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어머니의 손길과 감의 추억

by 백경자 Gemma

장독대는 나에게 잊지 못할 어린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 나는 촉석루와 논개로 유명한 진주에서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에 어머니를 따라서 대대로 조상을 모시고 섬기던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그곳은 나의 아버지의 선조들이 대대로 소유해오던 한 마을 토지 소유자로서 유독 넓은 대지에 우리가 살기에는 넘치는 공간의 집이었다고 기억된다.


나의 어린시절의 기억속에 있는 집주의를 둘러싼 수많은 감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감 추수로 진풍경을 이루곤 했다. 그리고 담을 따라 들어오면 다양한 모양으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이 장독대에 수많은 항아리들이 햇살에 반사되어 가져다 준 그 아름다운 빛깔과 모습이 사람들의 발 걸음을 멈추곤 했던 그 장독대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의 어린시절의 기억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곳으로 잠깐 이사를 한 이유는 우리의 선산이 있고 조상들이 모두 그곳에 자리를 잡고 계신 탓이라고 어머니께서 일러주셨다.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이곳은 사방이 아담한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심한 태풍도 막아 줄 수 있는 병풍 같은 산들은 나의 어린시절의 놀이터였다. 봄이 되면 붉게 핀 진달래꽃을 따러 이 산 저 산을 친구들과 함께 오르내렸고, 산과 친구가 될 수 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산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날 예쁜 옷을 입고 아버지 대신 오빠 손을 잡고 학교를 갔던 기억은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머문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늘 무언가 하고 계셨다. 봄이 되면 콩을 삶아서 반쯤 빻아서 둥글게 공처럼 만들어 새끼줄로 둘러메어 바람에 말린 후에 물과 소금을 붓고 간장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시곤 했는데 이것은 나에게 신기하게 비쳐온 작업이었다. 우리에게 “음식 맛은 장맛이다 ”라는 옛말이 있듯이 그 시절 부패를 막고 음식 맛을 내기 위하여 음식이 잘 부패하지 못하도록 짠 음식을 햇볕과 통풍이 잘되는 양지바른 곳에 두었는데 그곳이 우리집의 장독대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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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이 지난 후면 가끔 독을 열어 간을 보시고 독과 항아리들에 다른 음식물을 만들어서 저장하는 것을 보곤 했다. 간장이 완료되면 영양이 없는 나머지 콩은 된장으로 만들어서 장독의 항아리에 저장하였다가 어머니는 여러 형태의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서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셨다. 지금 나는 다양한 형태의 맛으로 밥상을 차려 주신 어머니의 사랑이 새삼 그리워지는 나이에 와있다.


시골에서 사는 동안 잊지 못할 또 한 가지 추억이 있다. 가을이 되면 집 둘레를 싸고 있는 수많은 감나무 들에서 열리는 다양한 종류의 감을 추수하고 동네 아낙네들이 일손이 되어서 감 껍질을 벗기는 일은 우리집이 갖는 특권이었다. 이 일은 시골 동네 여인들의 즐거운 일거리였고 진풍경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두려움도 없이 칼을 이용하여 감의 껍질을 벗기는 이 작업에 어른들 틈에 끼어서 내 창작품을 만들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 부 억에서 음식을 만드는 이작업이 평생동안 나의 즐거움의 한부분을 차지하는 이 노동의 즐거움은 이나이가 될때 까지 내가 즐기는 음식의 예술품은 나를 기쁘게 해주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밤이 새도록 깎은 감이 고방으로 옮겨지고 긴 겨울을 지나고 나면 하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의 긴 겨울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간식으로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한 추억으로 머문다. 한편 어머니께서는 동이 트기 전에 기상하시고 군에 간 외동아들을 위해서 장독대에 새벽 얼음을 깨고 담아 온 정화수를 놓고 하늘을 향해서 두 손 모아 빌고 계신 모습을 종종 보았는데, 6.25가 터졌을 때 그 시절 젊은 남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군대를 가야만 했다. 외동 아들인 오빠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때 군대에 간다는 것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전쟁터로 나갔다. 지금도 그때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 중에 언제나 얼굴에 깊은 수심으로 그늘진 그 모습은 내 가슴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머님은 그 아들을 위해서 자나깨나 지극 정성으로 자신이 간절히 드리는 기도가 천지 신명님께 달하도록 정성껏 비셨다. 어머니의 그 지극한 기도 덕분인지 오빠는 전쟁이 끝날 무렵 군대에 가기 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앙상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말 어머니의 장독대에서 드린 그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그런 대가의 기적이었다. 그때 어머니의 정화수가 놓였던 정신적인 공간이 되기도 했던 그 장독대, 나는 지금도 시골의 고향집을 생각하면 필름의 한 장면처럼 내 기억 속에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식구들의 일년동안 먹을거리를 저장해 준 크고 작은 다양한 빛과 모습의 장독들이 한식구를 이루고, 내 어린시절의 맛있게 먹은 음식의 맛을 결정했던 이 공간이 나의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저장 되어있다. 어느새 그 옛날 어머니만의 공간에서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시던 그 모습과 그 손길이 이곳에서 내 삶이 갖는 이 모든 풍요로움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을 잊어가는 오늘이 그 시절을 더욱 그리워지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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