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나온 강아지와 눈을 맞춰요

행복한 순간을 묘사하기

by 제나로

코끝에 미지근한 바람이 분다. 발바닥으로 은근히 전해지는 돌멩이의 수를 헤아리다 보면 이 구역은 아예 관리하기를 포기한 것 같다. 아파트 단지 출구를 가로지르는 이 횡단보도는 혹시 고장 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오래 기다려야 한다. 나는 작고 무거운 숨을 내뱉으며 제 키보다 길게 늘어진 건너편 신호등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때, 그림자 뒤편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느슨하게 흔들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애의 입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숨소리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애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 애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궁금해진다.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짧은 털은 바람의 방향대로 누워 있다. 강아지는 나를 지긋이 쳐다볼 때도 있었지만 그의 고개는 대부분 주인을 향해 있다. 시선을 돌리려면 몸 전체를 틀어야 하는 몸통은 방금 흙에서 캐내어 들어 올린 감자처럼 움직일 때마다 파르르 떨린다. 그 애의 귀여운 모습은 내 마음에 조용히 녹아내려, 나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툭 떨구며 그 애에게 눈을 마주쳐 달라고 텔레파시를 보낸다. 효과는 있었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는 그의 주인에게서 내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더욱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꼬리를 올려 보인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뗄 떼까지, 우리는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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