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녀로 살다간 귀여운 신디
지난주는 신디가 우리 식구가 된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세살이 되던 어느 봄날 오랜 친분이 있는 성당 친구가 찾아와서 도저히 자기집에서 그녀와 같이 살기가 힘들다면서 약 2년만 맡아서 키워 달라는 간절한 부탁에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집의 한 식구가 된지가 긴 세월이 흘렀다.
그때 그친구에게는 다섯살 먹는 아들이 있었는데 부부가 일찍 가게에 나갔다가 늦게 집에 돌아오면 톰이란 아들이 심심하다고 친구하라 치와와 종의 맥시칸 강아지 한마리를 사다 주고 신디라 이름지워 그와 종일 놀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둘사이에는 우선 언어가 통하지 않고 성격이나 노는 방법도 달랐다. 그러니 개구장이 톰은 신디를 가만히 놔 둘리가 없었다.새로운 환경에 온 어린 신디는 주인으로 부터 사랑을 받는 시간보다 경험해 보지못한 새 환경으로 옮겨와 육체적인 학대와 먹는 음식도 제데로 주지않고, 자기를 노리개로 취급을 하려는 주인에게 영리한 그녀는 절대 동의를 해 줄수가 없는 시간들로 채워 졌다. 그녀가 어린주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서로에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그것을 피하려고 이구석 저구석을 도망다니는 것이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는 이 고통을 피하는 길이었다.그래서 몇 시간이라도 안전한 장소가 침대 밑과 의자 밑에서 하루종일 숨죽이고 숨어 있는것이 그녀가 살수 있는 길이었다. 톰의 부모가 집에오면 그때서야 슬그머니 나와서 자기가 얼마나 배 고프고 또 힘들었다는 신호를 보내곤 했다한다.
그러니 방안은 온통 수라장으로 신디의 밥그릇에서 쏫아진 음식물과 그녀의 배설물로 마스크를 쓰지않고 숨을 쉴수가 없이 악취를 풍겼다.신디가 우리집에 입양 되던날 제일 먼저 알게된 것은 아이들을 무서워 하고 그들이 곁에오면 사시 나무처럼 떨어대는 증상을 보였다.그리고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중증의 불안 증상들이었다. 참으로 나에게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끝에 일터에 계획에 없던 10일간 휴가를 신청하고 집에서 그녀가 새 환경에 적응하는 간단한 훈련에 들어갔다. 한식구가 되기위해서는 이단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매일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들을 스케줄을 만들어서 하루하루의 일과속에 우리 가족이 되는 사랑의 대화로 그녀의 하루가 시작 됐다. 어떤 행동을 하기전에 반듯이 이름을 불러서 나가야 할때 문을 열어주고 자기의 볼일이 끝나고 오면 칭찬을 해줌으로써 나의 목소리와 대화를 조금씩 이해 해 나가는데 칭찬은 빠짐없이 주어졌다. 이렇게 온식구들이 정성을 다 하는 일주가 지나가니 그녀는 우리 말을 조금씩 알아듣고 그녀 역시 우리에게 행동으로 답하는 시간으로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 우리가족들의 분위도 파악하고, 언어를 이해하고, 우리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한다는것 까지 알게되니 거기에는 절대적인 신뢰가 세월과 함께 쌓여갔다. 내가 일터에서 돌아오면 그녀의 기쁨의 인사는 기다렸다는 신호로 배를 바닥에 대고 뒹굴고 온갖재주를 다 부린다. 또 그녀의 혀는 턱밑으로 내려와서 자기의 사랑을 표시해 준다. 그런데 어느날 옛주인이 아들을 데리고 우리집을 방문을 했을때 그녀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리도 없이 어디론지 숨어 버렸다. 그녀는 자기의 아픈 경험을 잊지않고 있었다. 또 한번은 젊은 부부가 우리를 방문을 왔을 때 내가 그 아이를 인사차 한번 안아 주었더니 사정없이 그 아이에게 달려들어 무서운 잇빨을 보이는 태도에 또한 심한 질투심도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개는 같이 살다보면 집안 분위기를 민감하게 누구보다 더 빨리 터득한다. 가족 중 누가 감기라도 들면 침대옆에 앉아서 불안해 하고 같이 걱정을 하듯 어쩔줄을 모르는 그런 불안증세도 보이곤 했다. 혹시 우리 부부가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대화를 한다면 개의 표정이 달라진다. 그녀는 사망하기 전날까지 내 무릎은 그녀의 안식처였는데 떠나기 전날 밤은 우리부부의 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갑자기 목을 쭉 빼고 코를 천정으로 치켜 올려 눈을 반쯤뜨고 눈물을 흘리면서 무슨말을 하려는듯 입을 벌럼 벌럼 거렸다. 남편은 나에게 “이 놈이 전에 안하던 행동을 한다면서 제 제삿날이 됐는가 보지 ?, 내게 무슨말을 하려는 것 같아” 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졌을때 나는 그녀를 내 침대 곁에 눕히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4시쯤에 내 침대에 와서 나를 깨우고 있었다. 알고보니 목이 말라서 물을 찾고 있었다. 화장실에가서 시원한 물을 떠다주니 정신없이 벌컥벌컥 들이마시고는 숨을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아 이제 올것이 왔구나 하는생각에 그녀를 내 품에 안고 가빠지는 마지막 들이쉬는 몇번의 깊은 숨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집에 양녀로 왔다가 우리와의 긴 인연을 맺고 딸과 아들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많은 사랑의 발자취를 어린 아이들의 가슴에 남기고 그렇게 우리곁을 영원히 떠났다. 1994년 4월1일, 만우절 새벽 4시30분에 내 품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화장 되었다. 그녀는 아직도 우리가족에게는 사랑받던 양녀로 영원히 사진속에 함께 하는 한식구로 등장하고 있다.
2025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