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권고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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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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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취업

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준이라는 것을 반년 정도 했다. 주로 IT 분야의 채용공고를 뒤졌고, 프리랜서 경력이 2년정도 있긴 했지만 신입사원으로 시작하며 일을 배우고 싶었기에 신입 공고 위주로 살펴봤다. 몇년 지나기도 했고 하도 많은 거절을 당해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국가정보원 전산 직무, 방송국 PD 취준 과정이다. 최종 탈락했지만 두 곳 모두 그곳만의 색깔이 뚜렷한 느낌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시험과 면접을 보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은 어디든 빨리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기획 일을 하고 있는데, 취준생 시절에 국정원이며 방송국 같은 곳에 입사 원서를 넣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애초에 진로 설계를 그다지 깊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관심 있는 곳들에 다 찔러보고, 되는 곳에서 일한다. 그게 옛날부터 내 가치관이다. 그래서 그 때 국정원 요원이 되었다면 지금쯤 나는 산업스파이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방송국 PD가 되었다면 연예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러 군데와 합을 겨루어 보다가 강남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 기획자로 첫 취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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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라는 조직을 처음 경험했을 때의 감각

고백하자면 첫 회사는 그렇게 엄격한 곳이 아니었다. 공공기관에서 인턴할 때는 긴 치마 사이로 허벅지가 드러나면 야하다는 핀잔을 들었는데, 이 곳은 디즈니 공주님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분을 칭찬하는 회사였다. 직원들 대부분의 나이가 20대 후반 정도인, 대학교 동아리같은 회사였다. 이런 회사의 스테레오타입이 있다면 그대로 믿어도 되겠다. 규율도 없고 실행력이 빨라서 뭐든지 실험해 보기 좋지만, 숙련된 경력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이끌거나 동료들을 피드백해줄 사람이 없어서 삽질을 많이 하는 환경이었다.


돌이켜 보면 첫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힘든 적은 별로 없던 것 같다. 그 때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건너온 지뢰밭을 생각해 보면, 첫 회사의 빌런은 선녀다. 첫 회사는 사람이 힘들어서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기획팀은 5년차 팀장님, 나보다 경력이 1년 많은 선배 두명, 그리고 나까지 네명이었는데 내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님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시게 됐다.


공석이던 팀장 자리는 선배 한 분이 대신하게 됐고, 시니어 추가 채용은 없었다. 개발팀은 정년퇴임을 앞둔 시니어 서버개발자 팀장님과 시니어 웹 퍼블리셔를 제외한 나머지 포지션도 일찍 퇴사하고 추가 구인이 잘 안되는 상황이었다. 외주 개발은 옵션에 없었다. 아무리 많은 기획서를 준비해봤자 구현에 한계가 있었다.


내가 기획한 것을 직접 개발하면서 일을 진행할 수도 있었으나 기획을 하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그랬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 때는 마음이 조급했다. 그래서 입사 1년을 채우고, 개발자가 많은 회사로 이직했다. 개발자가 없어서 기획을 못 했으니, 개발자가 많은 회사로 가면 기획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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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권고사직

두번째 회사는 본사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유망한 회사였다.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연봉을 깎아서 갔다.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같은 분야로의 이직에서 연봉을 깎아 가는 일은 절대 없으시길. 여튼 당시에 급여는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입사하고 보니, 내가 입사하기 전에 나랑 인터뷰했던 기획팀 팀장님이 퇴사하고 없었다. 내 동료들은 마흔살 정도 되시는 경력 기획자 한명과, 창립 멤버인 주니어 두명이 있었다. 그 위로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신 인도인 CPO가 계셨고, 이분은 인도에 살고 계셨다. 경력 기획자에게 일을 배우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분은 본인은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사람이라면서 기술적인 것은 모르니 나더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선을 그었다.같은 여성이라서 반가웠는데 아쉬웠다. 나머지 두명 주니어는 퇴사한 팀장의 몫까지 일해야 하니 바쁜 느낌이었다. 여기서도 알려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해야 하는구나 느꼈다.


사무실 커피 테이블에 누군가 모여 있다면, 그 무리는 늘 그 여성분이 주도하고 있었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그 자리에 끼게 되면, 대화는 늘 아이비리그 캠퍼스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는 거기에 가본 적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대화의 방향은 결국 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관심사로 채워졌다. 그 사람은 석사만 마쳤으면서도, 본토에서 학부를 나온 20대들과 그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싶어 했다. 그때 한마디 했어야 했다. 마흔살 먹고 어린애들이랑 그런 이야기만 반복하는 게 무슨 의미냐고.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불쾌한 기색이라도 분명히 하고 더 이상 말을 섞지 말았어야 했다. 수습기간이 끝나고 잘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를, 가끔은 후회한다.


개발자가 많아서 이 회사로 이직한 거였는데 그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여긴 기획자의 힘이 별로 영향력있지 않았다. 기획자는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없었고, 기획팀을 없앤다는 결정이 났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결정된 것이라는데 그 팀장님은 왜 그걸 알고도 나를 뽑고 도망친 걸까. 그 회사의 모두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여기에서 팀을 옮겨 경영지원 업무를 하거나, 권고사직을 사유로 퇴직하는 선택이 있었다. 나는 팀이 없어진다는 것을 듣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다음날까지 결정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수요일까지 잘 출근했는데, 목요일에 팀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금요일에 사직서를 쓴 거다. (법을 따지고 들면 이러지 않아도 된다.)


내가 퇴사하고 몇달 후, 그 경력자와 한국지사 대표는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재직 요건을 다 채워서 퇴사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국내 유명 회사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이 두 사람을 링크드인에서 볼 때마다 나는 원인모를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다. 아직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 회사의 로고를 마주칠 때면 순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 불쌍한 감정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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