쪽으로, 다른 제주 버스에 비해서는 간격이 짧은 편이라 자주 이용하게 된다. 내 숙소는 이 버스정류장이 걸어서 5분 거리 정도에 있었고, 그 옆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그래서 어디 여행 갈 때 필요한 물품들을 편의점에서 사서 가지고 갈 수 있었다. 편의점을 제외하고 맛집이나 카페가 정말 전무하던 곳이었지만... 그래도 버스가 잘 다니니까,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4. 오션뷰 (별 다섯 개)

- 나는 곧 죽어도 오션뷰를 고집했다. 집순이인 나는 분명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도 있을 텐데, 그런 날에도 창문 너머로 바다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도보로 10분 이상 걸리는 바다는 내게 오션뷰가 아니었다. 바로 바다를 마주한 집은 당연하게도 가격이 확 올라갔고, 나는 예산안 안에서 고민을 하면서도 오션뷰 위주로만 보았다. 오션뷰로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한달살이가 끝난 지금,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집에서 창문 너머로 바라본 바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하게 된 나의 숙소 자랑


이런 조건을 가지고 드디어 숙소를 구했다. '삼달리'라는 표선면과 성산리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땅한 관광지가 없어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숙소 가격이 저렴했다. 나는 첫날 캐리어를 '짐 옮김이' 서비스를 통해서 먼저 숙소로 보내고, 버스를 타고서 숙소로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을 지나치면 가장 끝 길에 담 너머 바다가 널리 펼쳐져 있었다. 훤히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장이라도 길 끝자락까지 가서 바다를 더 가까이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체력도 없었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적당히 감탄하면서 사진 몇 장 찍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전신 거울 : 마!! 이게 바로 감성이다! 


숙소는 혼자 살기에 적당한 방 크기, 감성 한 스푼 더한 통일된 색감, 감성의 끝판왕이라는 전신 거울과 스탠드까지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곳을 택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테라스이다. 커다란 창문을 열면 테라스가 나오는데,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춥지만 않았다면 그곳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싶을 정도이다. 숙소 앞에 그 어떤 장애물도 없어서 온 시선이 바다로 꽉 찰 때의 그 마음 벅참이란. 


그렇게 나는 테라스와 사랑에 빠졌는데,

바로 여기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테라스에서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문제의 테라스 (낮 풍경)


때는 바야흐로 7시경이었다. 겨울, 특히 제주도의 겨울은 6시 반만 지나도 금세 해가 지고 불빛이 하나도 없어 깜깜해진다. 어떤 빛도 보이지 않을 때의 밤바다는 더 경이로울 거라 생각하여 테라스로 향했다. 칠흑으로 범벅이 된 밤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망상에 잠기는 일상이란. 짐을 다 정리하고, 테라스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행복함이 100%로 차올랐다. 기분 좋게 한 달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내 감상을 방해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방 안에서 환히 빛나는 형광등이었다.


나는 그때 뒤를 돌아보면 안 됐었다.


형광등의 불빛을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창문을 닫아버린 거였다. 애초에 창문이 투명한데 닫아봤자 빛이 얼마나 막아진다고 생각했던 걸까. 결국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건 다름없길래 머쓱해진 나는 불을 끄려고 숙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창문을 열어보았다. 아니, 열려고 했다.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저기 숙소가 보이는데 왜 들어가질 못하니


창문 중에 그런 게 있다. 밖에서 누가 들어오지 말라고 방범창으로 해두는 것. 안에서는 열 수 있지만 밖에서는 열 수 없는 그런 구조. 그렇다. 나는 갇힌 거였다.


당황한 나는 바로 반대편 창문을 열려고 했다. 혹시라도 내가 무심코 열어놨기를 바랐지만, 헛된 희망이었다. 몇 번의 문을 열려는 시도와, 미끄러지는 손길이 반복된 다음에야 깨달았다. 진짜 망했다.


침착하게 호스트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 제가 테라스에 나갔다가... 실수로... 창문을 닫아서 갇혔어요...
호스트분 : 아... ... 10분 뒤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춥지 않으세요?
나 : 네... 겉옷은 입어서...
(정적)
나 : 그런데 제가 안에서 못 열죠?
호스트분 : 


처음에는 허탈하게 웃으며 테라스 의자에 앉아 밤바다를 즐겼다. 숏패딩을 입고 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행히 테라스 양옆에 벽이 있어서 어지간한 바람은 막아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호스트분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점점 동사(?)가 되고 있었다. 냉동창고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만약 야심한 새벽이라 호스트분이 전화도 받지 않았다면 나는 다음날 추위에 오들오들 떤 채로 발견이 되어버리는 걸까?


추위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쪽팔림이 더 컸다. 밤이었는데도 숙소 앞을 지나가는 차들이 많았고, 사람들도 산책을 하는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방에서 빛나는 형광등이 내 등 뒤에서 스포트라이트처럼 나를 밝혀주고 있었다. 참고로 이 숙소는 2층 테라스가 너무나도 잘 보이는 구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테라스에서 운치를 즐기는 사람 정도였기를.


그렇게 18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저 멀리서 차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차 문을 열고 다급하게 뛰어는 사람을 보고서, 저분이 내 구세주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호스트분이 테라스 창문을 열어주자마자 나는 민망한 마음에 "감사해요"와 "죄송해요"를 번갈아 말했다. 민망한 마음에 "바닷가 운치가 좋아요~"라고 뭐라도 덧붙이려고 했으나 호스트분은 쿨하고 멋지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밖으로 나가셨다. 내가 민망하지 않도록 빠르게 자리를 피해 주신, 그리고 나를 구해주신 호스트분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드린다.


제주 숙소를 가면 다들, 테라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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