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어린 왕자'
얼마 전에, 거의 30년 만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하는
문학 작품으로도 꼽히는데, 프랑스 작가인
생텍쥐페리가 194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는 전쟁에도 참가한 실제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한데, 어린 왕자의 주인공도
비행기를 몰고 가다가 사막에 불시착하면서
우연히 B612라는 행성에서 지구를 찾아온
어린 왕자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 읽고 난 뒤에는, "이건 동화가 아니라 철학책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자는 대뜸 조종사한테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그려줘도 마음에 안 든다 하고,
저렇게 그려줘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다 싫다고 하니 귀찮아진 조종사가
결국 상자를 대충 하나 그려 주고서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라고 한다.
그런 성의 없는 그림을 받으면 보통은 화를 낼 것
같은데, 어린 왕자는 오히려 무척 기뻐하면서
"내가 바라는 게 바로 이거야!"라고 말한다.
그 상자 안에는 어린 왕자가 바라는 모습을 갖춘
양이 있을 것이고, 게다가 그 양을 가둘 수 있는
울타리까지 얻었다고 생각한 거다.
어른의 고정관념을 통해 만들어진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왕자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거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어린 왕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원래는 B612라는 행성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거기로 날아온 씨앗을 심었더니
장미가 자라나서 키우기 시작한다.
그러다 장미를 사랑하게 돼서 정성껏 보살피는데,
어린 왕자는 새침데기 같은 장미의 불평과 허영심과
가시 돋친 말들에 상처를 받고, 결국 행성을 떠나기로 한다.
어린 왕자는 다른 여러 행성들을 돌아다니며
특이한 캐릭터를 가진 여러 명의 어른들을 만난다.
그건 실제 세상 어른들의 모순적인 행동을
풍자한 모습이었다.
술 취한 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주정뱅이,
밤하늘의 별이 몇 개인지 세어서 그 숫자를 적은
종이를 은행에 보관하면 그 별들이 모두 자기
소유가 된다고 말하는 탐욕스러운,
어쩌면 사기꾼 같기도 한 사업가도 만나고
신하가 아무도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혼자 살아가는 왕을 만나기도 한다.
어린 왕자는 그런 어른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시시하다고 느껴서 지구로 향한다.
그리고 지구에 와서는 여우를 만난다.
그 여우를 통해 친구 만드는 법을 배우는 거다.
어느 날,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상점에서 다 만들어진 것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친구가 없어.
너도 친구를 만들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라고 한다.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길들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니, 매일 같은 시간에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네가 만약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흥분으로 안절부절 못 할 거야.
나는 빵을 먹지 않아.
그래서 밀은 나에게 아무 쓸모가 없어.
밀밭을 보아도 머리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지.
하지만 네 머리칼이 황금빛이잖아.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앞으로 황금빛 밀밭을 보면 네가 생각날 거야.
그리고 밀밭에서 부는 바람도 좋아하게 될 거야."
라고 한다.
다시 읽어도 너무나 감동적인 문장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어릴 때처럼 쉽게 친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마음의 담장이 낮아서
서로 그 담장을 가볍게 넘어갈 수 있지만
어른이 되면 개성이라고 할까?
자신의 가치관 같은 것들이 확립되면서
마음속의 담장은 굉장히 견고해진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유리창이 가로막는다.
그래서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진심까지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다.
이 책에 초반에 보면 비행기 조종사가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이런 말을 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야기하면,
어른들은 절대로 중요한 걸 묻지 않는다는 거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그 친구는 나비를 모으니?' 같은 질문들 대신에,
어른들은 이렇게 물을 거라고 한다.
'그 친구는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이나 있니?' '몸무게는 얼마니?'
'그 친구의 아버지는 얼마나 버시니?'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는 거다.
또 어른들한테 어떤 집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아이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거라고 한다.
"붉은 벽돌의 아름다운 집을 보았어요!
창문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어른들은 어떤 집인지
잘 알 수가 없어서 대신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한다.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그러면 그제야 "정말 예쁜 집이겠구나!"
라고 한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내 어린 조카들이 가끔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마치 내가 그 아이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앞으로는 조카들이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친구는 어디 사니? "형제는 몇 명이니?"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 친구랑 넌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그 친구의 어떤 점이 재밌니?"
"그 친구도 너처럼 도마뱀을 키우니?"
"그 친구는 어떤 반찬을 좋아하니?"
이런 걸 물어봐야겠다.
다시 어린 왕자 이야기로 돌아가면,
어린 왕자는 여우를 통해서 친구와 관계 맺는 법,
서로 길들이는 법을 배우고
장미를 통해서는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린 왕자가 B612 행성에 있을 때는, 장미꽃이
한 송이 밖에 없어서 무척 귀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구에 왔더니 너무나도 흔해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나중에는 B612에 있던 한 송이 장미꽃의
특별함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그 꽃과 어린 왕자는
이미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이다. 둘이서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엔 이 꽃이 자존심이 강하고
허영기가 있어서 항상 불평불만을 한다.
"왜 이렇게 물을 조금만 주니?"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데 바람막이도 해주지 않고
뭐 하니?" 이러면서 이래도 불평, 저래도 불평...
그런데 어린 왕자는 꽃이 내뱉는 대수롭지 않은 말도
하나하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행해져 가는 거다.
그래서 결국은 꽃을 떠나 지구로 오게 된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꽃의 말을 귀담아듣는 게 아니라
그냥 바라보고 향기만 맡았어야 해.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던 거야.
꽃의 말이 아닌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어."
왜냐하면 꽃은 쌀쌀맞게 말하면서도 어린 왕자에게
꽃향기를 맡게 해 주고, 어린 왕자의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도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장미꽃에게 지쳐서 떠나가면서도
"이제는 챙겨 줄 사람이 없을 텐데
벌레들이 붙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니?"라며
혼자 남게 될 장미를 걱정한다.
그러자 장미가
"나비와 친구가 되려면 애벌레 두세 마리쯤은
견뎌야겠지."라고 대답한다.
이별을 통해 장미꽃도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애라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서로의 감정 속도를 배려하고 지켜보면서 기다려 줘야
하는데, 어린 왕자처럼 그 사람을 위한다면서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다 그 사람에게 휘둘리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불행해지고 만다.
내 안에서는 서운함이 계속해서 쌓이고
언젠가 그 감정은 폭발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대는 또 그런 내 마음이 부담스럽거나
내 존재를 귀찮다고 여긴다.
그러니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 내 입맛대로 바꾸려 하지 말고,
나 자신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의 중심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두어야 한다.
마음의 추가 상대에게로 넘어가는 순간,
나의 매력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니까.
그러니 우리, 남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이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비행사와 어린 왕자의 이별이
다가온 것을 예감할 수 있다. 갈수록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괜히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
나한테 아직 이런 감수성이 남아있었나 싶기도 했다.
또한 인생을 잘 살아내기 위한 용기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와 함께 우물을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막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여기서 나는 여우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반드시 마음으로 보아야 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쉽게 판단하고
쉽게 좌절하는 것 같다. 특히 SNS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삶의 전시장이 되어 있다. 하지만 화려한 사진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기보다는,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메마른 사막화를 진행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 인생이 사막처럼 보이더라도
그 안 어딘가에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 감춰져 있다.
우리의 인생은 그 우물을 찾아 나서는 여정인 거다.
운이 좋으면 그 우물이 여러 개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사실 어렸을 땐 마지막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어린 왕자는
장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B612 별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린 왕자가 택한 방법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정말 이렇게 돌아간다고? 싶었다.
물론 복선도 등장하긴 하지만.
어렸을 때는 책을 읽었어도 이해하지 못한 방법이라
기억하지 못한 것 같은데,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거다. 또 영혼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린 왕자가 어떻게 다시 고향인 B612 별로 돌아가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밝히지 않는다.
궁금하시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아마 한두 시간이면 다 읽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 목소리를 통해 이 에피소드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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