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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Feb 12. 2022

여행 갈 때 챙기지 말아야 하는 것들

여행 전, 준비물을 챙길 때 이것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루 전 날에서야 겨우 캐리어를 다 쌌다. 노트북, 휴대폰, 신분증, 버즈... 중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읊어보다도 무언가를 빠뜨린 것처럼 불안해진다. 한 달 동안 살러 가는 만큼 챙겨야 하는 것들도 많다. 옷장에 있을 때도 옷이 부족했는데, 그 캐리어에 일부분을 넣으려고 하니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더 넣는 순간 캐리어가 울부짖으며 입을 도저히 다물지를 않으니 내가 허리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하도 물건이 많으니 무얼 챙겼고, 안 챙겼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체크리스트를 달달 읊으며 체크를 해간다. 이렇게 해도 준비물을 빠뜨리곤 하는데, 어쩌면 여행 시작의 액땜이 아닐까 싶다. 샴푸나 클렌징 폼을 잊은 거라면 거기서 사면 되는데.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것들이 있을까봐 항상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늘 무언가를 두고 오는 사람이었으니까.


누군가 나를 '도마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냐고 물으니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 두고 오는 것처럼, 내가 머문 자리에도 무언가가 남겨져 있어서 그렇단다. 방금까지 손에 있던 휴대폰과 갑자기 숨바꼭질을 하는 건 이미 일상이다. 지갑을 화장실에 두고와 헐레벌떡 다시 돌아간 경우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된다. 지갑을 잃어버린 경우도 꽤 된다. 신기한 건 휴대폰 분실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다. 버스에 두고와 차고지까지 다녀온 경우는 있어도, 잃어버려서 새로 산 건 한 번도 없었다. 휴대폰은 사람들이 잘 가져가지 않나 보다. 지갑만 가져가나? 나쁜 놈들이다.


살다 보면 무언가 잊어버린 거 같은, 그런 허전함이 들 때가 있다. 돈이든, 인간관계든, 무엇이든 부족한지 명확한 원인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기억나지 않은 단어를 떠올리려는 사람처럼 머리를 움켜잡아도 글자들 하나하나만 떠다닌다. 기역으로 시작하던가, 니은도 있었던 거 같은데. 막상 떠오르면 기역과 니은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단어인 적도 많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역시 믿을게 못 된다. 우린 우리가 잊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방 안이 어지러울수록 무엇이 '있다'는 걸 인지할 순 있어도, '없다'는 건 인지할 수 없으니까. 마치 "여기 없는 사람 한 번 손 들어보자"랑 같은 이야기다. 없는 사람은 결국 손을 들 수 없으니, 없는 사람은 없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잊어버린 걸 찾을 순 없는 걸까? 뭘 잊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집안을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생각보다 방법은 간단하다. 방을 정리하는 거다. 방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잊고 있던 앨범이나 옛날 일기 같은 걸 발견하게 된다. 정리하다가도 하루 종일 일기를 읽으면서 키득키득거린다.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빨리 방 정리부터 마저해!"라며 잔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방 정리가 목적이 아니니까 상관없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을 찾는 것, 그날을 회상하며 짧은 웃음을 짓는 것. 그게 방 정리를 하는 이유다. 잊었다고 생각하는 걸 찾는 거 말이다.


현실에서 허전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주로 여행을 간다. 여행을 가서 잠깐 한숨을 돌리고 오기도 하고, 아무런 연락을 받지 않은 채 자신에게 집중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러 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동안의 바쁜 일상에서 눈을 돌리고 오로지 바다에 비친 나를 바라보러 가기 위해서. 이제껏 일상은 손바닥으로 한 움큼 쥔 모래 같았다. 아무리 세게 쥐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지곤 하는. 여행은 움켜쥔 손가락을 펴는 행위다. 흘러가는 모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 이제 여행을 가려면 준비물이 필요하다. 가져가야 할 체크리스트를 작성해보았다. 휴대폰, 지갑, 신분증, 갖가지 옷과 양말, 속옷. 스마트워치나 갤럭시탭 등 얼리어답터 같은 기계도 가져가야 한다. 제주에서 스마트워치를 차고서 갤럭시탭으로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나의 모습은 꽤나 멋져 보일 게 분명하니까. 생필품과 더불어 멋만 생각한 준비물을 가득 챙겼다. 이런 물질적인 준비물 말고, 또 우리가 챙겨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제주 한 달 살기에 가져가야 할 목록]

1년 간 놓아버린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영감

"제주도에 있느라"라며 카톡을 늦게 할 수 있는 변명

우수에 찬 눈빛으로 테라스에서 바다를 보며 쓰는 일기

똥손임에도 오일파스텔로 제주 풍경을 그리려 하는 패기

육지로 돌아온 다음에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했어요!"라고 말하는 당당함


하지만 가져가지 말아야 하는 것들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괜한 짐을 챙겼다가 어깨만 무거워질 뿐이니까. 나에게 쓸모없는 것이 무언지를 판단 해야 한다. 우선순위가 낮은 것이나,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들. 예를 들면 답장을 안 하다가 친구들이 화를 내면 어떡하지, 라는 초조함. 여행 갔을 때 날이 안 좋을지도 몰라라며 사서 하는 걱정, 굳이 여행 가서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일을 자처하고자 챙기는 노트북(휴식하는 여행일 경우다), 아예 박스로 되어 있을 정도인 풀메이크업 세트, 형형색색인 다양한 굽의 신발들과 같은 것들.


이번 여행은 조금 더 간편하고 심플하게 챙겨보는 건 어떨까. 가져가지 않을 것들을 하나씩 리스트에 써보자. 그것들은 어쩌면 지금의 여행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혹시 모른다. 몇 가지를 빼다 보면 내가 잊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들이 튀어나올지도.


[가져가지 않아야 하는 리스트]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휴대폰 중독 증상

무료함을 달래다가 여행까지 순삭 해버릴지도 모르는 게임기

스스로를 옥죌 정도의 과도하게 꼼꼼한 계획표

이번 여행에서 꼭 무언가를 깨우치고 와야 한다는 부담감

현실에 머무르고 있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걱정거리


이런 리스트들은 얌전히 방 한편에 두고서 캐리어를 들고 여행을 가자. 여행을 하는 와중에는 아무런 걱정도 없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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